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서 제가 관심 있게 본 것은 초가집입니다. 제가 출근하는 섬진강 강변길에는 초가집이 두 채가 있습니다. 둘 다 사람이 사는 집 같지는 않았습니다.
한 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최근에 발견한 것입니다. 그 초가집은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보지 못한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다 보니 언뜻언뜻 스치듯 그 집이 보이곤 했습니다.
자전거, 초가집 앞에 멈추다
오늘은 마음먹고 그 집 앞에서 자전거를 멈추었습니다. 초가집으로 내려가 보니 날림으로 지은 태가 촬영장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촬영장답게 그 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보니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사진이 나옵니다.
여기 저기 살펴 보니 이 집은 드라마에서 주막으로 쓰였던 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으니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만 집의 형태가 그렇습니다. 기역자 모양의 집이었습니다.
버드나무 한 그루와 산수유나무 두 그루가 마당 앞에 있고, 버드나무 그늘에는 널평상이 놓여 있습니다. 뒤뜰은 대나무가 시원스럽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집 앞으로는 섬진강이 화개천과 만나 더욱 넓어지고 맑아져 흐릅니다.
섬진강가로 통하는 길이 있어 걸어가 보니 나룻배가 있습니다. 촬영하면서 쓰기 위해 가져온 배인 모양인데 배 안에는 물이 차 있었습니다. 아마도 촬영이 끝나고 방치해서 그런 듯합니다.
악양천에서 멱 감는 아이들
그 집 마루에 앉아 주막집에서 국밥을 말아먹듯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악양으로 페달을 돌립니다. 바퀴가 멈춘 곳은 악양천입니다.
악양천에 수영하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요즘은 개울가에서 수영하는 아이들 보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닙니다. 실내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이라는 표시가 있는 곳에서 수영하는 것이 성장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이런 개울에서 수영하는 것은 아주 촌스러운 일이거나 일종의 후퇴처럼 보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개울에서 물놀이하는 것이 여름에 가장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물놀이를 했었습니다.
자맥질로 조개를 잡기도 했는데 말조개라고 하는 검은조개가 많이 잡혔습니다. 물이 빠지는 날에는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기도 했습니다. 시멘트로 만든 수로 중에서 깨진 부분이 물고기가 잘 숨는 곳이어서 그곳을 손으로 더듬거려 붕어를 잡기도 했습니다. 배가 고프면 개울둑에서 산딸기를 따먹으면 그 맛은 천하일품이었습니다.
가끔 하천에는 농약으로 물고기들이 힘이 없이 뱅뱅 도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농약을 주고 남을 것을 하천에 그냥 버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농약이 나쁘다는 생각도 없이 힘 빠진 물고기를 잡아서 매운탕을 끓여 먹었습니다. 물고기들이 힘이 없어서 도망을 가지 못하니 사냥이 손쉽게 끝나 버려서 아쉽기는 했지만 평소에는 잡지 못하는 메기나 가물치 같은 것을 잡을 수 있으니 횡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며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일부러 농약을 뿌려서 고기를 잡고 싶다는 유혹도 생기곤 했습니다. 그저 농약은 물고기를 어지럽게 하는 것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잔류농약이 몸 속에 차곡차곡 저장된다는 것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농약은 그야말로 '약'이었기 때문입니다.
2년에 한 번쯤은 농약이 개울을 침범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농약이 '약'이 아니라 '독약'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천에 농약을 버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개울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요즘 그 개울은 하천을 직각으로 콘크리트 포장을 해버려 무슨 하수관을 연상시키는 흉물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걸린 출퇴근 길
다행히 악양의 하천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천의 모습이 그대로인 것처럼 악양의 아이들은 여전히 개울에서 수영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그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던지 저도 풍덩 빠져서 수영을 하고 싶었습니다. 옷이 젖으면 자전거 타기 힘들다는 난감한 현실에 굴복하고 그냥 지나쳐 오고 말았지만요. 그 순간은 물에서 첨벙거리는 아이들이 한 없이 부러웠습니다. 아마도 부러운 것은 수영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어린 시절인지도 모릅니다.
서서히 하루 해가 야위어 갈 때쯤 다시 방향을 돌려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오늘 달린 거리는 60km입니다.
오전에 출발한 여행은 늦은 6시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막을 내렸습니다. 입은 바삭거리고, 다리 근육은 뭉쳐서 피로가 가득합니다만 피로만큼 추억이 쌓여서 그런지 얼굴엔 미소가 지어집니다.
여행은 꼭 먼 곳을 떠나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도시락을 준비해서 익숙한 길로 여행을 떠나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매일 출퇴근 하는 직장 가는 길이라도 다른 방법으로 가본다면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동차, 전철, 버스를 버리고 자전거, 달리기, 도보 그 전과는 다른 방법, 좀 더 오래된 방식으로 해보는 것이죠.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 수영장이 아닌 개울, 아파트가 아닌 초가지붕, 레스토랑이 아닌 마루, 동력선이 아닌 나룻배로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친환경 농산물 노마진 직거래 장터 자농몰(www.janong.com)에 소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