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은 바로 1970년대 노동자의 일기와 수기를 묶은 책이다. 1978년에 이오덕 선생의 <일하는 아이들>이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국민학교에 다니던 농촌 아이들의 모습을 진실하게 보여줬다면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은 서울 변두리 야학에 다니는 10대 근로자들의 가난한 일상을 진실하게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편저자인 한윤수씨는 초판 발행 당시의 탄생 사연을 개정판 머리말에다 이렇게 털어놓았다.
1978년 초 노동야학의 선생님이었던 두 대학생이 신림동, 봉천동 등지의 야학에 다니던 노동자들의 글을 모아 왔다. 그러나 작문시간에 쓴 감상문 수준이어서 진실한 생활체험이 담겨 있지 않았다. (중략) 하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누가 쉽게 공개하겠는가. 어쨌든 자료를 모으는 데 1년 반이란 시간이 걸렸고 대학생들의 헌신적인 자료발굴 노력과 노동자들의 희생적인 일기 공개로 이 책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발행하자마자 KBS 텔레비전에서 이 책의 실제 저자인 노동자들과의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그러나 걸핏하면 사람을 잡아가는 계엄하의 험악한 분위기에서 노동자들의 신상을 공개할 수 없어서 방송국의 인터뷰 요청에 응할 수 없었다. (중략) 지금은 40대의 중년 가장이나 주부가 되었을 그리운 얼굴들. (이하생략)
-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6~7쪽에서
그러나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은 초판 발행 당시 출생만 하였을 뿐 햇빛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무덤 속으로 직행하고 말았다. 1980년에 발행하자마자 군사정권에 의해 판매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을 하거나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얘기가 담겨 있지 않은데도 당했다. 더구나 이 책의 발행인이며 편저자였던 한윤수씨는 석 달 동안 숨어다니다가 청년사를 후배에게 넘겨주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 지으며 살게 되었다.
이 책을 시인 박노해씨가 그 시절에 눈물로 읽었다고 한다. 자취방에서, 기숙사에서 감시의 눈을 피해 서로 돌려보았다고 한다. 그는 이 책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이 다시 내 앞에 돌아오다니,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어떤 문장가나 지식인이 쓴 글보다도 감동적이다. 진실한 생활의 힘과 역경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몸부림이 활자 위로 피어오른다. 정직하게 땀 흘리며 노동하고 인간다운 미래를 꿈꾸던 어린 노동자들의 일기와 생활고백이 20여 년 시간을 넘어 여전히 풋풋하다. 이들의 눈물겨운 희생과 고통을 디딤돌로 지금 여기, 우리들이 서 있다.
-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뒤표지에서
이 책에 들어 있는, 국졸 15세 소녀 미싱사(전북 부안 출신)의 가난하지만 소중한 사연 두 가지를 들여다본다.
1월 14일 금요일
아이롱에 손을 디였기에 쓰라리고 에리다. 장난을 하다가 딱지까지 떨어졌다. 너무도 아팠다. 난 참지 못해 울어버렸다. 누구 하나 위로하는 사람 없었고 아픈데 안 아프도록 묶어주는 사람 하나도 없었다. 갑자기 집 생각이 난다. 집에서 같으면 우리 엄마가 다정한 손으로 약을 발라 주시고 묶어 주실 것이다.
1월 26일 수요일
남한테 굴복하며 살아가서는 안 된다. 비록 남한테 신세를 많이 졌을망정 굴복해서는 안 된다. 난 이불도 없다. 이 직장살이 하면서 이불 때문에 설움도 많이 받았다. 성숙이는 자기 이불 혼자서 못 덮는 게 짜증스러운가보다. 같이 덮고 자는 게 무척이나 못마땅한 것이다.
-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17쪽에서
이 책에는 10대 노동자 서른세 명의 글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작문법이나 맞춤법 표현에 어긋나는 것이 눈에 자주 띄지만 오히려 다듬어 놓지 않았기 때문에 필자의 환경이나 노동현장이 생생하게 다가와서 좋다.
수원의 S그룹 계열사에서 인사담당으로 일할 때 나는, 입사교육 중인 여성 생산직사원들 중 중학생 나이의 나이 어린 몇몇에게 퇴근 후에 햄버그스테이크나 비프스테이크 같은 음식을 사주곤 했다.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게 꿈만 같다고 하며 너무 맛있게들 먹었다. 동생 같은 아이들에게 한끼라도 맛있는 걸 먹게 해주고 싶어서 그랬는데 좋아들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러고는 “여성답게 몸가짐을 바로 하여 꼭 좋은 남자 만나서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고 하며 “힘들어도 꿋꿋이 일하면서 꼭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아이들은 사내식당에서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밝은 표정으로 "아저씨!" 하고 외치며 손을 흔들곤 했다. 그러나 생산직 신입사원 중에 꼭 그런 참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한 번은 “우리 과에 배치해준 고졸 출신 누구와 누구가 나오지 않는다”는 항의를 생산부서 서무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번화가에서 누군가가 “아저씨” 하고 부르기에 돌아보니 그만두었다는 그녀들이 아닌가. 심하게 화장한 그녀들은 “우리 룸살롱 나가요. 돈벌이 괜찮거든요” 하고 웃는 거였다.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에 나오는, 벌이는 적지만 유혹의 길로 빠지지 않고 끈기있게 일하며 야학에서 공부하는 여성들의 신념이 값지다. 그런데 이상하다. 노동자 임금인상은 자주 있는데 그녀들의 벌이는 왜 (가난한 전업소설가 벌이가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현재나 늘 그렇듯이) 늘 그대로인가. 쓴소리 한마디 해야겠다.
"많이 받는 사람에게나 적게 받는 사람에게나 늘 같은 비율로 인상해 주니까 늘 그런 거다. 300만원 월급에 10% 인상하면 30만원 더 받지만 70만원 월급에 10% 인상하면 7만원밖에 더 못 받지 않는가."
덧붙이는 글 |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평전 <배호 평전>, 생명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6부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2005년 12월 출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