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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기원
아내와 함께 장모님을 도와 마늘을 캤습니다. 용인에 살고 있는 처남도 와서 고추 지지대에 끈을 묶고 약을 뿌렸습니다. 처남댁은 병원에서 장인어른 간병을 했습니다. 조카 민호와 진호 녀석도 밭에 따라왔습니다.

ⓒ 이기원
시골에서 자랐지만 제대로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기는 아내도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마늘을 캐본 경험이 있는 내가 처음 캐는 아내보다는 좀 나았습니다. 빨리 캐야 한다는 욕심만 가지고 덤벼들면 금방 지치는 건 물론이고 호미로 마늘을 찍기 일쑤입니다.

처음엔 호미로 마늘을 캐는 건지 마늘을 찍어내는 건지 모를 정도로 실수를 연발하던 아내도 차츰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 이기원
한여름 땡볕은 아니지만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하니 다리도 저리고 허리도 아픕니다. 땀은 쉴새없이 흘러 이마를 타고 안경으로 흘러내립니다. 땀에 젖은 안경 때문에 시야가 자꾸 흐려졌습니다.

"농사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네."

아내가 푸념을 했습니다. 내가 직장에서 정년퇴직하면 시골에 내려가 농사지으며 살자는 게 우리 부부가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는 노후의 모습입니다. 부모님 돌아가시면 논밭을 놀릴 수는 없으니 농사지어 자식들 찬거리라도 보태주면 좋지 않겠냐는 소박한 생각이지요.

"그렇게 힘들어서 늙어서 농사짓겠어?"
"그러게 말야."

ⓒ 이기원
사십 줄의 우리 부부가 푸념을 양념처럼 섞어가며 마늘을 캐는데도 칠순이 넘으신 장모님이 더 잘 캐십니다. 그래도 나이는 속일 수 없나 봅니다. 가끔은 일어서서 한참을 힘겨워 하십니다.

마늘 캐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장모님은 호미를 두고 밭 아래로 내려가셨습니다. 더위에 마늘 캐러 온 사위가 목마를 거라며 나무 그늘에 둔 식혜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장모님이 건네주시는 식혜를 흙 묻은 손으로 받아 마시니 꿀맛이 따로 없었습니다.

"늙은이 혼자 캐면 들고 갈 일도 걱정이야."

그렇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만 남아 있는 농촌에서 애써 거둔 곡식을 집까지 운반하는 일도 큰 일입니다. 가을걷이 후에 곡식을 집까지 나르지 못해 발 동동 구르다가 주저앉아 우셨다는 시골 할머니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 이기원
다 캔 마늘은 줄기를 짧게 잘라 묶어서 자루에 넣어 들고 내려갔습니다. 마늘 가득 담긴 자루를 들고 내려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휘청대기 일쑤였습니다. 풀 무성한 밭두렁을 지나 장인어른이 만들어둔 곳간까지 옮겼습니다.

아내와 장모님은 곳간 주변에 자리를 깔고 점심을 준비했습니다. 온몸이 땀에 젖고 힘은 빠져 있지만 입맛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밥이 잘 안 넘어간다며 물에 말아 드시던 장모님은 땀과 흙을 골고루 묻힌 채 밥을 먹는 아들과 딸, 그리고 사위와 손자들을 보며 한마디 하셨습니다.

"한 사람 병원 실려 가니 여러 사람이 고생이다."

그래도 비 오기 전에 마늘을 다 캐서 다행이라며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꼭꼭 씹어 밥 많이 먹으라며 손자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덧붙이는 글 | 마늘을 다 캐고 처가를 떠나 집에 돌아온 저녁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중 호우가 내릴 거라고 합니다. 장마 전에 마늘을 캘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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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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