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요즘 시청률 30%를 육박하며 2005년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삼순이>. 우리 부부 역시 소문과 시청률을 믿고 한두 번 보다 보니 어느새 <삼순이> 폐인이 되어버렸다.
어제도 늦은 저녁 김치부침개를 두어 장 부쳐놓고 <삼순이>처럼 향기 은은한 와인은 아니지만 체질에 가장 맞는 컬컬한 막걸리 두 잔을 앞에 놓고 <삼순이>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여직원들 중에서 나이도 제일 많고, 몸무게도 제일 많이 나가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대목에서 남편이 뜬금없이 그러는 것이다.
"너도 '삼순이'였다!"
그래서 부담없는 성격, 수용액처럼 물 위에 뜨지 않고 여러 사람들과도 금방 잘 어울리는 사교성을 두고 하는 말인가 싶어 "그럼 나도 성격 하나는 끝내주지~~" 했더니 남편이란 사람은 그게 아니란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몸이 지금의 삼순이랑 너무도 비슷했었다는 말이었다. 안 그래도 작은 눈은 볼살에 눌려 떴는지 안 떴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고, 살에 눌려 목과 어깨선의 경계선도 뚜렷하지 않았단다.
그리고 뒷목에 가볍게 겹친 목살은 이제 막 구워낸 햄버거 같았고, 걸을 때마다 가볍게 요동치는 팔뚝살은 가히 요염하기까지 했단다. 거기다 웬만한 옷으로는 커버가 불가능했던 뱃살은 귀여움을 발산하기도 했다나 어쨌다나. 턱이고, 뱃살이고 모든 게 '더블'이었는데 성격까지 더블로 너무 좋더란다.
아무하고나 잘 어울리고, 아무 거나 잘 먹고 그래서 참 부담없는 스타일이다, 같이 살아도 마음고생은 않겠다는 주책맞은 생각을 했는데 그 부담 없는 아가씨가 자기 차에 덥석 올라타서는 그 큰 엉덩이로 영역표시를 해버리는 바람에 주책맞은 생각이 현실이 되어버리더라는 것이었다.
듣자니 기분이 나쁜 것도 같고, 기분이 좋은 것도 같고, 이럴 때는 '모' 아니면 '도'로 칭찬과 욕을 정확히 가르지 못하는 내 성격이 마뜩찮기도 하다.
사실 결혼해서 더 예뻐지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난 자타공인 결혼해서 더 예뻐졌다. 솔직히 말하면 더 사람다워졌다. 결혼 전의 난, 남편의 말보다 더 심각한 구석이 많았으니까.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데다 더워도 땀을 흘리지 못하는 고약한 체질 덕분에 변비로 여드름으로 고생을 했다.
아랫배는 항상 더부룩하게 불러 있었고, 오전 내내 퉁퉁 부어서 눈을 뜨기도 힘겨운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오지랖은 넓어 여기저기 술자리며 회식자리를 빼놓지 않고 쫓아다녔다. 술이면 술, 안주면 안주 이것저것 가리지 않았고, 거기다 남은 음식 싸오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고 했었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성격 좋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그 칭찬이 나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칭찬은 들으면 들을수록 중독이 된다. 성격 좋단 말에 내 몸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여기저기 태평양만큼이나 넓은 오지랖 보자기를 휘날리고 다니다 보니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의 나는 삼순이보다 더 통통하고, 성격 좋아 보이는 아가씨였었다.
그렇다고 지금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그렇게 예뻐졌다는 건 아니다. '원판 불편의 법칙!'이란 게 있다. 학창시절 농담처럼 한번 세숫대야는 영원한 세숫대야, 한번 종지기는 영원한 종지기다. 세숫대야가 신분을 망각해서 날뛰면 걸레 삶는 솥단지가 될 뿐이고, 종지기가 신분을 망각하면 고양이 밥그릇이 되는 것이다.
예전처럼 젊다는 걸 무기삼아 칭찬 한마디를 위해 불철주야 헛수고를 하지 않을 뿐이다.
결혼을 하면서 술을 끊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야간 비행에 고수였던 황금박쥐의 자리를 내 놓았다. 안주와 알콜로 채우던 배에 우리 땅에서 자란 곡식과 야채를 채우고 '껀수'를 찾아 번득이던 눈매를 아이와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 굴렸을 뿐이다. 안주를 챙기고, 남은 음식을 싸오던 손으로는 빨래를 삶고, 쌀을 씻고, 걸레를 들고 바지런을 떨었다.
그러다 보니 아가씨 때보다 살도 빠지고, 얼굴도 편해지고, 성격 또한 느긋해져서 난 어느새 내 얼굴에 책임질 수 있는 멋진 아줌마로, 엄마로, 그리고 아내로 변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뻐졌다'는 그 말이 외모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을 두고 하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남편에게 물었다.
"그래서 당신은 삼순이가 싫어?"
"아~~~~니! 삼순이가 이렇게 백조가 됐는데 왜 싫어하냐?"
맞다. 난 미운 아기오리에서 백조가 된 것이다. 막걸리를 마신 컬컬한 입으로 얼른 남편의 입술에 '쪽'하고 뽀뽀를 해버렸다. 삼순이처럼. 그리고 언젠가는 백조가 될 삼순이에게 화이팅을 보낸다.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