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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의 한해 농사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이 양파 수확이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양파의 머리 부분만 알았지 그 전체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양파가 듬뿍 들어가서 아삭아삭 씹히는 느낌이 좋아 간자장을 즐겨 먹었던 것이 양파에 얽힌 유쾌한 기억의 전부였다.
모든 농산물이 그렇듯이 양파의 한해 삶 또한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한없는 기쁨을 준다. 양파는 6월 초순에 보통 수확을 하는데, '그러면 심는 것은 초봄인가?'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양파는 가을걷이를 끝낸 논이나 밭에, 통통한 어린 파처럼 생긴 모종의 형태에서 하나씩 옮겨 심음으로써 그 삶이 시작된다. 그리하여 10cm 남짓의 모종 상태의 크기 그대로 꼿꼿하게 겨울을 보낸 후 봄이 되면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서 6월이 되면 수확을 할 수 있다.
결혼하던 해 초겨울, 유난히 맛이 좋은 겨울 시금치를 베러 밭에 갔다가 양파의 어린 모습을 확인하고는 그 여린 모습으로 삼동을 난다는 것에서 묘한 감동을 받았다. 모진 겨울을 이겨냈기에 양파의 굵은 알뿌리가 그렇게도 탐스러운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해마다 양파를 수확하는 철이면 형님과 나는 일꾼으로 차출되곤 하였는데 우리에게 그것은 아주 영광스런 일이었다. 빨간 색의 양파망에 양파를 넣는 일은 나름대로 기술이 필요하기에 시어머님과 동네 아주머니들이 하시고 형님과 나는 주로 양파 잎을 자르는 일을 하였다.
가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빠른 속력으로 '쏙삭쏙삭' 자르는 것이 우리의 최고 목표였다. '가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에는 못 미치나 어디 일꾼으로 차출되어도 손색없을 만큼 양파 자르는 솜씨가 갱신됐는데 시부모님은 힘에 부쳐 올해로 양파 농사를 그만 한다고 하셨다.
그새 정이 들었는지 다시는 양파 수확에 참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섭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