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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바리와 호랑이 이야기>
책 <바리와 호랑이 이야기> ⓒ 이른아침
해리 포터를 읽으면서 왜 우리나라에는 이에 버금 가는 재미있고 좋은 아동용 판타지가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만한 판타지 소설은 거의 없고 지나치게 성인 것을 모방하거나 흥미 위주의 비교육적인 판타지만이 난무한 현실.

그러기에 많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판타지 소설을 사 주거나 읽히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보다 교육적이면서도 신비롭고 새로운 형태의 한국식 아동용 판타지 소설은 과연 없을까?

<바리와 호랑이 이야기>는 이와 같은 한국 판타지 소설계의 문제점을 해소하며 어린이용 에듀테인먼트 판타지 소설의 형식을 시도한 책이다. 저자 서진석은 일반 소설가가 아니라 외국에서 비교민속학을 공부하는 학자이다. 그는 발트 3국과 핀우그르 민족의 신화들을 탐독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신화를 바탕으로 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고민 끝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여느 한국 아이들처럼 오즈의 마법사니, 피터팬이니, 인어공주니, 이렇게 유럽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동화와 신비소설을 접하고 자란 나는, 이렇게 우리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언젠가 꼭 한 번 써 보고 싶었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우리 고유의 판타지 문학이 드문 현실에서 저자의 이와 같은 새로운 시도는 고전 소설을 끌어안으며 시작된다. 책의 구성은 고전 소설의 주인공과 약간의 스토리를 채택하되 이것들이 저자가 새롭게 창조한 이야기 속에 녹아 들어가는 방식을 취한다.

아이들은 새롭게 재구성된 고전 소설의 인물들에게 친밀감을 느끼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 수 있다. 어린이들이 잘 알고 있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라든가 부모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 길을 떠나는 바리 공주 이야기, 단군 신화 등이 전체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고 하여 각각의 이야기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창조한 이야기는 고전 소설의 모티프를 바탕으로 하여 완벽하게 새로운 이야기로 거듭난다. 나쁜 호랑이와 좋은 호랑이의 대립, 바리 공주가 동물원에서 잃어버린 부모님을 찾으려고 여행을 떠나는 것 등은 저자에 의해 완전히 재창조된 새로운 스토리이다.

부모님을 찾기 위해 나쁜 호랑이들을 물리쳐야 하는 바리. 이 아이는 온갖 토속신들을 찾아 다니며 여의주에 그들의 기를 모으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바리가 여행하는 동안 착한 호랑이 백호가 항상 그녀를 따라 다니며 토속신들을 쉽게 찾도록 도와 준다.

등장하는 토속신들은 우리의 민간 신앙에서 이야기로 전해 내려오는 조왕신, 측간신, 우물신 등이다. 화장실을 지키며 길게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휘날린다는 측간신이나 부엌의 신으로서 불을 관리한다는 조왕신의 모습이 아주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책을 읽는 아이들은 바리의 여행을 따라 다니며 다채로운 우리 고전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을 만나게 된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친숙한 것도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많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더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바리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나쁜 호랑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용감한 아이였기 때문에 임무를 부여 받았다는 설정은 마치 해리 포터가 특별한 마법사이기에 어려운 일을 해결해야 하는 것과 유사하다. 해리 포터에도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듯이 이 소설에도 늘 신기한 이야기와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신비로운 일들이 펼쳐지면서도 환경 오염 문제나 인간 사회의 각박함 등을 중간중간에 끼워 넣어 교훈적인 내용이 잘 포함되어 있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는 동시에 교육적인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치는 바리의 여행을 통해 착하고 정직하며 용감하게 사는 법도 배운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우리의 토속신들에 대해 꼬리말을 달아 설명해 준다. 이 설명들을 통해 아이들은 우리나라 고전과 민담, 설화에 보다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다. 설명을 읽다 보면 우리 고전의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소박하고 귀여운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측간신의 긴 머리카락. 너무 이상한 설정이 아니냐고요? 우리나라 설화 속에 등장하는 화장실을 지키는 측간신은 젊은 여신으로 5자(1자는 약 30.3 센티미터)나 되는 머리카락을 발가락에 매고 그 수를 세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샘이 많고 부끄러움도 많아서 자기가 있는 화장실에 누군가 인기척을 하고 들어오지 않으면 자기의 긴 머리카락으로 사람을 휘감아 화를 입힌다고 하죠.

그래서 옛 조상들은 화장실 앞에서 인기척을 해서 측간신이 놀라지 않도록 했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이 화장실 앞에서 노크를 해서 사람이 있는지 알아 보는 것처럼,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 사람을 위한 배려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우리 민담을 좀더 많이 알고 가까이 하면 좋겠다. 책을 읽다 보면 사라져가는 우리 옛 것에 대해 너무 무심해 왔던 것이 아닌가 새삼 반성하게 된다. 그저 '신데렐라', '인어공주' 이야기가 들어 있는 세계 문학 전집을 사다 놓고 아이들에게 읽히기보다 질 좋은 우리 문학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어른들이 새로운 세대에게 해 주어야 할 일이 아닌가!

바리와 호랑이 이야기 1 - 첫 번째 이야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서진석 지음, 신지원 그림, 이른아침(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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