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수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 16일 한 TV토론자로 나서 김중권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우중 전 회장의 해외도피를 직접 권유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김 전 비서실장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특히 김 전 비서실장은 "조 의원이 무슨 근거로,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클리어하지 않으면 문제삼겠다"면서 법적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시사했다. 하지만 조 의원은 "나름대로 믿을 만한 소식통에 직접 확인했다"면서 검찰 수사에 협조할 뜻을 밝혔다.
조 의원은 16일 밤 KBS <심야토론>에 출연해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 들은 이야기라고 전제한 뒤 지난 99년 10월 김 전 회장의 '출국배경'은 "김중권 비서실장이 직접 김우중 회장에게 전화를 해 잠시 해외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전 비서실장은 18일 오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출국을 권유한 바 전혀, 결코 그런 사실이 없다"면서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다, (김 전 회장의) 출국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반박했다.
김 전 비서실장은 또 "처음에 출국할 때만 해도 무슨 도피성 출국으로 크게 보도된 것도 아니지 않았나? '사업차' 긴급한 일이 있어서 (해외에) 간 것으로 보도된 된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당시 '도피성 외유'로 (언론에) 보도됐으면 관심을 가졌을 텐데, 그렇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김 전 비서실장은 "IMF 사태를 만나서 (당시) 정권 초창기에 국난 극복을 위해 대우에 구조조정 하라고 굉장히 프레스(압력)를 가한 건 사실"이라며 "(당시는) 금융과 기업, 공공 부분 등 4개 부문에 걸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외치던 시절이었고 이에 (김대중) 대통령은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하라, 안하면 다 죽는다'는 것이 상황 인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 때문에 청와대에서도 대우 측에 프레스(압력)를 많이 가했던 것을 강봉균 당시 경제수석비서관이 가장 잘 알고 있다"며 "(이런 압력은) 비단 대우에게만이 아니라 대기업들에게 다 공통적으로 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법무법인 에이스 고문변호사인 김 전 비서실장은 지난 주초 해외 출장 건으로 대만에 머물고 있으며, 이르면 이달 말이나 7월초 귀국할 예정이다.
조승수 의원 "검찰이 밝혀야 할 일... 수사 협조해달라면 응하겠다"
한편 조승수 민주노동당 의원도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KBS 심야토론에서의 발언은)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이고 (당시) 대우 임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었다"며 "나름대로 믿을 만한 소식통에 직접 확인했고 (누구인지)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조 의원은 김 전 비서실장이 귀국하는 대로 '문제를 삼겠다'고 한 것에 대해 "(이 문제는) 검찰이 밝혔으면 좋겠고 (검찰이) 수사에 협조해달라면 응하겠다"며 "(출국 종용 문제는) 공소시효가 지난 일이지만 대우사태의 진실 규명을 위해 꼭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 의원은 "김중권씨는 몇 년 전에 모 언론사에서 이 문제에 대해 확인했을 때 긍정도 부정도 아닌, '확인해줄 수 없다'고 그 당시 기자에게는 이야기했다"며 "3년 전 일부 언론에서 거기까지 확인했고 대기업을 담당하고 있는 기자들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우중씨 측근 "당시 대우 임원들 사이에 알고 있던 것"
김우중 전 회장의 최측근이며 전 대우그룹 공보대리인인 백기승씨는 조승수 의원의 주장과 김중권 전 비서실장의 반박에 대해 "당시 정부측에서 분명히 그런 의사(김 전 회장의 출국권유)를 전했다는 것은 당시 임원들 사이에 알고 있던 것"이라며 "임원들도 그런 압력을 받고 김 전 회장에게 출국을 권유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 김 회장은 대우사태를 정상화하겠다고 온힘을 바쳐 노력했다, 특히 대우자동차 만큼은 수습해 놓고 물러나겠다고 의사표시할 정도였다"며, "김 회장의 평소 성격을 봤을 때 대우 사람들은 그의 갑작스런 출국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 김우중씨 출국배경 왜 문제인가 | | | | 5년8개월 동안 해외도피 끝에 지난 14일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출국배경' 의혹을 둘러싸고 당시 DJ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김 전 회장은 지난 1999년 10월 17일 중국행 비행기에 올라 20일 중국 엔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당일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이틀 후인 21일 일본 도쿄로 출국한 뒤 종적을 감췄다는 사실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만약 김 전 회장의 해외출국과 관련해 정권의 핵심부에서 이른바 '대우그룹을 말썽없이 해체하기 위해 사법적 책임을 면해준다'는 명목으로 출국을 권유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때 도피를 권유한 사람은 형법상 '범인도피죄'에 해당한다.
범인도피죄는 공소시효 3년이기 때문에 처벌은 불가능하지만 대우몰락 사태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밝혀져야 할 핵심 사항이다.
대검 중수부 관계자도 18일 "김 전 회장의 출국과 대우그룹의 해체과정이 겹쳐진다고 판단된다"며 "이 부분에 대해 국민적인 의혹이 집중된 만큼 수사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우중씨 "나중에 기회 있으면 답변하겠다"
'출국배경'에 대해 김 전 회장은 지난 2003년 1월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천>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정부 고위관리들이 대우 몰락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피하고 귀국 후 자동차 회사를 경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출국을 설득해 한국을 떠났다"며 "김대중 당시 대통령도 직접 전화를 걸어 워크아웃 전에 잠시 떠나 있으라고 했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는 이를 부인했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지난 14일 5년8개월 동안의 해외 도피생활을 접고 귀국한 뒤 검찰조사에서 "지난 1999년 8월 워크아웃 당시에 대우그룹을 정리하려고 했다"며 "그때 채권은행단과 임직원들이 '(해외에) 나가 계시면 (대우그룹을) 정리하겠다'고 건의해서 나가 있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채권은행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또 최근 옛 대우 계열사 고위 전임원도 김 전 회장의 출국배경에 대해 "당시 권력의 실세가 최고위층의 뜻이라면서 잠시 외국에 나가 있으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와 같이 대우그룹의 몰락을 둘러싼 김 전 회장의 '출국배경'이나 '해외도피 생활', '정·관계 로비' 등 모든 의혹이 점차 증폭돼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말해줄 인물은 바로 최정점에 서 있는 김우중 전 회장 자신 뿐이다. 과연 검찰 수사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입'을 열고 '진실'을 밝힐지 최대 관심사로 주목된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