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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옇게 보이는 것은 모두 개망초
뿌옇게 보이는 것은 모두 개망초 ⓒ 정명희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그 동심의 기억 속에서도 참 예쁘다 생각한 꽃이 몇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개망초였다.

어린 시절 등하교길 길가에 하얗게 피어 하늘거리던 그 꽃을 어린 나는 막연히 들국화라 불렀었다. 학교 화단이나 교장선생님 책상에서 볼 수 있는 국화는 그냥 국화이고 개망초는 들에서 피는 국화이니 들국화이리라 생각하였다.

해서 80년대 후반 '들국화'란 그룹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도 나는 자연스레 개망초를 떠올렸고 그룹이름도 마음에 들더니 노래는 더 마음에 드네 하면서 그룹 들국화의 음악을 듣곤 하였다.

세월이 흘러, 야생화에 관심을 갖게 된 지난해에야 비로소 내가 들국화라 생각하던 꽃이 '개망초'임을 알았다.

그 이름을 모를 때도 아름다웠지만 확실히 '개망초'라 이름을 알고 나니 예전보다 더 정이 갔다. 마치 통성명을 하고 정식으로 친구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이따금 산책길에서 개망초를 보게 되면 나는 나의 친구를 소개하듯 큰애에게 열심히 개망초를 이야기하였다.

사진을 찍을 줄 몰라서 실제보다 개망초가 덜 보이네요.
사진을 찍을 줄 몰라서 실제보다 개망초가 덜 보이네요. ⓒ 정명희
"○○아, 이 꽃 이름이 뭔지 궁금하지 않니?"
"뭔데?"
"개망초라고 부른대."
"개망초…."

"엄마 어렸을 적에 이 꽃이 참 예쁘다 생각했고 꽃 이름은 들국화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개망초인 것 있지."
"개망초, 개망초, 개망초가 뭐고 크크크…."

그 개망초를 올해는 뒷동산을 산책하면서 '떼거지'로 보게 되었다. 한 뿌리에서 어쩜 그렇게도 많은 꽃가지가 뻗어나는지. 먼저 핀 꽃들이 지고 나면 새로운 가지에서 새로운 꽃들이 또 피어나고, 피고 지고 피고 지고를 반복하여서 들녘은 늘 눈이 부셨다.

나는 개망초가 흐드러진 길을 지날 때마다 황홀경에 빠진 나머지 개망초 꽃송이 송이들이 '와아 와아' 나를 환호 해 주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하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 길을 산책하는 다른 '아줌마'들도 개망초를 보고 다들 한마디씩 하였다.

"안개꽃처럼 하얀 꽃이 너무 예뻐서 그 곳을 지날 때면 기분이 환해지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래요. 그런데, 그 꽃 이름이 개망초래요."
"아, 그래요? 너무 예뻐서 그쪽만 지나면 피로가 확 풀리는 것 같았는데. 개망초였군요."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을 지나는데 그럴 때면 놓칠세라 아이들에게 개망초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곤 한다. 그러면 큰애는 더 이상 꽃 타령하기 싫다는 투로 딴전을 피워 둘째에게만 개망초의 사랑을 전한다.

가까이서 본 개망초
가까이서 본 개망초 ⓒ 정명희
"○○아, 이 꽃 이름이 뭘까?"
"엄마, 이 꽃 이름이 뭐지?"
"개망초란다."
"배망초?"

"아니, 개, 망, 초."
"배, 망, 초?"

몇 번을 발음해 주어도 둘째는 여전하게 '배망초'를 연발했고 저도 우스운지 '배망초? 배,망,초?' 해놓고는 '잘 안 된다'며 쑥스러워 하였다.

오늘은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들고 산책을 갔고 역시 개망초 사이 길을 걸었다. 아무도 돌 봐 주지 않아도 저절로 피고 지는 들꽃의 생명력이 좋고. 그 아름다움에 비해 몸값타령하지 않고 지척에서 흐드러지게 피어주는 개망초의 소탈함이 좋다. 개망초는 참 좋은 친구다.

계절은 바야흐로 장마로 접어들었다는데 이번 장마에 개망초들이 무사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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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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