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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 25일, 미국이 이끄는 나토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전쟁의 상처를 안아야만 했던 발칸반도의 작은 자치구 코소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주창하며 알바니아계에 대한 `인종청소'를  감행했고 이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전쟁은 3개월 동안 지속됐다. 2005년 7월, 코소보의 아픔은 상당히 아문 것 같아 보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인종간 전쟁 중이었다. 또한 전쟁 이후 늘어나는 인신매매는 혹독한 시련이었다. <오마이뉴스>는 언론재단 인권연수의 일원으로 코소보를 방문했다... <편집자주>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 전경.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 전경. ⓒ 김철효
한 여성이 있다. 마케도니아 출신 미트로비치(가명). 16살이던 1995년 그는 이웃으로부터 이태리에서 보모일을 하게 해주겠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떠났다. 그러나 실제로 코소보로 인신매매돼 성매매를 하게 된다. 하루 16시간이상 남성들을 상대하며 몸과 마음은 망가져 갔다. 2003년 우연한 기회에 국제인권기구를 만나 인신매매 피해자 신청을 했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성매매를 한 그를 집에서는 반겨주지 않았다. 오히려 창피하다며 집안에 가둬두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참다못한 그는 다시 인신매매 조직에 몸을 맡기고 말았다.


99년 공습 당시 최초의 현지인 종군기자였던 RTK(코소보 라디오·TV 방송국) 루고바 베톤이 전해준 한 인신매매 피해자의 사연이다. 4일 저녁(현지시각) 만난 그는 "정신적·육체적으로 이미 피폐해 있었다"고 피해자의 처참한 상황에 대해 간접증언 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현재 코소보는 65%에 달하는 실업률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UN 등 서방나라로부터의 경제적 독립도 큰 숙제다. 그러나 늘어나고 있는 '인신매매' 위협은 새로운 공포다."

이렇듯 현재 코소보는 인신매매와 전쟁 중이다. 코소보는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경유지로서 인신매매 조직의 거점 노릇을 하고 있다.

베톤은 "공습 이후 무정부 상태의 코소보가 인신매매 조직에게는 알맞은 곳이었다"며 "인신매매는 마약·조직폭력과 함께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주변의 나라로부터 인신매매를 당한 피해자들이 코소보로 들어온 뒤 이태리나 그리스 등 주변국으로 다시 보내지곤 한다"고 증언했다.

최근 미국무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인신매매 피해자는 80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집계된 피해자는 5306명뿐이다. 자발적으로 피해자라고 IOM(국제이주기구·인신매매 방지프로그램 운영) 등 국제기구에 등록한 사람들만 파악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 지역에서 인신매매 피해자로 집계된 인원은 최근 5년간 474명. 이들 중 81%가 성매매 종사자였다. 나머지는 강제노역 등에 시달렸다.

코소보, 인신매매와 전쟁 중... 피해자 53%가 미성년자

IOM에서 벌이는 성매매 반대 캠페인 문구.
IOM에서 벌이는 성매매 반대 캠페인 문구.
이들 피해자 중 421명이 알바니아, 몰도바,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불가리아 등지에서 온 외지인이다. 코소보가 경유지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 중 12%가 18세 미만 미성년자다. 현지 인신매매 피해자들은 현재까지 총 53명. 이들 가운데 미성년자는 58%에 달한다.

놀라운 것은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친인척과 지인들의 꼬임 등에 이끌려 성매매 등을 시작한다는 점. 물론 납치에 의한 사례도 많다. 헤라 샤나지 IOM 코소보 인신매매 방지 프로그램 담당관은 "이러한 현상은 모두 경제적 빈곤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장 큰 문제는 코소보 내에서의 인신매매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특히 지난해만 놓고 보면 국내 아동 피해자가 외국에서 오는 여성들보다 더 많다"고 우려했다.

아동 인신매매 갈수록 증가... 사회적 문제

전세계 피해자 5306명 중 발칸반도에 위치한 코소보를 포함 알바니아(370명), 마케도니아(745명)에 약 30%가 집중돼 있다. 이 지역이 IOM의 인신매매 방지 프로그램의 주요 대상국인 이유다.

이들은 코소보 정부, 경찰과 함께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선 피해자로 판명된 이들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를 위해 지역 시민·사회·인권단체들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법·제도적인 정비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아동 인신매매를 막기 위해 학교에서의 방지 교육은 물론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또 지역 언론을 통해서도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인신매매의 증가추세를 막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피해자들이 집으로 귀환했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샤나지는 "귀환 피해자들을 가족들은 창피하다고 가둬두는 사례가 많다"라며 "이러한 점은 또 다른 어려움"이라고 하소연했다. IOM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가족들에게 경제적 지원과 동시에 인식 전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귀환자들에 대한 인신매매 조직의 지속적인 성매매 강요 역시 큰 문제다. IOM 스위스 본부의 장-폴 쇼지 언론담당관은 "조직들은 이전에는 하루 16시간 강제 노동을 시키면서도 돈을 거의 주지 않았지만 귀환자들에게는 돈을 조금이라도 준다고 지능적으로 설득한다"며 "이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피해자들에게 큰 유혹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인신매매 방지 프로그램 실시.. 귀환 피해자들 내부 억압 문제 여전

페야 지역에 위치한 세르비아인 마을 촌장 야그비치 내외. 이들은 8대째 300여년을 이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페야 지역에 위치한 세르비아인 마을 촌장 야그비치 내외. 이들은 8대째 300여년을 이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현지에서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그들이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코소보의 수도 프리슈티나 시내에서는 "당신은 하룻밤을 위해 지불하지만 그녀는 삶을 지불합니다"란 성매매 방지 캠페인 문구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 문구에 관심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경제적 빈곤과 실업이 가장 큰 문제인 이곳에서 '인신매매'는 피부에 직접 와 닿는 문제가 아닌 듯했다. 국제기구는 증가하는 인신매매 방지를 위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인신매매는 당신 가족과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인종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코소보의 인구는 250여만명. 이들 중 95% 이상이 알바니아인이다. 나머지는 세르비아인과 소수 보스니아인, 로마 집시 등이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도시는 인종별로 자치구를 이루지만 다인종이 모여사는 곳도 있다.

코소보의 수도 프리슈티나에서 북쪽으로 2시간 정도 달려가 도착한 세르비아 정교의 성지인 '페야'시. 83개 마을에는 알바니아인 뿐 아니라 세르비아인과 보스니아인, 로마 집시 등 소수민까지 함께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언제 무슨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흐른다.

UN 소속의 페야시 행정담당관 안토니 톰슨은 "코소보 타 지역과 다르게 이곳에서는 특히 살인사건이 많이 일어난다"고 우려했다.

페야에서 자동차로 10분 동안 더 가면 세르비아인 마을 '시가'와 '브레스토릭'을 찾을 수 있다. 전쟁 당시 피난을 갔다가 지난해 9월 돌아왔다는 자브리치아(55·여)는 "처음 2~3일간 알바니아인들이 찾아와서 '왜 왔냐'며 협박을 하는 등 두려움에 떨었다"고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이곳에는 59 가구의 세르비아인들이 살고 있다. 전쟁 전에는 160여 가구가 있었지만 나머지는 아직 피난에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주변의 대다수 알바니아인들과 아무런 문제 없이 지냈지만 현재는 알바니아인들과 왕래가 거의 없다.

8대째 약 300여년을 시가에서 살고 있다는 시가마을 촌장 밀로라도 야그비치(75·남)는 "물론 이동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자녀들은 모두 세르비아-몬테그로로 유학을 가 있는 상태다. 한 주민은 지난해 9월 이후 단 한번도 알바니아인을 만난 적이 없다.

전쟁 당시 피난을 갔던 세르비아인들이 돌아왔을 때 마을은 거의 모든 것이 파괴됐다. 국제이주기구와 국제안보협력기구(OSCE) 등의 도움으로 현재는 59채의 가구가 재건축됐다. 이들은 한달에 45유로 정도 지원을 받고 있고 현재는 자급자족을 위한 농사 등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치 미오드라고(45·남)는 "우리는 여전히 국제기구와 여러 나라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소연한 뒤 "그러나 인종갈등으로 인한 위험이 남아있더라도 우리집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코소보 "We ♥ America"

▲ 지난 2003년 코소보를 방문한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을 위해 '클린턴 거리'를 만들었을 정도로 이곳에서 클린턴은 '빅스타'였다. 클린턴이 찾은 한 카페.
ⓒ강이종행 기자
#1.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 코소보에서도 큰 축하 파티가 벌어졌다. 수도 프리슈티나 중심가에서 '미국 독립기념일 축하 공연'이 펼쳐진 것.

이 자리에는 99년 코소보 공습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올브라이트가 직접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콘서트에서는 '뉴욕 뉴욕', '호텔 캘리포니아' 등 미국의 유명한 노래들이 현지 가수들에 의해 불려졌다. 콘서트 중간, 무대는 불이 꺼지고 '생일축하' 노래가 불려지기 시작했다.

"Happy birthday to beloved America"

#2. 코소보 공항을 나와 프리슈티나에 들어서면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사람들을 반긴다. 큰 건물 위에 왼손을 흔들며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걸려있다. 건물 밑에 뚫려 있는 도로의 이름은 '클린턴로'. 지난 2003년 이곳을 방문한 그를 기념하기 위해 시에서 만들어준 이름이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클린턴 사진이 걸려있는 카페와 그의 자서전을 파는 노상서점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는 이곳에서 그들을 세르비아인으로부터 해방시켜준 영웅이다.

코소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알바니아인들은 미국을 찬양하고 있었다. 사실 소수의 세르비아인의 착취와 폭력에 시달렸던 이들은 미국이 이끄는 나토(NATO)의 3개월 동안의 공격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알바니아인 정부가 들어선 상태.

때문에 코소보 국민들은 미국을 따를 수밖에 없어 보였다. 프리슈티나 거리를 걷다 보면 미국의 팝음악 음반을 파는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미국의 유명 브랜드를 파는 가게들도 여럿 보인다.

RTK(코소보 라디오·TV 방송국) 베라트 미프타이 기자는 "이곳의 젊은이들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어셔 등 미국의 팝가수들을 우상으로 생각하고 있고 나이키 옷을 입고 있다"며 "이처럼 세계화된 이들이 어른이 되면 인종차별은 없어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친미주의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일(토요일) 프리슈티나 시내에서는 3건의 차량 폭탄테러가 있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고 누가 왜 자행했는지 5일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 방송은 "미국 독립기념일에 올브라이트 전 장관이 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세르비아인들의 소행일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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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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