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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반적으로는 못 본 척, 못 들은 척 외면하는 사람이 제일 많습니다. 전철이나 길거리에서 빌어먹는 사람들을 대할 때 그렇습니다. 사무실로 불쑥 들어와서 뭘 사라고 하는 장애인이나 외판원들을 그렇게 대하는 사람들도 많이 봐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공개적인 구걸행위는 소극적인 외면이 거절의 손쉬운 방법이 되는 셈입니다.
제가 어제 겪은 일은 단돈 1300원에 얽힌 일이지만 간단하지 않은 여러 측면의 생각거리가 됩니다.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전주행 막차를 타려고 하는데 돈이 모자랐습니다. 1300원이 모자랐습니다. 꼬박 이틀 동안의 강화도-서울 나들이에 돈을 다 썼습니다. 신용카드만 믿고 있었는데 매표창구직원이 카드결재는 안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급히 현금인출기 앞으로 달려갔지만 내 카드는 법인카드라 현금서비스가 안 되는 카드라는 걸 확인했을 뿐입니다. 돈을 뽑을 수도 없었던 것이지요.
호주머니를 다 털어봤는데 1300원이 모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시간은 흘러 막차 시간이 10분밖에 안 남게 되었습니다.
아까 그 창구로 가서 매표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1300원을 꾸어 줄 수 있느냐고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낯선 사람의 도움을 거절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와줄 능력이 없다고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여직원도 자기는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돈이 없다기보다는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고 돈을 다 빌려주느냐?'는 말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 모진 말을 할 수 없으니 돈이 없다고 하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되면 저는 당연히 저를 믿게 하기 위한 방법들을 주섬주섬 제시해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여직원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믿음은 국가기관이 증명하는 각종 증서보다도 그 사람의 행색이나 말 품새에서 판단하게 됩니다. 결국 이런 면에서 그 여직에게 저는 믿음을 주지 못한 것입니다.
미안해서 그랬을까요? 그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돈이 없는 이유'를 댔습니다.
"언제는 1만원을 빌려 줬는데 나중에 연락 했더니 도리어 욕을 하더라,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간 사람도 감감무소식이 되더라, 빌릴 때뿐이고 다들 돌아서면 그만이더라"면서 저 역시 그런 부류의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내비쳤습니다. 그리고는 "어디 아는 사람한테 부탁 해 보세요"라고 별 효험도 없는 조언을 해 주었을 뿐입니다.
하루에도 수 백 명, 수 천 명의 사람을 대하는 그 여직원의 입장이 이해가 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 어린 여직원은 돈 만원을 잃은 게 아니라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을 빌려 간 사람들의 무소식을 보며 그런 사람들의 의도성까지 의심하는 듯했습니다.
많아야 두세 번, 기 만원을 근거로 아예 (차비 빌려 달라는)사람들을 믿지 않기로 작정하게 된 그 여직원의 결정을 지지할 수 없는 내 심정이 착잡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1300원이 모자라 막차를 놓쳤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저는 매표관리사무실로 갔습니다. 관리사무실에서 나온 남자직원이 빌려 주었습니다.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더니 그냥 주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 분 역시 도움을 달라는 사람들에게 많이 시달린 사람 같았습니다. 여러 차례 거절을 하다가 떼(?)를 쓰는 경지에 이르게 된 제 부탁을 마지못해 들어주면서 돈을 되돌려 받을 생각을 포기하는 듯했습니다. 속는 셈 치겠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저에게 '사람에 대한 믿음'을 되살릴 수 있게 해 달라는 기회를 주신 것이라 여기게 됩니다. 제가 이 돈을 갚지 않으면 그 사람 역시 사람에 대한 믿음을 모두 놓아버릴지도 모릅니다. 나는 꼭 그 여직원도 찾아가서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믿음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그 여직원이 돌려받지 못한 돈 몇 만원을 제가 쥐어주면서 사람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빌고 싶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낯선 사람이 제게 도움을 달라고 할 때의 여러 경우들이 떠올랐습니다. 나랑 아무 관계도 없는 낯모르는 사람에게 조건 없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저를 가다듬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