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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넷에서 찾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 영화 포스터
인테넷에서 찾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 영화 포스터 ⓒ 대원영화주식회사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때는 영화광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영화에 몰두했던 내가 처음 영화를 본 것은 가설극장에서였다.

요즘은 잘 상상이 되지 않겠지만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가설극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말 그대로 극장 건물 대신 천막을 친 임시 극장을 말하는데, 여름 방학이 되면 우리 동네에는 이런 극장이 들어와 영화를 상영하곤 했다.

샌드위치 맨으로 가설극장 표 구하기

이 가설극장은 일 년 내내 영화 구경 한 번하지 않는 시골 사람들에는 좋은 문화행사이기도 했다.

가설극장은 며칠 전부터 포스터를 붙여서 알렸는데 나는 포스터가 붙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매일 포스터 앞에 친구들과 둘러서서 알지도 못하는 영화배우들의 이름을 읊으며 괜한 흥분에 휩싸였다.

가설극장은 동네 가운데 있는 공터에 기둥을 세운 후 천막을 빙 둘러쳐서 임시극장을 만든 다음 중간에 드럼통을 놓은 후 그 위에 영사기를 고정 시키고 영화를 상영하는 식이었다.

이 모든 것을 운반 수단도 시원찮은 영세한 극장업자가 준비할 수 없기 때문에 그때 그때 현지에서 장비를 조달하면서 보상으로 돈 대신 입장권을 지급했다. 땅을 빌려 주는 사람에게는 입장권 다섯 장, 드럼통을 빌려 주는 사람에게는 입장권 두 장, 가설 극장을 설치해 주는 사람에게는 입장권을 한 장씩 주는 식으로 말이다.

정미소를 하는 친구 녀석은 경유 드럼통을 빌려 주고 표를 받았는데 우리 집에는 아무런 해당 사항이 없었다. 힘센 형도 없어 말뚝을 설치하는 일도 할 수가 없으니 나는 애초부터 공짜 표는 기대할 수 없었다.

문화 창달에 기여하는 가설극장?

그런데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었다. 바로 영화 홍보를 하는 일이었다. 이 일은 영화 포스터를 앞뒤로 붙인 판자를 어깨에 메고 다니는 샌드위치맨, 꽹과리를 치며 분위기를 잡는 사람과 마이크를 잡고 홍보를 하는 사람으로 구성된다. 샌드위치맨이 맨 앞장을 서고 그 다음 꽹과리를 치는 사람이 신나게 꽹과리를 치며 그 뒤를 따라가면 마이크 맨은 맨 뒤에 서서 열심히 홍보를 하는 것이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동민 여러분, 오늘도 국가 발전에 그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국가의 문화 창달에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저희 문화 프로덕션에서는 오늘 저녁 여러분들의 노고에 조금이라도 보답 드리고자 손에 땀을 쥐지 않고는 볼 수없는 명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상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녁 식사를 일찍 마치신 후 귀여운 자녀들의 손에 손을 잡고 마을회관 앞 공터로 나오셔서 최무룡, 장동휘, 이대엽 주연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기대하시고 고대하시고 감하시라.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불멸의 명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

그런데 꽹과리는 어느 정도 숙련되어야 하고 마이크 담당은 별도 전문가가 있으니 내게 돌아 올 일은 샌드위치맨뿐이었다. 그것이라도 한 번 해 보려고 장남 삼아 메고 몇 바퀴 돌다가 어머니와 딱 마주쳤다. 당연히 어머니는 펄쩍 뛰며 말리셨다. 말 안 들으면 아버지에게 이르겠다는 데야, 고집을 부릴 수만도 없었다.

천막 뚫고 극장 들어가기

그러나 포기하기에는 너무 재미있는 '총싸움'하는 영화였기에 나는 다른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천막 치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움푹 땅이 패인 곳을 눈 여겨 보아 뒀다. 땅이 패인 곳으로 천막을 들치고 몰래 들어가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그런데 그 계획도 잠시 후 무산됐다. 가설 극장 측에서 동네 유지 몇 분에게 초대권을 돌리면서 아버지에게도 한 장을 드린 것이다. 아버지가 안에 계시는 것을 알고서도 천막을 뚫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초저녁부터 극장 주변을 서성거렸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어 하는 수없이 화면이 비치는 뒤쪽에 앉았다. 영화가 비치는 화면이 큰 광목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뒤쪽에서도 선명하지는 않지만 볼 수가 있었다.

다행히 그날 나는 영화가 반쯤 진행됐을 때 극장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가설극장은 영화가 끝난 후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밀려 나오다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영화가 끝나기 얼마 전 미리 천막을 걷어 올려 줘야 한다. 어머니가 화면 뒤쪽에 쪼그리고 앉아 영화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학생 반값에 조금 있으면 천막 걷어 올리는 것을 감안해 떼를 쓰셨는지 거의 공짜로 나를 넣어 주셨다.

물론 나는 어머니께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집안일도 잘 돕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렇게 화면이 낡아 비가 내리는 것 같고 가끔 음성도 나오지 않아 "토키"라고 외치면서도 그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감명 깊게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아직 남아 있는 가설극장의 체취

이것이 내가 영화를 처음 접한 시기의 이야기다. 이렇게 영화를 보게 되어서인지 한참 영화를 보러 다닐 시기에도 좌석이 지정되어 있는 극장에서는 왠지 어색함이 느껴졌다. 나는 사람이 많아 입석으로 발돋움을 하면서 보다 중간에 사람이 나가 그 자리에 앉아 보는 것이 더 재미가 있었다.

이상한 것은 그 때 가설극장에서 본 영화는 원두막에 앉아 친구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데, 요즘 보는 영화는 극장 문을 나오는 순간에 이미 내용이 가물거린다. 가끔은 전에 본 영화의 비디오를 다시 빌려다 보는 일도 있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극장전'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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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진작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아름다운 자연과 일반 관광으로 찾기 힘든 관광지, 현지의 풍습과 전통문화 등 여행에 관한 정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생활정보와 현지에서의 사업과 인.허가에 관한 상세 정보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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