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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동안 함께 했던 맹꽁이 배낭/묶고 붙이고 얽어매어 49일간 함께한 배낭
백두대간 동안 함께 했던 맹꽁이 배낭/묶고 붙이고 얽어매어 49일간 함께한 배낭 ⓒ 정성필
나는 전문 등산장비를 가지고 출발한 사람이 아니다. 출발할 때 나의 장비는 형편없었다. 45리터짜리 옆이 불룩한 맹꽁이 배낭에, 아버지께서 쓰시던 무게만 7킬로그램이 나가는 5인용 텐트를 가지고 다녔으니 나머지 장비야 빤하다. 나는 전문 산악인도 아니었고, 산을 자주 다니는 편도 아니었다. 장거리 산행은 지리산 종주 몇 번 한 것뿐이다.

지리산 주능선 종주는 가는 곳 마다 산장이 있어 특별한 막영의 경험이 필요치 않았다. 그래서 장거리 산행인 주능선 종주를 했어도, 산행 장비에 대해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몇 년 내 몸에 붙어 다녔던 배낭에다 아버지께서 쓰시던 장비를 그대로 가지고 백두대간에 도전 했다. 무모한 짓이었다.

장비는 지금 초현대화 되어 각종 기능성으로 산행하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데도 나는 그러한 정보조차 없이 출발했으니 한심한 백두대간 종주자였다. 다만 발은 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출발 며칠 전 고민 끝에 거금을 투자해서 고어택스 등산화를 샀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고어택스가 무언지도 몰랐다. 한 마디로 산이나 등산 장비에 대해서는 무지 그 자체였다. 고어택스 등산화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도 모르고, 언제나 나를 괴롭혔던 무좀을 걱정하고 무좀약을 몇 가지 챙길 정도로 고어택스에 대해 무지했다.

깜빡 잠/초기엔 기절에 가까운 잠이었지만 나중으로 갈수록 이 잠은 꿀 같은 잠이 되었다
깜빡 잠/초기엔 기절에 가까운 잠이었지만 나중으로 갈수록 이 잠은 꿀 같은 잠이 되었다 ⓒ 정성필
신발은 값어치를 했다. 백두대간 동안 나는 신발 덕에 나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었다. 이제까지는 물건을 선택할 때 싸고 좋은 것을 선택했다. 값은 싼 데 좋지 않은 것과 가격은 비싼 데 좋은 것이 있다. 그러면 과거에는 경제적 저렴함을 기준으로 선택했다. 백두대간 후에 사고방식이 바뀌었다. 나는 무좀이 사라진 걸 알았다.

백두대간 중 무좀약을 오랜 시간 가지고 다니면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발이 불편해서 쉴 때마다 신을 벗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신을 신고 있는 게 벗는 것 보다 더 편했다. 그건 축복이었다. 발에 물집이 잡혔다거나 발에 이상이 생겨 운행하는데 힘이 들었던 적은 없었다. 다만 지리산을 벗어나서 복성이재를 갈 때부터 왼쪽 엄지발가락에 감각이 없어진 것 밖에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부분 백두대간 종주자들의 발가락 한두 개쯤은 감각이 없어진다 했다. 심하면 양 발의 발가락이 다 감각이 없어진다는 소리도 들었다. 종주 마지막 즈음, 나는 오른쪽 왼쪽 엄지와 검지 중지까지 6개 발가락에 감각이 없는 증세가 생겼다. 하지만 다른 증상은 없었다. 다행인 셈이다. 관절이 더 아팠다거나, 심각한 부상을 당한 적은 없다. 하지만 등산화와는 달리 부실한 장비는 대간 내내 나를 애먹였다.

수정봉을 지나 사치재에서 복성이재를 올라설 때 문제가 생겼다. 배낭 우측 끈이 반쯤 끊어졌다. 45리터 배낭에 30킬로그램이 넘는 무게를 넣고 다녔으니 그것도 험한 산길을 다녔으니 배낭끈이 끊어지는 게 당연한 거다. 결단을 해야 했다. 꿰메야 했는데 바늘 실이 없다. 우선 무게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배낭을 열었다. 물건을 죄다 꺼내놓고 버릴 것과 버리면 안 될 것을 골랐다. 그동안 배낭이 무거워 몇 번 버려야할 게 무언지 생각만 했는데, 배낭끈이 끈어진 이상 반드시 무언가는 버려야했다.

“무좀약, 수저, 젓가락, 상의 3벌 하의2벌, 속옷 각2장씩, 텐트, 비상약, 비옷, 미숫가루, 치약, 칫솔, 비누, 수건, 된장, 고추장, 멸치, 졸임 멸치 한 봉지, 쌀, 들기름, 카메라, 건전지, 초 한 박스, 랜턴, 노트, 필기구, 버너, 코펠, 부탄가스 3개, 모기약, 그라운드시트, 성경, 찬송, 그리고 사회과학 책과 소설 몇 권…. 지난번 천왕봉 오를 때 몇 번 버리려고 망설이다 못 버렸던 물건들이다. 골라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갈 수 없다.

배낭끈이 반으로 잘라져 버린 상태, 배낭을 맬 때는 일부러 나머지 반이라도 끊어지지 않게 좌측으로 무게를 옮기려고 자세를 취하다 보니 어깨부터 허리까지 통증이 온다. 무게를 줄여야 한다. 버려야 간다. 버리지 않으면 갈 수 없다. 결단해야 하는데,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다.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 내가 전문 등산인이었으면 버릴 것과 가져갈 것이 명확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버릴게 무언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물건을 새맥이재 샘터 앞 공간에 펼쳐 놓은 채 망설인다. 갈 길은 먼데, 여기서 이렇게 망설일 수만은 없다. 선택해야 한다. 나중에 후회할지라도 지금 후회하지 않으려면 선택해야 한다. 끝까지 가야 한다. 오랜 시간 물건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선택해야 했다. 오랜 시간 생각한 끝에 기준을 만들었다. 버리는 기준은 간단했다. 그동안 한 번도 사용 안 한 것과 한 번이라도 사용한 것을 따로 분리하는 것부터 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 중에서 책이 제일 무거웠다. 대간 시작할 때 나는 시간이 많을 줄 생각했다. 저녁에 너무 심심할까봐 또 대간 중에 부족했던 부분을 채울 요량으로 꽤 많은 책을 들고 왔다. 그 책을 다 지고 사치재까지 왔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책은 한 번도 펴볼 기회가 없었다. 저녁이면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잠들었다. 운행 중 쉬는 시간은 책을 읽을 만큼 장시간 쉬지도 못했다. 갈 길은 멀고 해는 질 것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쉴 수 없었다.

당연히 책 읽는 일은 불가능했다. 산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했다. 얼마나 준비 없이 백두대간을 시작했던가? 버릴 목록 1호로 책을 먼저 선택했다. 젊은 날 나를 키웠던 사회과학 전 권과 소설을 버리는 쪽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찬송가를 선택했다. 성경은 잠자기 전 읽었으니 선택에서 제외했지만 찬송가는 버리는 쪽으로 분류했다.

무게 때문에 버려야 했다. 버리는 무게만큼 가슴이 무겁게 미어진다. 멸치도 선택했다. 마른 멸치는 계속 가져가기로 하고, 영양을 생각해서 특별히 만든 들기름에 꿀을 재어 볶은 멸치 한 봉(약 1.5키로그람)도 버리는 쪽으로 분류했다. 옷도 두 벌만 남기고 두 벌 이상 되는 것은 다 버리기로 했다. 쌀도 삼일분만 남기고 버리는 쪽으로 분류했다. 초도 한 박스는 너무 많았다.

두 자루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는 쪽으로 분류했다. 코펠도 두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는 쪽으로 모았다. 그렇게 남길 것과 버릴 것을 구분했다. 버릴 것을 모아보니 양이 많았다. 아까워 다시 가져가고 싶은 물건이 눈에 띈다. 아깝지만 버려야 한다. 끝까지 가야한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004년 5월 16일 부터 7월 4일까지 백두대간 종주했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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