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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나비의 날갯짓'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구체적으로 지적하진 않았지만 술병 던진 곽성문 의원과 '대졸 대통령'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전여옥 대변인에 대한 경고라는 해석이다.
그 이유는 간명하다. 정권 창출에 방해가 되는 '사소한 잘못들'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자칫 방치했다간 '토네이도(강력한 회오리바람)'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집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슨 김칫국 마시는 소리냐고 하겠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현재 한나라당은 일부 여론조사에서 호남권 지지율이 두 자릿수를 넘나드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여기에다 영남의 몰표와 열린우리당의 자중지란을 더하면 집권은 충분히 가시권 안에 있다고 하겠다. 한나라당은 1997년 대선 패배 이후 집권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태에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대졸과 술병의 나비효과'에 있지 않다. 한나라당의 처지에서는 '대졸'과 '술병'에 대처하는 기준이 그것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문화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대졸'과 '술병'은 나비효과와 무관하게 그 자체에 저급한 한국정치문화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졸 대통령'은 배제의 논리이다
전여옥 대변인의 '대졸 대통령'은 한국정치의 패악 가운데 하나인 '배제의 논리'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빨갱이 처단이라는 명분으로 좌우익 독립투사들을 정치에서 배제했다. 그리고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에는 경제적으로, 전두환 독재정권 때는 정치적으로 호남을 배제했다. 뿐만 아니다. 이런 배제의 역사는 특정정치집단이나 지역의 고통에 그치지 않았다. 우리에게 다양성의 부재와 지역감정 같은 사회적 악을 그 부산물로 남겨 놓았다.
전 대변인의 발언은 이런 역사의 연장선 위에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는 '다음 대통령은 대졸이어야 한다'며 그 근거로 우리나라 사회구성원의 60%가 대졸이라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이 말은 나머지 비대졸자 40%를 대통령의 자리에서 배제한다는 뜻이다.
그도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콤플렉스'가 문제지 학력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현재의 대통령은 단순한 비대졸자가 아니다.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와 변호사를 경험했다. 그리고 국회의원에도 수차례 당선되었으며 장관직에도 올랐던 사람이다. 다시 말해 그는 최소한 대학졸업장 때문에 차별을 받았거나 장애를 느끼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런 사람조차도 '학력 콤플렉스'가 있다고 단정 짓고 있으니, 전 대변인에게는 나머지 40%의 비대졸자들도 당연히 '학력 콤플렉스'를 가진 자들로 보일 것이다. 이로써 40%의 배제는 완성된다.
던진 술병은 '두고 보자'는 협박이 아니었을까
관용의 부족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곤 한다. 사회적 소수나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이해당사자간에 너그러움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더 많은 관용을 이 시대의 대안으로 많은 이들이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관용이 지나쳐서 문제인 곳이 있다. 다름이 아니라 술자리이다. 우리 사회는 술좌석에서 벌어진 일들에 너그러운 편이다. 문제 삼지 않는 것이 관례이고 오히려 문제 삼는 쪽을 깐깐한 사람으로 몰아세운다. 그래서 종종 술자리에서의 폭력조차도 유야무야되곤 한다.
그런데 굳이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의 술자리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이날 술자리에서 나온 말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사적인 술자리에서 나온 말치고는 너무나 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상공인들은 열린우리당에만 신경 쓴다!'
물론 야당 의원으로서 집권당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사실이 그런지는 몰라도) 지역경제인들이 얄미워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한나라당에 좀더 많은 신경을 써달라고 부탁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술병을 던지며 자리를 난장판으로 만든 곽 의원의 언행은 그 도를 넘어선다. 보기에 따라서는 협박으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어디 두고 보자', '열린우리당에 줄 대다간 큰 코 다친다'는 식 말이다.
정치판에서 지지자들을 둘러싼 타 정당과의 경합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제 그 방식만큼은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구시대 정치인들처럼 술자리에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다가 심사가 틀어지면 행패를 부리는 짓거리는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 어느 때보다 국민의 기대가 큰 17대 국회의원이라면 국회와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 정책이나 법안과 같은 정당한 수단을 동원해 상대 정당과 힘을 겨루어야 할 것이다.
'대졸 대통령'과 '술병 던지기'는 저급한 한국정치문화 상징
전여옥 대변인의 '대졸 대통령'과 곽성문 의원의 '술병 던지기'는 닮았다. 자신의 의사를 폭력적으로 관철시키려는 점에서 그렇다. 전자는 내치는 방법이고 후자는 끌어안는 방법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둘 다 한국정치문화의 발전을 위해 하루속히 없어져 할 병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한나라당에서는 이를 단지 대선 가도의 걸림돌로만 여기고 있다. 강재섭 원내대표의 '나비효과' 발언도 그래서 나왔다. 당사자들의 해명이나 사과가 마음속에 와 닿지 않는 이유이다.
정치판에서 진정으로 배제와 협박 같은 폭력을 몰아내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대선에 필요하니까 사과하고 해명하는 것일 뿐이다. 이래서는 설령 나비의 날갯짓을 잠재우고 한나라당이 집권을 한다 해도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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