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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화축제위원회는 경주만이 가지는 문화의 정체성을 소박한 축제를 통해 정립시켜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 해 월명재 모습
경주문화축제위원회는 경주만이 가지는 문화의 정체성을 소박한 축제를 통해 정립시켜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 해 월명재 모습 ⓒ 경주문화축제위원회
경주는 유난히 달과 연관이 많은 고장이다. 찬란했던 신라의 천년 수도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아도 옛 서라벌땅 경주는 환하나 분답스럽지 않고 고즈넉하나 축 쳐지지 않는다.

지금도 사천왕사터에 가면 달을 벗 삼아 피리를 불었던 월명대사의 옷자락이 느껴지고, 남산의 미륵세존께 차 공양을 하던 충담사의 향기로운 맘이 전해지고, 환한 보름달에 비춰지는 둥근 능을 통해 죽음이 결코 애처롭지 않음을 말해주는 곳이 경주다.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여전히 공존하는 신라 서라벌과 신라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한다.

경주문화축제위원회(위원장 백홍수)는 이러한 녹록치 않은 신라의 멋과 맛을 흥겨운 축제로 풀어내는 단체다. 화가, 언론인, 국악인, 장인, 음악인에서부터 문화해설사, 일반 직장인에서 의사까지 경주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자생문화모임이다.

처음엔 신라의 달밤에 만나 술 한 잔 걸치며 풍류를 즐기다가 '놀라믄 제대로 놀자' 하고 판을 벌린 것이 월명재였다. 음력 9월 보름에 열리는 월명재는 피리를 불면 가던 달도 멈추고 듣는다는 신라시대 피리의 달인인 월명대사를 기리는 행사다.

경주문축위 3대 회장을 맡았던 김윤근씨가 행사에 앞서 축문을 읽고 있다.
경주문축위 3대 회장을 맡았던 김윤근씨가 행사에 앞서 축문을 읽고 있다. ⓒ 경주문화축제위원회
경주문화축제위원회는 첨성대나 안압지 등에서 월명대사에게 재를 지내고 대사의 피리소리에 혹했던 달 아래에서 한판 신명난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3월 삼짓날 전후로는 충담재를 여는데 이 행사는 미륵세존에게 차공양을 하고 경덕왕에게 안민가를 지어 바쳤으며 향가인 찬기파랑가를 지은 신라 고승 충담사를 기리는 행사로, 남산 삼화령에서 차나무를 심고 차씨를 나누는 등 차축제 형식으로 진행된다.

칠월칠석에는 천관제를 여는데 김유신 장군과 천관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애석해 하며 견우직녀가 하루 동안 사랑의 한을 풀었던 칠석날 이들을 맺어주는 행사로 '신라식 발렌타인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정월대보름에는 경주의 서천둔치에서 풍성하게 달집행사를 열고 음력 오월오일 단오에는 문화축제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도솔마을(전통음식점으로 문화위원회의 각종 모임을 하는 곳이다)에서 도솔단오제를 연다.

지난 정월 대보름 때 서천변에서 가졌던 달집태우기 행사
지난 정월 대보름 때 서천변에서 가졌던 달집태우기 행사 ⓒ 경주문화축제위원회
단오제는 회원들이 직접 그린 단오선을 판매해 그 수익금으로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하고 관람객들에게 술과 음식을 무료로 대접하는 푸짐한 잔치다.

처음엔 몇몇의 문화예술인들만이 모여서 치르던 축제를 98년부터는 보다 체계적인 조직체로 만들어 내실을 기했다. 초대위원장은 향가와 가사를 전공한 이임수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교수가 맡았으며 김덕수씨와 김윤근씨를 거쳐 올해부터는 4대 위원장인 백홍수씨가 깃대를 잡았다.

현재 35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경주문화축제위원회는 이러한 문화축제 외에도 경주 전반의 문화적 가치를 위해 남다른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경주남산의 산길마라톤대회 저지에 적극 나서고 저준위 핵폐기물처리장 반대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경주문화축제위원회는 화가, 언론인,국악인, 장인, 음악인에서부터 문화해설사, 일반 직장인에서 의사까지 경주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자생문화모임이다. 행사 중 함께 포즈를 취한 회원들
경주문화축제위원회는 화가, 언론인,국악인, 장인, 음악인에서부터 문화해설사, 일반 직장인에서 의사까지 경주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자생문화모임이다. 행사 중 함께 포즈를 취한 회원들 ⓒ 경주문화축제위원회
이는 지역에서 단체의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유아적 발상이 아니라 진정으로 신라 천년의 고도를 제대로 가꾸고 제대로 지켜가겠다는 신라사랑과 애향심의 적극적인 표현이다. 이런 실천은 세상을 바라보는 곧은 마음이야말로 지역 문화의 가치를 살려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규모가 큰 행사는 아니지만 소박하고 여유롭게 신라의 흥을 함께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경주만의 축제.

이들이 만들어가는 축제 속에서 햇살의 눈부심에 꽃잎을 열고 노을의 일렁임에 잎을 다물 줄 아는 연꽃의 고고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소식지  7월호에도 게재됐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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