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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형제 바위 위에서 바라본 이천 시내.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 한눈에 이천이 들어온다.
삼형제 바위 위에서 바라본 이천 시내.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 한눈에 이천이 들어온다. ⓒ 이승열

어지러운 행사장을 벗어나자 거짓말처럼 온 세상이 적막했다. 마주 오는 차가 있으면 어쩌나 싶을 만큼 차 한대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었다. 행사장의 야단법석과 대비된 한여름의 숲 속은 어쩐지 발걸음 소리를 내는 것조차 숲에게 나무에게 미안할 만큼 깊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영월암은 숨을 할딱이고 걷다 보면 그냥 퍼질러 앉아 쉬고 싶은 깔딱고개의 정점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맨살을 그대로 드러낸 흙길 중간에 질 좋은 흰색의 큼직한 화강암과 한여름 하늘을 향해 정열의 주홍빛을 발할 하늘나리가 여름을 준비하고 있었다.

삼형제 바위. 등산로 중간에 유사품 삼형제 바위가 즐비하다.
삼형제 바위. 등산로 중간에 유사품 삼형제 바위가 즐비하다. ⓒ 이승열

삼형제 바위에서 위의 부부. 한참을 바위에 앉아 드넓은 이천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삼형제 바위에서 위의 부부. 한참을 바위에 앉아 드넓은 이천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이승열

영월암 바로 아래 이천시내가 한 눈에 조망되는 곳에 삼형제 바위가 있다. 우애 좋은 삼형제는 생계를 위해 깊은 산속으로 나무를 하러가고, 형제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는 자식들을 마중하러 나갔다가 호랑이에게 쫒기고, 또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찾으러 나갔다가 호랑이에게 쫒기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뛰어내리다 그대로 굳어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바위이다.

전장에 나간 삼형제를 그리워하다 병사한 어머니와 병졸의 의무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의 슬픔이 그대로 바위로 굳게 했다는 또 다른 전설도 전해온다. 우리 산하에 깃든 전설은 거의 다 애달프고 슬픈 이야기뿐이다. 병졸로 나간 아들을 기다리다 숨을 거둔 어머니, 나무를 하러 간 아들을 기다리다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한 어머니, 모두 이 땅을 지키고 살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세월을 보태며 보편적 형태로 굳어졌으리라. 이젠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린 가족 간의 폭력, 존속살해 같은 이 시대의 자화상은 훗날 어떤 이야기로 전해질까?

나옹스님의 은행나무. 아담한 절을 전부 다 덮을 만큼 거대한 그늘을 만든다.
나옹스님의 은행나무. 아담한 절을 전부 다 덮을 만큼 거대한 그늘을 만든다. ⓒ 이승열

마애여래입상 오솔길 옆 산신각. 이곳에서 영월암의 오래된 우물이 보인다.
마애여래입상 오솔길 옆 산신각. 이곳에서 영월암의 오래된 우물이 보인다. ⓒ 이승열

삼형제 바위와 마찬가지로 영월암 또한 나옹대사와 그의 어머니에 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중국으로 구법의 길을 떠났던 나옹스님은 멀리 이국에서 어머니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출가사문의 본분으로 멀리서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던 스님이 어머니의 행적을 쫒아보니, 어머니는 환생하지 못하고 구천을 맴돌고 있었다.

‘자식이 출가하면 구족이 복을 받는다는데 우리 어머님은 업장이 얼마나 두텁기에 구천을 맴돌고 계실까. 혹시 아들의 모습을 못보고 눈감으신 정한이 골수에 맺힌 것인 아닐까?’ 스님은 영월암 법당 뒤 설봉산 기슭 큰 바위에 모셔진 마애지장 보살님 앞에서 어머니 천도 기도를 시작했다. 철야정진 기도 중 지장보살의 전신에서 발하는 광채에 눈을 들어 보니 지장 보살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듯했다.

고통 받는 중생들 때문에 지옥 입구에서 눈물이 마를 새 없다는 지장보살이 어머니를 천도한 후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그 후 부모의 극락왕생과 자신의 업장을 소멸하려는 기도객들의 발길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영월암 마애여래입상. 바위에 스님을 새긴 유래가 없으나 이곳에 관련된 조사나 나한상으로 추정한다.
영월암 마애여래입상. 바위에 스님을 새긴 유래가 없으나 이곳에 관련된 조사나 나한상으로 추정한다. ⓒ 이승열

나옹스님이 어머니의 천도재를 올렸던 마애상은 보물822호, 지정 당시 명칭이 마애여래입상이다. 자연암석을 다듬어 그 위에 조각한 마애여래입상은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아닌 민머리인 점과 옷의 형식으로 보아 나한상이나 조사상으로 추정된다. 둥근 얼굴에 눈, 코, 입을 크고 뚜렷하게 조각하였는데 지그시 감은 듯한 눈과 굵직한 코, 두터운 입술 등의 상호에서는 힘차고 후덕한 고승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나한은 아라한의 줄임말로 소승불교의 수행자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성자를 뜻하고 조사는 한 종파를 세우고 중심이 되는 가르침을 준 승려를 뜻한다. 이 불상은 유례가 드문 마애조사상으로 양식과 영월암에 전하는 석불대좌와 광배, 석탑재 등을 볼 때 그 조성 연대가 고려 전기로 추정된다.

영월암 석등과 중수공적비. 우리의 산사인지 일본의 신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석등과 비
영월암 석등과 중수공적비. 우리의 산사인지 일본의 신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석등과 비 ⓒ 이승열

설봉산 중간 깊숙이 자리 잡은 영월암은 1300여년 전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하나 이를 입증할 문헌도 금석문도 없다. 절 입구에는 나옹스님이 심었다는 우람하고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천년동안 묵묵히 절 입구를 지켰다고 한다. 수령 640년, 높이 45m, 둘레 5m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사람들과 함께 한 많은 유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600년 동안 은행나무는 묵묵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을 사람들과 함께 하며 후대에 또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할까?

영월암에서 설봉산 정상으로 가는 길. 곳곳에 드러난 나무뿌리가 마치 설치한 계단같다.
영월암에서 설봉산 정상으로 가는 길. 곳곳에 드러난 나무뿌리가 마치 설치한 계단같다. ⓒ 이승열

정상 0.22km, 영월암 0.3km 더하면 설봉산정상 1.05km가 되는 이상한 수식의 이정표
정상 0.22km, 영월암 0.3km 더하면 설봉산정상 1.05km가 되는 이상한 수식의 이정표 ⓒ 이승열

영월암은 어렵사리 그 모습을 허락했으나 두 대나 준비한 카메라의 배터리 4개가 모두 방전된 상태. 유월의 마지막 일요일 세 번째 길이다. 이번엔 배터리에 물, 과일까지 빈틈없이 준비했다. 영월암에서 설봉산 정상거리가 1.05km. 기분 좋은 흙길이었다.

오랜 세월 땅속 깊이 뿌리내렸던 나무뿌리가 그대로 드러나 자연 계단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상은 394m의 낮은 봉우리이나 평야지대에 자리 잡아 한 눈에 이천시내 전체가 들어온다. 설봉산(雪峰山) 정상임을 알리는 표시석 옆에 희망봉(?)이 서 있다.

설봉산 정상. 거대한 산벚나무 두 그루가 다닥다닥 검붉은 산벚을 달고 있는곳.
설봉산 정상. 거대한 산벚나무 두 그루가 다닥다닥 검붉은 산벚을 달고 있는곳. ⓒ 이승열

저렇게 희망의 봉우리를 세워서라도 삶에 대한 희망을 부여잡으려 안간힘을 쏟는 것 같아 나를 포함한 이 시대의 중생에게 진한 연민이 느껴진다. 삼팔선, 사오정으로 대변되는 부초 같은 인생들에게 가여운 중생 때문에 눈물이 마를 새 없다는 영월암 지장보살님의 가피가 골고루 퍼지길 희망봉 앞에서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중부선 서이천 나들목에서 6km 거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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