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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 사무실 책상 옆에는 종이박스가 한 개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 폐지를 모읍니다. 물론 폐지라고 해서 다 모으는 게 아닙니다. 뒷면을 사용할 수 있는 종이만 모읍니다. 아내는 이것으로 아이들 교육자료를 만듭니다. 도서일지도 만들고 컴퓨터에서 필요한 것을 출력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글씨 연습도 합니다.

아내는 잔소리꾼입니다. 따라다니면서 간섭을 합니다. 어떤 때는 화장실까지 따라옵니다. 제가 휴지라도 팍팍 쓸 때면 꼭 한마디합니다.

"화장지 걸이에 적혀 있는 글씨가 보이지 않으세요?"

저는 화장지 걸이를 쳐다봅니다. 정말 뭔가가 써 있습니다. 저는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4칸 이상 쓰지 말라'고 적혀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화장지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가리킵니다. 4칸은 조금 부족한 것 같다고 하자 아내는 손을 흔듭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화장지는 질이 좋아요. 걱정하지 말고 쓰세요."

아내는 수시로 방 점검을 합니다. 할 일 없이 전기가 켜져 있는 방이라도 있으면 큰일납니다. 일정 이상의 전기를 쓰면 전기료가 훨씬 많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300kw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선풍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선풍기를 틀어놓고 딴 일이라도 하면 당장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전기는 거저 나오는 줄 아니?"

밥 먹을 때도 아내의 잔소리는 계속됩니다. 어제 아침에는 생선을 구웠습니다. 꽁치가 먹음직스럽습니다. 아이들 접시에 한 토막씩 담아줍니다. 아내는 아이들을 유심히 지켜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눈치가 없습니다. 뼈가 있다는 이유로 살점을 반이나 남겼습니다. 그냥 있을 아내가 아닙니다.

▲ 뼈가 있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꽁치의 살점을 많이 남기자 금세 아내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 박희우
"꽁치 한 마리에 얼만 줄 아니? 살점이 아직 많이 남아있잖아. 다 발라먹어."

식사가 끝나가는 모양입니다. 밥그릇 긁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밥그릇에 밥풀이라도 남아 있으면 아내의 눈꼬리가 금세 올라갑니다. 아이들이 빈 그릇을 아내에게 보여줍니다. 밥풀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먹은 그릇이며 숟가락 등을 설거지통에 담습니다.

아내는 분리수거에도 철저합니다. 음식물과 일반 쓰레기를 정확히 구분해냅니다. 짐승이 먹을 수 있는 것을 음식물, 그렇지 못한 것을 일반 쓰레기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생선뼈 그 자체만으로는 일반 쓰레기지만 살점이 많이 붙어 있으면 음식물로 취급한다는 겁니다. 아내는 재활용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도 곧잘 분리해서 보관합니다.

물론 아내가 항상 이렇게 아끼며 살아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가끔씩은 아내도 아낌없이 돈을 쓸 때가 있답니다. 제가 무엇이 필요하다고 하면 아내는 서슴없이 돈을 내놓습니다. 그 좋은 예가 디지털카메라와 라이터 크기 만한 소형녹음기입니다. 저는 지금도 이 두 가지를 아주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아끼며 살다보니 형편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올해로 결혼 10년 차입니다. 결혼할 때 2천만 원 전세로 살았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아십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무려 7500만 원 전세에 살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성공한 거 아닌가요.

오늘도 저는 사무실에 출근합니다. 출근하는 저를 보며 아내가 말합니다. 종이가 모아졌으면 가져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알겠습니다"라는 말을 뒤로하고 집을 나섭니다.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습니다. 매일 이런 발걸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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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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