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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에게도 성욕이 있다.
장애인들에게도 성욕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핑크 팰리스>를 보러 가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이유는 부끄럽지만 내 무지 덕분이었다. 아는 영화관에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난 <핑크 팰리스>라는 작품이 영화가 아닌 연극으로 알고 있었다. 때문에 영화도 아닌 연극이라는 장르에서 설명 형식으로 진행을 한다 해도 성에 관한 묘사는 어떻게든 해야 할텐데, 대체 어떻게 표현할지가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이런 기대는 상영 한 시간 전에 "무슨 소리야? 이거 인권영화제에도 출품된 영화잖아"하는 여자 친구의 말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렇긴 해도 사실 첫째 이유보다 둘째 이유가 날 강하게 잡아끌었기에 <핑크 팰리스>가 영화인줄 알게 된 후에도 보러 가자는 결심은 변함이 없었다. 바로 무료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고 요사이 정말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공짜 싫어한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쉽던가.

그러나 역시 공짜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공짜니까'하는 편안한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가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20여 분 시간이 마치 2시간이나 되는 것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사연인 즉 다소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와 내 여자친구가 비장애 연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핑크 팰리스> 리플릿을 보면 결혼하기도 힘들고, 연애하기도 힘든 장애인들 얘기가 나와 있어, <핑크 팰리스>를 관람하러 온 장애인들 앞에서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어쩐지 죄를 짓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본래 좀 소심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그러한 무거운 중압감이 공짜의 유혹을 짓눌러 극장에서 나가고 싶어질 무렵 다행스럽게도 영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중압감이 공짜 유혹을 완전히 짓눌러버리지 않은 것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했다. 영화는 예상대로 장애인들의 성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자칫하면 한없이 지루할지도 모르는 또는 그들만의 얘기일지도 모르는 영화 속에 내가 깊이 빠져버리고 만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나를 빠져버리게 한 이유는 영화 속에서 장애인들이 성에 관한 얘기를 낯 뜨거울 만큼 솔직히 털어놓은 점이다. 그런 이야기들과는 전혀 담을 쌓고 살 것만 같은 그들이 마치 술자리에서 남성들이 하듯 성에 관해 농담을 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종의 큰 충격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그들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도 성욕이 존재하고 그것이 당연한 것임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둘째로 나를 빠져버리게 한 이유는 후천적 장애인들의 성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었던 것이다. 장애라는 것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것일 수도 있지만 불의의 사고로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이 사실 때문에 장애인들의 성욕을 나와 다른 세계의 문제로 여길 수 없었다.

만약 내게 불의의 사고가 생겨 사고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들, 사회적 편견들이 현실적인 문제가 되었을 때 비장애인 시절에 그러한 불합리한 것들을 미리 고치는데 힘을 쏟지 못했음을 한탄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나를 영화 속에 푹 빠져들게 한 것은 가장 긴 시간 동안 등장하는 동수 아저씨였다. 쉰 살이 다 되어가도록 성관계 한번 갖지 못한 이 아저씨. 너무나 해보고 싶은 마음에 30만원을 들고 성매매업소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돈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너같은 인간과는 할 수 없다는 매몰차기 그지없는 문전박대였다. 그의 이러한 사연은 서동일 감독이 본래 CF를 찍던 직장에서 뛰쳐나와 사회에 강렬한 문제제기를 하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내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 등 장애인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식욕만큼이나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인 성욕에 대해서 장애인들이 소외받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비록 최근 성에 관해 많이 개방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유교문화의 그림자가 강하게 남아있어 비장애인들의 성문제도 쉬쉬해왔던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런 열악한 상황 가운데 50을 바라볼 만큼 기나긴 시간 동안 욕정을 참은 장애인과 그 장애인이 성욕을 말하는 것조차 이상하게 여기는 사회…. <핑크 팰리스>는 50을 바라보는 이 장애인의 애환을 통해 사회에 장애인의 성문제를 본격적으로 던졌다.

이런 여러 매력들로 가득한 <핑크 팰리스>지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없던 것은 아니다. 가장 아쉬움이 남은 부분은 감독 스스로 그게 대안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상 중증 장애인들의 성욕구 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소개된 <핑크 팰리스>다.

이는 외국 성매매업소 가운데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을 갖추어놓고 영업하는 곳을 말한다고 한다. 현실적인 상황에서 결혼도 연애도 쉽지 않은 장애인들이 성욕구를 해소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핑크팰리스'의 그러한 측면에 대한 소개만 있고, 성윤리나 여성의 상품화 등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가치의 문제에 대해 언급이 없었다는 것은 못내 아쉽다.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아쉽지만 영화 마지막에 감독이 밝힌 메시지만으로도 이 <핑크 팰리스>는 현재까지 우리 사회에서 해야 할 의무를 다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함께 풀어야 할 숙제까지 던져주었다.

"핑크 팰리스를 만들자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장애인들도 성적 욕구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그것을 당연하게 인정해주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영화 마지막 자막입니다. 정확히 외우지 못해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담아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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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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