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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쌓는 막돌이 모자라 트럭을 몰고 동네 어귀로 나가다 보니 할아버지가 할머니랑 밭 귀퉁이에 앉아 티격태격하고 계셨다. 나는 차를 세우고 끼어들었다.
“할아버지. 지금 왜 그러세요?”
“가물어서 깨밭에 물을 줘야는디. 할마이가 줄 좀 잡아 줘야는디 말여. 안 잡아 준다자녀.”
할머니 : 아이구 힘들어. 물 안 줘도 돼야.
할아버지 : 잡고만 있으면 된다니께. 물 줘야 혀.
할머니 : 왜 이리 힘들게 혀어. 물 주지 마.
할아버지 : 다 타버린당게. 내가 다 뿌릴팅게 잡기만 혀어. 쬐끔만 줄팅게.
할머니 : 깨 없어도 돼야.
할아버지 : 그럼. 뭘 먹고 살껴?
할머니 : 무신 걱정이여어. 아들 딸 다 있는데 뭔 걱정이여.
할아버지 : (할머니 등을 토닥토닥하며) 쬐끔만 준당게. 줄 잡아줘 잉?
할머니 : (어깨를 털면서) 시러. 허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난 암껏도 못혀.
할아버지 : 나보다 아홉 살이나 덜 먹었으면서 뭐가 그리 아프다는 겨?
이때 내가 끼어들었다.
“에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래도 올해 일흔 여섯이잖아요. 그리고 할머니는 열 한 남매나 낳느라고 더 아픈 거예요.”
할아버지는 나를 한 번 힐끗 보더니 별 도움이 안 될 놈이다 싶은지 다시 할머니를 꼬드기다가 이제는 협박을 한다.
할아버지 : 줄 안 잡아주면 내가 집 나가버릴껴?
할머니 : 아이고. 나가유. 나가시유.
할아버지 : 내가 집 나가면 어찌 살려고?
할머니 : 아들네 가지 뭐. 무신 걱정이여. 근데 할아버지는 집 나가면 어딜 갈라우?
할아버지 : 내가 아들네 갈 껀디?
할머니 : 저어기. 안산에 사는 큰 아들네 가시우. 나는 익산 작은 아들네 갈팅게.
내가 여기저기서 막돌을 트럭에 주워 담아서 막 집으로 차를 몰고 오는데 할아버지가 고무호스 다발을 한 아름 안고 왼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끙끙대며 집을 나오시는 거였다.
“에이. 이 사람 무정한 사람아. 사람이 왜 그 모양이여.”
“네?”
“내가 할마이한티 그러코롬 말 하면 ‘할머니 잠깐이래니께. 줄 잡아 주세요’ 그래야지. 자꾸 웃기만하고 그게 뭐여? 에이. 무정한 사람.”
졸지에 무정한 사람이 된 나는 하하 소리 내어 또 웃었다. 할아버지도 따라 웃었다. 저 멀리에서 할머니가 따라 나오시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