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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만난 탤런트 고두심. "김만덕의 나눔과 베풂의 정신 배워야"
제주에서 만난 탤런트 고두심. "김만덕의 나눔과 베풂의 정신 배워야" ⓒ 양김진웅
"김만덕 할머니가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겁니다."

지난 9일 제주그랜드호텔에서 열린 김만덕 기념 전국 학술세미나 '김만덕의 시대와 현실'에서 만난 국민 배우 고두심씨. 제주지역을 중심으로 김만덕의 삶을 재조명하자는 의견이 전국으로 조심스레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그는 요즘 '김만덕 알리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김만덕(金萬德·1739~1812)은 조선 정조 때 전 재산을 털어 흉년으로 굶어죽을 뻔한 당시 제주도민의 2/3를 구한 경제 여걸. 그가 구한 제주백성이 무려 7천~8천 명에 이른다고 기록으로 전해진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김만덕기념사업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고두심씨는 지난해 광고출연으로 얻은 수익금 1억원을 흔쾌히 기부, 김만덕 연구 및 기념사업에 불씨를 당겼다. 더욱이 최근 여성계를 중심으로 김만덕을 신(新)화폐 여성인물로 선정하자는 여론이 일면서 김만덕을 향한 그의 관심은 부쩍 커졌다.

그는 "화폐의 여성인물로도 김만덕만한 인물이 없다"며 "가부장적 유교문화 속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아낌없는 나눔과 베풂을 실현했다는 것은 충분히 기릴만한 업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제주가 고향이 아니더라도 김만덕을 알게 됐다면 기꺼이 한 표를 던졌을 것"이라며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평민의 신분으로 일생동안 일군 재산을 남을 돕는데 기꺼이 내놨다는 것은 누구나 존경할 만한 가치"라고 덧붙였다.

제주에서 가마타고 올라온 김만덕. 정조로 부터 '내의원의녀반수(內醫院醫女班首)'란 벼슬을 받았다.
제주에서 가마타고 올라온 김만덕. 정조로 부터 '내의원의녀반수(內醫院醫女班首)'란 벼슬을 받았다. ⓒ 김만덕기념관

"만덕할망의 '나눔과 베풂' 정신 알려졌으면"

- 왜 김만덕인가?
"자신을 위해, 남편과 자식을 위해 재산을 쓴 게 아니라 남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놨다는 것은 칭송을 받을 만한 일이다. 나를 불태우고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했다는 것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 돈에 대한 철학이 남달랐다고나 할까. 객관적으로 봐도 일생 동안 번 돈을 모두 바쳐 헌신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제주도민을 굶주림에서 구제한, 박애정신을 실천한 진정한 '여성선각자'다. 그 것이 2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 예부터 알고 있던 여성인물인가?
"어릴 적부터 '만덕할망' '만덕할망 덕(德)에…'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제주도민이면 누구나 그런 기억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한동안 '만덕할망'이 '삼신할망'처럼 무슨 신(神)인줄 알았을 정도다. 그 만큼 김만덕의 위대함을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재산을 일군 것 외에도 기녀(관기)에서 벗어나 양인의 신분을 회복하고 독신으로 살면서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었던 선구자요 삶의 개척자다."

- 하지만 전국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인물 아닌가.
"제주지역이 좁고 작아서 그렇지 교과서에라도 실렸다면 한국의 대표 여성인물이 됐을 것이다. 또 내가 제주가 고향이 아니었더라도 그 사실을 알았다면 기꺼이 존경했을 것이다. 사실 그 할머니가 없었으면 나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 아니냐. 그 때 모두 죽어 부모의 씨가 말랐다면 나도 오늘의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김만덕의 정신을 배우며 살고 있다."

- 최근 국회를 방문, 김만덕을 신화폐의 도안 인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전달했는데.
"김만덕이야말로 화폐인물로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평생을 돈과 함께 살아온 분이 아니냐. 예나 지금이나 신분과 높낮이를 돈으로 평가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번 돈' 모두를 내놓았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왕의 부름을 받고 출륙금지령까지 깨며 육지로 나가는 최초의 여성이었고 여성의 최고벼슬인 의녀반수까지 오르는 등 모든 부분에서 최첨단을 걸었다. 화폐의 소중함을 알듯이 화폐를 볼 적마다 김만덕의 정신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사극 <김만덕> 드라마...노년 연기는 맡을 용의 있어"

탤런트 고두심
탤런트 고두심 ⓒ 양김진웅
- 입문 초기에 김만덕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았다는데.
"1976년 MBC의 <정화>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일일연속극인데 6개월~1년 정도를 출연한 것 같다. 72년에 탤런트로 입문했으니까 초창기 작품인 셈이다. 당시에 탤런트 임채무씨와 이경진씨가 동생으로 출연했다. 소녀시절부터 노년기까지 다룬 작품으로 기억한다."

- 지난해 '대장금' 붐을 이어 KBS에서 사극 '김만덕'을 제작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제주도 현장답사까지 했다는데.
"여러 사정으로 도중하차한 것이 너무 아쉽다. 당시 KBS 담당 PD로부터 '잘 도와달라'고 해서 '도울 수 있는 것은 돕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때 <장희빈>의 후속작으로 계획하고 있었는데 KBS내 조직개편으로 인해 유야무야됐다. 담당 PD는 이후 방송사를 나와 별도의 기획사를 차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후 소식은 잘 모르겠다."

- 요즘의 흥행 흐름으로 봤을 때 '김만덕'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다고 보나.
"MBC 인기드라마 '대장금'(극본 김영현)을 연출한 이병훈 PD도 당시 장금이보다 김만덕에게 더 호감을 가졌었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기만 한다면 장금이보다 만덕이가 더 매력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 김만덕은 당시 최첨단을 걸었던 인물로서 드라마틱한 요소가 상당히 많다. 여자로서 그 시대에 남자들도 할 수 없는 일을 했다는 것, 여성으로서 가마를 타고 금강산 구경까지 갔다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요소다."

- 만약 김만덕 드라마를 만든다면 출연할 용의는.
"배우가 작품을 가릴 수가 있나. 하지만 '젊은 만덕'은 보다 열심히 하고 있는 젊은 배우가 맡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만덕의 노후 장면 정도는 맡을 용의가 있다."

'김만덕' 드라마와 콘텐츠 사업의 현주소는?
올해 TV 드라마 제작용 '시나리오 공모' 진행

▲ 제주도 모충사 내 '김만덕기념관'에 있는 초상화.
ⓒ김만덕기념관
2003년 11월 창립한 (사)김만덕기념사업회(대표 강재업)가 김만덕 학술총서 발간, 만덕묘 성역화사업, 화폐인물 수록 사업, 김만덕 드라마 제작을 위한 시나리오 공모 사업 등을 통해 다양한 김만덕 재조명 사업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고려대 문화콘텐츠 연구회(대표 정창권 고려대 초빙교수)가 제주현지답사 등을 통해 김만덕 관련 단행본 및 만화 출간을 진행하고 있다.

김만덕을 다룬 영상물로는 1976년 MBC의 <정화>라는 드라마에 이어 2003년 3월 EBS가 2회에 걸쳐 조선 최초의 여자 거상 김만덕의 삶을 조명한 논픽션 드라마 '역사극장-의녀 김만덕'이 제주출신 의녀 김만덕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또 올해 KBS 라디오에서 다큐 '인물과 사건-10만원권 화폐모델' 특집 방송을 통해 30분 분량으로 김만덕을 소개하기도 했다. 만화로는 여성학자 김재희('이프' 편집인)씨와 만화가 장차현실씨가 그린 <고래소녀 만덕>(고래가 그랬어 엮음)이 연재 중이다.

이영애의 출연설로 화제를 모았던 KBS 사극 <김만덕>은 한때 제작팀이 제주현장답사까지 하는 등 열의를 보였지만 조직개편과 맞물려 도중하차했다. KBS 2TV가 지난해 초 방영을 준비했던 사극 <김만덕>은 장희빈 후속으로 방영될 예정이었던 30부작으로 조선 영조∼순조 때의 의녀반수 김만덕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룰 예정이었다.

그 외 시문학작품으로는 1971년 김태능의 '김만덕전'을 비롯, 81년 정비석의 소설 '제주기 만덕', 이전문의 '제주의 첫 여인 만덕' 등이 있다.

지난해 12월 김만덕기념사업회는 '의녀 김만덕 활약상 자료조사 연구보고서'를 통해 정약용의 <다산시문집> 등 조선 실학자들이 김만덕을 칭송한 글을 대거 발굴하는 성과도 거뒀다.

이 보고서를 계기로 만덕의 기본정신이 ▲평등성 ▲도전성 ▲문화성 ▲세계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봉사상 수준의 '만덕상'(제주도 주관)에서 탈피해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한국여성을 발굴하는 전국사업으로 확대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 양김진웅

덧붙이는 글 | (사)김만덕기념사업회(시나리오 문의 016-693-0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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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대자(大者)는 그의 어린마음을 잃지않는 者이다' 프리랜서를 꿈꾸며 12년 동안 걸었던 언론노동자의 길. 앞으로도 변치않을 꿈, 자유로운 영혼...불혹 즈음 제2인생을 위한 방점을 찍고 제주땅에서 느릿~느릿~~. 하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세 아이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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