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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 둘에 삼순이에게 푹 빠진 우리 남편. 요즘 아주 살맛나는 세상인가 봅니다. 그저 삼순이, 삼순이, 아예 삼순이를 입에 달고 삽니다.
덕분에 요즘 며칠, 남편이랑 오붓한 저녁시간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저녁밥만 먹으면 컴퓨터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던 우리남편이 제 차지가 되었습니다.
부창부수라고 남편의 늦바람에 장단을 맞추느라 삼순이(김선아)가 나오는 비디오를 빌려다놓았다가 아이가 잠들고 나면 시원한 맥주에 삼순이를 안주삼아 남편과 함께 비디오를 보니 말입니다. 덧붙여 어느 독자분이 친절하게도 지난 번 저의 기사를 읽고 삼순이(김선아)가 출연한 영화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며칠간 비디오를 함께 보며 오랜만에 남편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보니, 그간 우리부부가 참 밋밋한 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부리나케 일터로 나가는 남편. 그나마 저녁밥 먹으며 이야기 몇 마디 나누는 게 다였습니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저와 딸아이는 안방으로, 남편은 컴퓨터 앞에 앉기 바빴습니다. 그러니 셋 뿐인 우리 가족이 오붓하게 서로 얼굴 마주하고 알콩달콩 대화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남편과 마주앉아 창으로 스며드는 시원한 밤바람을 온 몸으로 즐기며 화면으로 나오는 삼순이의 배꼽 잡는 연기들을 안주삼아 하얀 거품이 묻어나는 맥주 한잔을 들이킬 때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해지는 알코올의 그 찌르르 하는 짜릿함도 또 색다른 즐거움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리고 보면 <내 이름은 삼순이>라는 드라마가 남편을 늦바람에 날 새는 줄 모르게 혼을 빼놓기도 했지만 우리부부에게도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을 선물해준 참 고마운 드라마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평범한 드라마 하나가 밋밋함이 몇 겹으로 에워 쌓고 있던 우리 부부 사이에 엄청난 활력소로 작용되고 있다는 것, 또한 화기애애한 부부를 만드는 덴 공통의 관심사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여튼 요즘 저는 남편이 뭔가 모르게 생기가 넘쳐 나는 듯하여 덩달아 행복합니다. 그런데 그런 남편에게 정말 획기적인 깜짝 선물을 할 좋은 기회를 포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유명 연예인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그것도 요즘 장안의 화제인 그 삼순이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기회이고 보니 모르긴 몰라도 남편에게는 아마도 심장 떨리는 순간이 될 것 같았습니다.
‘2005 MBC 시청자 촬영대회’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우연히 TV를 시청하던 저는 화면 밑으로 지나가는 그 자막을 보자마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바로 어제(19일). 느지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남편에게 서울시청 앞으로 나들이를 가자고 하였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남편은 주섬주섬 옷을 걸쳐 입고 따라 나섰습니다.
오후 3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선 '2005 MBC 촬영대회' 행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 내숭 아닌 내숭을 떨며 “어머. 오는 날이 바로 장날이네. 잘 됐다 우리 온 김에 구경이나 하고 가자”고 했습니다.
일찌감치 무대 앞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세상을 익혀 버릴 듯이 이글대는 태양에 손사래를 쳤습니다.
“조금만 기다려봐 아마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거든. 왜냐하면 어젯밤 꿈자리가 아주 좋았으니까. 혹시 알아? 삼순이라도 만나게 될지…. 그러니까 좀 기다려 봐.”
얼토당토 않은 거짓말까지 동원하여 남편을 붙들어 앉혔지만 잔디밭에 엉덩이를 붙인지 채 30분도 못 되어 남편은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혹시 삼순이 나오면 연락 해.”
못을 박듯 한마디를 남기고, 남편은 아이와 함께 시청 앞 분수대로 행했습니다.
3시에 시작한 행사가 오후 5시를 넘기고 있는데도 도무지 ‘삼순이’는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회를 보던 김학도씨와 배칠수씨가 무대를 내려와 잔디밭 포토라인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때. 어디서 나타난 건지 마치 바람처럼 나타난 남편이 디지털카메라를 휙 낚아챘습니다. 제 아빠의 손에 이끌려온 딸아이는 금순이가 온다고 또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그 순간, 언제쯤 삼순이가 오나 하면서 길게 목을 빼고 그 쨍쨍한 태양에도 아랑곳 않고 꿋꿋하게 무대 앞자리를 지킨 그 2시간을 무색하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스타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자 한꺼번에 앞으로 밀고 나오는 인파로 인해 저는 완전히 압사당할 위기를 맞았고 위험을 느낀 딸아이마저 울고불고 하는 바람에 저는 얼른 아이를 안고 인파를 헤치고 빠져 나와야 했습니다.
잠시 후 남편은 달 밝은 밤 하얀 박꽃 같은 얼굴로 우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제 아빠를 보자마자 금순이를 못 봤다며 난데없이 목 놓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목에 아이를 냉큼 올려놓더니 무대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한참이 지나 아이 역시 환하게 웃으며 제게로 다가왔습니다.
“엄마! 금순이 언니 너무 예뻐. 나도 이 다음에 금순이 언니처럼 예쁜 언니 될 거야.”
“와 삼순이 예쁘대. 하나도 안 뚱뚱해. 진짜 날씬하대. 진짜 삼순이 매력 있대….”
남편과 아이는 곁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저는 아랑곳 않고 삼순이, 금순이 이야기에 신이 나 있었지만 저는 인파에 밀릴 때 누군가에게 걷어차인 다리가 점점 더 얼얼하게 아파오고 있었습니다. 바지를 걷어보니 제 다리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상처를 보고 저는 피식 웃었습니다.
왠지 그 시퍼런 멍이 영광의 상처 같아 보였습니다. 남편의 늦바람에 장단을 맞춰주기 위해, 남편이 오매불망 애태우던 애인을 보여주기 위해서 생긴 상처이니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남편의 어깨는 애인을 만났다는 신바람에 연신 들썩이고 있었고, 제 영광의 상처는 점점 더 시퍼런 색으로 변해가는 것도 모자라 소복하게 부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부부는 제 다리에 멍이 가실 때까지 삼순이 이야기로 한동안 또 행복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