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전격 귀국한 전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씨에 대한 재평가 운운하는 일각의 목소리 뒤에 숨은 속사정을 꼬집으며 한상범 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동국대 명예교수, 헌법학)이 21일 오후에 한 말이다.
"김우중 대충 처벌한 뒤 사면하면 개혁은 강 건너가"
한상범 교수는 김우중을 대충 처벌한 뒤 사면한다면 "한국사회는 윤리고 정의이고 깡그리 실종되고, 그야말로 개혁은 강 건너가고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 못지않은 더럽고 치사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중에 대해 한상범 교수는 "막대한 국고와 국민 돈을 사기, 횡령, 배임, 외환도피 등 갖은 수법으로 빼돌려 놓고서 도피했던 범인"이라 강조한 뒤, "김우중은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필수적 부산물인 정경유착과 부정축재수법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에서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상범 교수는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부터 시작된 정권유착에 김우중 사태의 원인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앞으로 정치계의 개혁이 안 되고 부패구조가 만성적으로 존속되면 돈판 선거가 되므로 기업의 앞잡이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에서 한 단계 뛰어서 독과점기업 족벌 속에서 대통령하겠다는 사람이 나와서 성공할 수도 있다"고 우려의 뜻을 밝혔다.
"한국의 독점기업이나 재벌은 독재권력의 '종속적 파트너(동반자)'로서 독재자의 후견 혜택으로 큰 것이 개발독재시대의 일면 아닙니까. 그런데 전두환 집권 시절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지거든요."
한 교수는 최근 자본의 힘과 관련해 '돈 쏟아붓기 선거판'이 계속되고 자본이 강해지면서 결국 재벌은 정치인이나 정당에게 큰소리치게 되는 판국이 벌어졌다면서 "그야말로 재벌을 처음 만든 것은 독재권력인데, 지금 그 재벌은 자신을 만든 산모와 유모격인 권력도 어쩔 수 없게 힘이 강해진 독자적으로 노는 괴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 교수는 김우중 문제의 해법으로 김우중의 사죄와 피해보상과 함께 김우중의 범죄와 관련된 공직자와 정치인의 양심선언과 수사협조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정·관계의 김우중 범죄 관련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그들이) 만약 김우중의 공범자로서 다른 빠져나갈 길이 있다고 생각해서 2중 3중으로 국민을 배신한다면, 그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배신자로서 김우중의 공범으로 스스로를 몰아넣는 꼴이 될 것입니다."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한상범 교수를 만나 과거청산의 일환이자 정권유착의 고리를 끊는 문제일 수 있는 김우중 사태의 해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아래는 한상범 교수와 나눈 대화.
- 지난 14일 귀국한 전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씨가 구속 수감된 뒤 여러 가지 말이 많습니다. 사실 김우중은 박정희 정권의 그늘에서 생겨난 대기업 총수의 한 사람으로 이른바 개발독재의 성공사례로서 꼽혀 온 모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문제는 단순한 횡령과 배임, 사기와 문서 위조(분식회계), 외환도피와 국적이탈을 통한 재산보존을 위한 술수 따위를 저지른 경제사범으로만 볼 정도로 간단치 않은 것 같습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김우중은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필수적 부산물인 정경유착과 부정축재수법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에서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현재 한국인이 아닌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한국 국고에서 뽑아낸 거금을 도피시키고 해서 몇 년간 인터폴 수배까지 받으며 해외를 전전하면 도피하다 돌아온 범죄인입니다. 한국인으로 그를 볼 적에는 막대한 국고와 국민 돈을 사기, 횡령, 배임, 외환도피 등 갖은 수법으로 빼돌려 놓고서 도피했던 범인이지요."
"정치계 부패구조 존속되면 독점 족벌 속에서 대통령 나올 수도"
-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김우중이 기업가로 주목받기 시작한 뒤부터 도망치기까지 한 때는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제법 화려한 각광을 받았던 '성공한 기업인'이었지 않습니까? 그랬던 사람이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김우중은 그의 아버지가 박정희와 연고가 있는 인연을 타고 1967년 5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해서 박정희 정권, 다시 말해서 정치권력의 후원과 관료의 지원으로 승승장구하여 10년 전후에서 대독과점 기업의 총수로 부상하였었고, 박정희 사망 후에도 여전히 그의 처가 '신사임당상'을 받을 정도로 부부가 펄쩍거리며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손아귀에 거머쥐려고 했습니다.
그 후에 김대중 정부시절입니다만, 우리가 환란파산으로 박정권 이래의 정경유착으로 경제가 파산해서 한창 허덕이고 있을 때까지도 그는 교묘하게 시류를 타고 살아남아서 곡예를 하는 것을 보고 할 말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시류편승의 기막힌 재주를 부리는 비결은 예를 들면, 그가 대우학술재단을 만들어 학자들에게까지도 돈을 뿌려주었듯이 정계와 언론계에도 상당히 돈을 뿌려서 자기 이미지 관리와 자기편을 드는 팬을 만들어 나가는데 힘을 쏟고 공을 들인 데서도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그는 한 때 정주영처럼 대통령이 되는 꿈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로서 자기를 돌아봐도 문서에 부실기재하는 등 사기수법으로 부정대출을 받은 돈의 뒷거래가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요. 그러한 개인적 및 사업상의 파탄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일부 재벌처럼 계속해서 그러한 불법 부정대출을 연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이겠죠. 그래서 정치 권력자가 누가 되었던 그에게 돈을 제공해서 그와 한통속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보다 한수 위는 자기 권력까지 먹어치우는 것이 아닌가요. 나는 앞으로 정치계의 개혁이 안 되고 부패구조가 만성적으로 존속되면 돈판 선거가 되므로 기업의 앞잡이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에서 한 단계 뛰어서 독과점기업 족벌 속에서 대통령하겠다는 사람이 나와서 성공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미 독과점 족벌의 자녀가 지난번 대선에 뛰었지 않습니까."
"재벌은 자신을 만든 권력도 어쩔 수 없게 힘이 강해진 괴물"
-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부터 시작된 정권유착의 검은 뿌리가 김우중 사태의 원인이란 말씀으로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도 많이 성숙했고 한데, 독점재벌 중에서 차기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선생님의 예상은 너무 비관적이고 또 비약이 좀 심하지 않느냐 하는 지적도 제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의 독점기업이나 재벌은 독재권력의 '종속적 파트너(동반자)'로서 독재자의 후견 혜택으로 큰 것이 개발독재시대의 일면 아닙니까. 그런데 전두환 집권 시절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지거든요. 선거에서 여야가 재벌 앞에서 손을 벌리게 되고 머리를 들 수 없게 되어 갑니다.
지금 아무리 선거제도와 정당개혁을 해도 '돈 쏟아 붓기 선거판'을 당장에 쉽게 시정하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재벌은 정치인이나 정당에게 큰소리치게 되는 판국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야말로 재벌을 처음 만든 것은 독재권력인데, 지금 그 재벌은 자신을 만든 산모와 유모격인 권력도 어쩔 수 없게 힘이 강해진 독자적으로 노는 괴물이 되어갔죠."
"김우중 살리기 전술은 공로 내세운 뒤, 인간적 동정 불붙이는 식 될 것"
- 김우중의 귀국 전부터 정치권 일각에선 '공과 과를 분명히 해야 한다'느니, '재평가를 해야 한다'느니 하면서 바람을 잡았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김우중 살리기 전술의 수법을 예상해보면 다음과 같은 각본 같습니다. 우선 경제인으로서 김우중의 공로를 내세운 뒤, 인간적인 동정론을 불붙이고, 김우중의 개인플레이를 여기 적당히 꿰맞추고 시기적으로 김우중 정상참작론을 법률론으로 뒷받침하는 무대가 설정되면서 연극이 진행될 것입니다. 그 총연출자가 가족 중 부인이 되느냐 외부 측근이 맡는가, 법률고문단이 끌고 나가는가 하는 문제인데, 현재는 종합적인 거대연출이기 때문에 합동작품으로서 가족이 총감독을 하겠다고 봅니다만…."
- 일부에선 정치권에 미칠 파장이 워낙 어마어마하겠기에 이른바 '정계안정'을 위해 봉합을 서두르지는 못하겠지만 적당히 교묘하게 덮어버릴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대충 덮어버리고 사면한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온갖 불법 부정을 저지르고도 김우중이 유력한 변호사와 정·관계 연줄과 재벌 동류의 감싸기만 있으면 괜찮다는 예전의 관례가 되풀이 되는 길을 더욱 넓게 터놓게 됩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한국사회는 윤리고 정의이고 깡그리 실종되고, 그야말로 개혁은 강 건너가고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 못지않은 더럽고 치사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누가 이중국적 또는 외국국적을 가지고 이 나라의 돈을 훔쳐가도 할 말이 없어지는 거거든요."
"원래 개혁이란 수술은 아프고 고름은 짜내야 하는 것"
- 어쨌든 정·관계에 김우중이 뿌린 정치자금이랄까요, 속칭 '쥐약'먹은 세력이 드러난다면 정치권과 관료사회는 일대 홍역을 겪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그러한 쥐약먹기 정치를 끝장내는 게 개혁 아닙니까?
지금 '차떼기'한 정당조차도 여론의 타격을 받지 않고 머리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쳐들고 행세하는 것을 보고, 이런 식으로 개혁도 안 통하면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느냐고 한숨 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원래 개혁이란 수술은 아프고 고름은 짜내야 하는 것이죠. 칼로 베이는 게 아프니까 그냥 놔둔다면 결코 저절로 치료가 되질 않습니다. 그냥 놓아두면 오히려 살이 썩지 않습니까?"
- 김우중의 이번 입국은 그가 빼돌려 숨겨둔 돈을 건지기 위한 마지막 카드이자, 물귀신작전으로 하면 결국 어영부영 빠져나갈 수 있으리란 기대에서 시도된 것이란 인상도 듭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입국 전부터 '재평가'니 하면서 상당히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우선 보자면, 사실 김우중 문제는 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김우중이 무사해야 김우중 비슷하게 돈 벌어들인 자들이 마음 놓고 계속 그 수법을 써먹으며 해먹고, 재산을 보존한다는 문제가 뒤에 숨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일부 재계에서 그에 대한 편들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그 다음엔 김우중이 빼돌려 숨겨 논 돈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의 속셈과 공작이 당연히 있을 수 있습니다. 김우중 자신은 병자로서 오래 버티지 못할 사정이니 재산을 건져서 가족과 연고자나 살리겠다는 생각도 하리라고 하는 말도 돌고 있고요.
셋째 김우중 사건으로 개혁에 대한 김뽑기에 역이용하려는 수구 부패기득권부류의 의도를 걱정하는 사람의 말도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돈버는 것이 그렇고 그런 것 아니냐. 너는 신선처럼 깨끗한지 한번 털어보자. 좋은 것이 좋은 것 아니냐? 개혁이라고? 웃기지 말아라. 해방 후 60년간 친일파세상이고, 지금도 박정희 좋다고 하는데 왜 너희들이 쌍지팡이 짚고 나서냐?' 하는 식이죠.
우리에게 실망과 좌절감을 안겨 줘서 자포자기로 무릎을 꿇게 해 온 친일파가 일제시대부터 써먹어 오는 수법이 생각납니다. 친일 친독재 부류는 우리에게 '뛰어 봤자 별 수 없다'는 좌절감으로 포기하게 하는 절망의 철학을 안겨주어 이 땅의 양심을 뭉개버려 왔습니다.
지금도 이민가고 싶다는 말을 하는 일부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의 일로 방관자가 되어서 '죽 쑤어 개 좋은 일 하기'를 일부 부패에 기생하는 무리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변하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돈 받아먹은 공직자와 정치인은 양심선언해야"
- 강병국 변호사가 지난 4월 29일 대법원에서 확정된 전직 대우그룹 임원들에 대한 형사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을 인용한 칼럼(<한겨레>, 2005년 6월 17일 26쪽 - 시론: 강병국 <대우사태 본질을 보자> 참조)을 보면, 김우중은 1조원의 적자가 난 대우자동차에 1천억원 흑자인 것처럼 문서위조해 이를 근거로 9조 9천억원의 대출을 받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우는 수입서류조작으로 1997년부터 1999년까지 26억 달러를 빼돌리는 등 말로 다하기 힘든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 정도라면 단군이래 최대의 도둑이라고 했던 전두환보다 한수 위거든요. 김우중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은 '김 전 회장이 먼저 진실을 고백하고, 수많은 대우임직원과 협력업체, 37만명에 달하는 소액주주들에 대한 사과와 피해보상을 하는 것이 순서'라고 했습니다. 아주 좋은 제안입니다.
이와 함께 김우중으로부터 돈 받아먹고 그의 범법에 연관되는 공직자나 정치인은 우선 스스로 양심선언하고 김우중 수사에 협조해야 합니다. (그들이) 만약 김우중의 공범자로서 다른 빠져나갈 길이 있다고 생각해서 2중 3중으로 국민을 배신한다면, 그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배신자로서 김우중의 공범으로 스스로를 몰아넣는 꼴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터넷신문 참말로(www.chammalo.com)에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