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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상백도와 하백도
멀리 보이는 상백도와 하백도 ⓒ 조갑환

그 곳에서부터 유람선선장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유람선 선장의 설명은 무성영화시대의 변사 같다. 용왕님, 옥황상제님이 등장하는 백도섬의 바위에 얽힌 전설들이 줄줄이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경치를 감상하면서 전설을 음미하며 더욱 백도 섬의 신비감에 빠져들었다.

그야말로 억겁의 세월동안 풍화작용은 남해의 바다 한가운데에 멋진 예술품을 연출해 놓았다. 별의별 형상들이다. 남녀의 성기를 연상케 하는 신랑바위, 각시바위, 꼭 성모마리아상을 조각해 놓은 것 같은 마리아상 등등. 저렇게 아름다운 자연의 조각품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온다. 인간이 어떤 절묘한 조각가라 할지라도 저리 아름다운 조각품을 만들 수 있을까. 저 것은 억겁의 세월 속에서 하늘의 손길이 만든 조각품들이다. 아 너무도 아름다운 백도여 이게 바로 바다의 금강이로구나. 마음이 깊은 감동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백도
백도 ⓒ 조갑환

백도는 상백도와 하백도가 있다. 백도라는 이름은 온 통 하얗게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과 섬의 수가 일백 개에서 하나가 모자란 99개이기 때문에 일백백(百)자에서 일(一)을 뺀 백(白)으로 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지만 실제로는 39개로 이루어진 무인군도란다. 1979년에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백도 관광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거문도로 돌아왔다. 거문도는 동도, 서도와 함께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서 전에는 삼도라고 했다한다. 역사적으로는 거문도사건이 있다. 1885년에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막는다는 구실로 거문도를 점령하고 해밀턴항으로 이름 붙였다한다. 이 아름다운 자연의 섬 거문도에는 열강 제국주의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자기들 마음대로 남의 나라를 점령하고 이름도 마음대로 붙였다니 해적 같은 무리들이다. 거문도사건은 열강 강대국사이에서 바람 앞의 등불처럼 꺼져가던 마지막 조선역사의 흔적들이다.

그 흔적으로 거문도에서 사망한 영국수병의 묘 3기가 있다. 이와 관련 거문도사람들은 이들이 거문도를 점령하고 주둔지인 거문도에서 헤엄쳐서 서도에 와 처녀들을 겁탈한 뒤 다시 헤엄쳐서 돌아가다가 죽은 병사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거문도사람들은 그 묘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서도에 있는 불탄봉(195m)을 오르고 보로봉(170m)을 거쳐 해안을 따라 걷다가 수월산을 거쳐 거문도등대까지 가는 3시간 거리의 코스를 택했다. 산에 오르자 칙칙한 동백나무 숲이 나왔다. 마치 산림욕을 하는 것 같았으며 하늘이 보이지 않는 밀림을 걷는 것도 같았다. 동백나무 숲을 지나면 산등성이에 너른 잡초 밭이 나온다. 그 곳에는 흑염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길섶에는 산딸기들이 붉은 새색시처럼 숨어있었다.

서도의 불탕봉에서 바라본 거문도항
서도의 불탕봉에서 바라본 거문도항 ⓒ 조갑환

산등성이를 따라 동백 숲을 지나니 깎은 듯한 전망대 절벽이 나왔다. 전망대절벽에서 바라보는 저 아래 푸른 바다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부여의 낙화암을 연상케 한다. 여기서부터는 큰 바위 , 신선바위를 지나 목넘어고개까지 벼랑을 따라 걷는다. 저 아래 벼랑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와 쪽빛 바다, 부드럽게 땀을 씻어주는 짭짤한 바람은 기분을 너무 좋게 해준다. 이런 기분은 거문도의 서도에서만 느낄 수 있으며 서도등반의 하이라이트이다.

등산로에는 소나무 등껍질 같은 긴 몸통의 벌레가 거미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오솔길을 걸어가다 보면 벌레가 머리에도 붙어있고 옷에도 붙어있다. 여자들은 길며 머리는 달팽이 같이 생긴 징그러운 벌레가 머리에 붙어 있는 것을 보며 기겁을 했다.

점심을 먹으려고 빵을 싼 신문지를 펴자 그 벌레가 있었다. 처음에는 머리가 달팽이 모양이어서 달팽이라고 생각했다. 알 수 없는 벌레여서 삼산면사무소에 전화를 해보았더니 ‘몸큰 가지나방애벌레’라고 하는 데 동백나무를 갉아먹고 사는 벌레라고 한다. 처음부터 거문도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외부에서 들어온 외래종이란다. 그런데 인근 손죽도, 초도 까지 번지고 있으며 다도해 국립공원의 동백나무숲이 그 몸큰가지나방애벌레 때문에 사라질 지경이란다.

등대를 목적지로 해서 가는데 일행 중 많은 사람들이 등대를 포기하고 선착장으로 향하는 왼쪽으로 난 오솔길로 빠져버렸다. 남은 몇 사람만이 기어이 등대를 정복하고 말겠다고 서도섬에서 목넘어고개를 넘어 거문도 등대가 있는 수월산으로 접어들었다. 우리는 기어이 1905년에 세워져 올해가 100년이 됐다는 거문도 등대에 도달했다. 문에는 거문도항만표지관리소라고 되어있었다. 안에 들어서니 등대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거문도항만표지관리소안에 정자가 있었다. 이름은 ‘관백정’이었다. 관백정에 올랐더니 사방으로 짙푸른 바다다. 사방이 푸른 장판을 깔아 놓은 듯한 바다여서 그 위에 눕고 싶을 정도다. 바닷바람이 마음속의 내장까지 시원하게 하며 온 갓 마음속의 잡동사니 같은 생각들을 다 쓸어가 버린다.

거문도항에서 오후 4시 30분에 다시 페가수스호를 타고 나로도항으로 이동하였다. 나로도 항에 도착하여 선착장 부두에서 이번에 같이 간 일행들 전체가 회에 소주, 막걸리 한 잔을 하고 가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번에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광주 하늘아래 사는 이웃들이다. 술 한 잔 주거니 받거니 하니 서로 애기가 통하고 더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그 순간만은 내일의 삶의 멍에를 벗어 던져버렸다. 지친 삶의 무게들을 전부 놓아 버렸다. 나로도의 포구, 갈메기 울음소리, 또 소주한잔이 마음을 평화롭게 했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몇 사람이 통로에 나가더니 엉덩이를 흔들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들은 나중에는 앉아있는 사람들을 통로로 끌어내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나가서 억지로라도 엉덩이를 흔들어 데었다. 나중에는 차안에 사람들 대부분이 통로에 나가 흔들어 덴다. 그렇게 춤추다보니 어느새 차는 광주에 도달했다. 평소엔 차안에서 춤추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이런 여행에서 그런 게 없었다면 지루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과해서 운전에 방해가 되면 안 되지만 적당히는 좋은 것 같다.

이번 거문도와 백도 여행은 지금까지 내가 해온 여행방식과는 달랐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 계획 없이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생활이 답답할 때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여 훌쩍 떠나는 여행, 이런 여행방식도 재미있었다. 답답한 생활의 연속, 쌓이는 스트레스로 인해 가슴속에 뭔가 묵직한 것이 들어있는 것처럼 답답했었는데 남해의 바닷바람에 뻥 뚫려 버렸다. 100년도 못사는 인생인데 그리 억척스럽게 아옹다옹 살아갈 필요가 있느냐고 거문도는 나에게 귀띔해 주었다. 뭔가를 이루려고 너무 얽매이지 말고 자연처럼 순리대로 살아가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백도는 알려 주었다.

덧붙이는 글 | 6.25일 갑자기 계획없이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여 거문도 , 백도를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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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에 관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여행싸이트에 글을 올리고 싶어 기자회원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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