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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유임을 선택했다. 한나라당이 해임 건의안을 제출했고, 본인도 사퇴 의사를 밝혔던 윤광웅 국방 장관을 유임시키기로 결정하면서 노 대통령은 국민에게 '호소'했다. 국방 개혁의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고, 책임을 물을 만큼 합리적 인과 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고집·집착·오기를 부리고 있다며 30일에 해임 건의안을 표결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 지점에서 짚어야 할 대목은 노 대통령이 단순히 오기를 부리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해임 건의안이 가결됐을 경우 밀려올 엄청난 정치적 부담까지 기꺼이 껴안을 만큼 지기 싫어하는 성정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 검토 항목이다.
이 의아함은 "노 대통령도 정치인"이라는 말로 일축해도 무방할 듯 싶다. 국방 개혁을 이루고자 하는 '집착'도 앞뒤 재가며 속도와 수위를 조절할 정도의 정치적 감각은 갖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럼 노 대통령의 '계산'은 뭘까? 상당수 언론은 해임 건의안이 표결에 부쳐지더라도 부결될 승산이 있다고 노 대통령이 판단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의석수는 146석, 여기에 3석만 보태면 해임 건의안을 부결시킬 수 있는데 때마침 민주노동당이 해임 건의안 처리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으니 그리 어려운 싸움은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정황은 많다. 노 대통령은 27일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당의 기강과 규율을 유달리 강조한 바 있다. 그 다음날에는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렀다. 그 뒤 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은 해임 건의안 반대 의견이 모아졌다고 발표했고, 30일 의원 총회를 열어 해임 건의안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하기로 했다.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의원의 '반란'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을 했다고 믿을만한 정황들이 여럿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이 승부수가 먹혀들 경우 노 대통령이 얻을 수 있는 수확은 윤 장관 유임에 그치지 않는다. 4.30 재보선 참패 지리멸렬 상태를 면하지 못하는 열린우리당의 기강과 규율, 리더십을 다시 세울 수 있고, 한나라당에 내줬던 정국 주도권도 되찾아올 수 있다.
'전투'는 시작됐다. 이제 지켜볼 문제는 전투 개시 전에 짜놓은 전략이 주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한겨레>는 상당히 어둡게 전망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승부가 대단히 불리한 지형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윤 장관 살리기'가 낙선자 챙기기와 맞물리면서 국민의 눈총을 받을 수 있고, 총기 난사 사건의 충격파가 너무 크기 때문에 돌파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정말 그럴까? MBC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28일에 전국 성인남녀 10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 윤 장관이 사임해야 한다는 의견과 유임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고, 윤 장관의 사임을 전제로 언제 사임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질문에는 즉시 사임해야 한다는 응답보다 사태를 수습한 뒤 사임해야 한다는 응답이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여론이 이렇다면 노 대통령으로서는 '한 번 해 볼만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런 유동적인 여론에 불만 지피면 얼마든지 '굳히기'를 할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혀 별개의 뉴스처럼 보이는 사안이 눈길을 끈다. 표명렬 전 육군본부 정훈감이 주도하는 '평화 재향군인회'가 그것이다. '평화 재향군인회'가 가고자 하는 길은 표명렬 전 정훈감의 말에 집약돼 있다. "안보에 대한 담론을 국민의 것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것이다. 왜곡된 군대 문화를 개혁하고 자주적 안보관을 뿌리내리며 군비 축소 등 평화 정착 운동을 전개하겠다는 '평화 재향군인회'의 사업 방향은 노 대통령이 추구하고자 하는 국방 개혁과 맞닿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평화 재향군인회'가 국방 개혁의 우군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조선일보>가 이 기사를 1면 머릿기사로 올린 이유도 아마 비슷한 것일 게다. <경향신문>이 하루 앞서 단독 보도한 사안을 <조선일보>가 이례적으로 1면 머릿기사로 올린 점, 또 이 기사에서 '평화 재향군인회'를 '코드형 단체'로 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한 가지 상황을 더 얹자. 러시아의 인테르팍스 통신은 28일, 북한 관리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7월 하순에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낙 근거 없는 점치기 보도가 많은 게 북한 뉴스이다 보니 신중을 기해 읽어야겠지만 형세가 6자회담 재개로 기울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 6자회담 재개와 국방 개혁과의 상관관계는? 6자 회담이 재개되면 남북한간, 그리고 북미간의 긴장도를 완화시킬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이는 국방 개혁에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준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 보자면, 객관적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굳이 '작은 전투'를 마다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개최 시점이 언제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7월 개최는 이미 결정된 일, 관심은 상순이냐 하순이냐로 모아지고있다. 어차피 예정된 대화의 시점에 왜 그렇게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일까? 앞서 말한 '상황'이 언제 매듭지어 지는지, 또 그것이 국민 여론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를 충분히 살펴야 전략의 완급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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