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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벌써 보름쯤 전이었나 봅니다. 어린이집을 나서는 막내 놈 한쪽 눈이 조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너 눈이 왜 그러니?"
"으응, 비눗물이 눈에 들어갔어."

막내가 전염성 눈병에 걸렸어요

막내놈 대답이 하두 그럴 듯해서 그날은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지났는데 드디어 이튿날에 일은 터지고 말았습니다. 눈병 같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퇴근하는 길에 서둘러 녀석을 데리고 안과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은 '전염성'이라는 말에 특별히 힘을 주어 눈병에 감염되었음을 알려 줍니다.

"아마 보름쯤 갈 겁니다. 그동안 반드시 수건을 따로 쓰게 하세요. 그리고 손은 항상 깨끗하게 씻어 주시구요. 그러지 않으면 온 가족이 모두 눈병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의사 선생님의 이런 심각한 경고를 당시 애 엄마나 나나 그저 흘려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막내 놈이 전염성 눈병에 걸렸다면 어린이집에도 못 보낼 텐데 당장 내일부터 녀석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그게 가장 큰 걱정이었으니까요.

집에 돌아와서 이리저리 생각한 끝에 결국 막내 녀석을 할머니 댁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녀석을 할머니 댁으로 보내기로 했으면서도 좀처럼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다리며 허리며 구석구석 불편한 몸을 갖고 있는 할머니하고 녀석이 얼마나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지요. 그렇지만 그 외는 별 뾰족한 수도 없는 터라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막내 녀석을 차에 태우고 할머니 집으로 가려는데 막내 놈은 아주 신이 나 있습니다.

"거 봐. 형아는 엄마, 아빠 말을 안 들으니 할머니한테도 못 가잖아. 나는 할머니 집 간다. 잘 있어 형아. 나중에 또 봐."

그런데 이렇게 신이 나서 할머니 집으로 간 막내 녀석은 이튿날 눈을 뜨자 마자 울고 불고 난리였다고 합니다. 하긴 녀석은 애초 아빠하고 자기하고 둘이서만 할머니 집에 놀러간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 보니 아빠는 간 곳 없고 저 혼자 달랑 남아 있었으니 녀석 딴에는 깜짝 놀랐겠지요.

집에서라면 아침에 눈만 뜨면 제 놈을 몹시 반겨 주었을 엄마의 손길이 있었을 텐데 그것도 없었을 테고, 또 녀석과 매순간 다투고 놀았던 제 형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을 테고, 밥상 머리에서 우유컵을 들고 녀석에게 재촉하는 아빠의 짐짓 엄한 듯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황이 녀석에겐 얼마나 낯설게 느껴졌을지는 충분히 알 만한 일입니다.

전화통을 붙잡고 서럽게 운 이유?

녀석은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저녁쯤에 제 엄마의 전화를 받았답니다. 그런데 겨우 하루 동안 제 엄마하고 떨어져 있었음에도 녀석은 전화통을 잡자마자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제 엄마가 하는 말에 대답도 변변히 못하고 통화 끝자락에 가서야 "엄마, 보고 싶어요. 빨리 데리러 오세요"하고 한 마디 했다고 그럽니다.

애 엄마는 녀석의 말을 듣고서는 당장 막내 놈을 데리고 와야 되지 않겠냐고 묻습니다. 내가 "그럼 지금이라도 빨리 데리고 오지 그래?"했더니 한숨만 길게 내쉬고 맙니다.

그러나 다행히 이튿날은 조금 적응이 되었는지 막내 녀석은 병원도 갔다 오고 녀석이 좋아하는 자장면도 시켜서 먹었다는 소식을 저녁쯤 제 할머니한테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그날도 네다섯 번은 전화를 했을 애 엄마한테 그렇게 자주 전화하지 말라고 그랬답니다. 애 엄마가 그렇게 자주 전화를 하니 막내 녀석의 투정이 더 심해진다면서요.

이후로 애 엄마는 전화도 마음껏 못하고 그저 속으로만 애를 끓이는 듯하더니 이윽고 며칠 후에는 드디어 결심을 한 듯 막내 녀석을 데리고 오겠다고 그럽니다. 할머니도 힘드실 텐데 언제까지고 맡겨둘 수도 없는 일이고 또 여름 휴가를 미리 당겨서 쓰면 안 될 것도 없다면서 아주 비장한 각오를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근 일 주일만에 녀석을 데리러 할머니 댁에 갔더니 이 놈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아주 신나게 뛰어 놀고 있었습니다. 그새 할머니하고 어찌 그리 친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녀석은 현관문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우렁찬 소리를 지르면서 방바닥을 쓰는 빗자루를 이리 저리 흔들면서 거실 여기 저기를 쏘다니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우리가 현관문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서도 크게 반겨하는 눈치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 엄마가 녀석에게 "엄마 보고 싶지 않았어?"하고 묻자 녀석은 대뜸 "엄마가 보고 싶어도 참아야 돼요. 눈병이 다 나아야지 집에 갈 수 있어요"하고 그동안 할머니가 녀석에게 누차 일러 주었을 법한 얘기를 또박또박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내가 녀석에게 "그동안 할머니하고 뭐하고 놀았니?"하고 묻자 녀석은 "할머니하고 노래 교실도 갔다오고 병원도 갔다 오고 그랬지"하고 대답을 합니다. "할머니하고 놀으니 좋아?"하고 제 형이 묻는 말에 녀석은 "응, 좋아"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제 형이 "너 그럼 할머니하고 계속 놀아라. 내일 너 집에 안 데려 갈 테다"하고 한 마디하자 녀석은 그만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얼른 제 엄마 품으로 달려듭니다.

급기야 온가족이 눈병에 걸렸어요

이렇게 해서 일주일간 녀석과의 이별은 끝이 나고 이젠 한 쪽 눈만이 아니라 양쪽 눈 모두 발갛게 충혈되어 있는 막내 녀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녀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애 엄마는 막내 놈을 무릎에 올려놓고서는 손장난도 하고 뽀뽀도 하고 야단입니다. 옆에 있던 큰 녀석도 오랜만에 보는 제 동생하고 장난질을 치느라고 여념이 없습니다. 저러다가 눈병이라도 옮으면 어떻게 하려고 저럴까, 하는 내 소심한 마음에도 아랑곳 않고 애 엄마와 두 녀석은 오랜만의 재회의 기쁨을 그렇게 마음껏 나누고 있었습니다.

하여간 막내 놈이 집으로 돌아온 이튿날부터 큰 녀석의 한 쪽 눈이 붉게 충혈되는가 싶더니 또 그 이튿날에는 애들 엄마 눈도 눈꼽이 잔뜩 끼면서 토끼눈을 닮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내가 출근하는 아침 시간이나 혹은 퇴근하는 저녁시간이면 애 엄마와 두 녀석은 모두들 눈꼽이 잔뜩 끼고 벌겋게 달아오른 토끼눈을 하고서는 잘 다녀 오세요, 잘 다녀 왔습니까, 하고 인사를 합니다. 누가 보면 조금은 엽기적이랄 수도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무튼 막내로부터 제 엄마에게까지 거꾸로 유전된 듯한 눈병 때문에 애 엄마와 우리집 두 녀석은 무려 일주일 동안 방안에서 유쾌한 여름 휴가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서로들 한 쪽 눈 아니면 두 쪽 눈 모두를 연신 깜빡거리며 감염된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웃기도 하고 걱정도 하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일 주일 동안 꿀같은 시간을 보낸 녀석들이 지난 토요일쯤에 내게 물었습니다.

"아빠, 이제 눈병 다 나으면 우리 어린이 집에 가야 되지요?"
"그럼, 눈병만 나으면 어린이 집에 가서 친구들하고 다시 놀 수도 있고 공부도 할 수 있지."
"그럼 눈병이 다 안 나으면 어린이 집 안 가도 돼요?"
".....?"
"난 눈병이 늦게 늦게 나았으면 좋겠다."
"왜?"
"그래야 엄마하고 또 실컷 놀 수 있지?"

녀석의 말을 듣고 우리 부부는 그날 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 부분쯤 가서 내가 "애들이 엄마하고 지내는 걸 저렇게 좋아하는데 당신이 직장을 그만두는 게 어떻겠소?"하고 한 마디 던진 말에 난 본전도 찾지 못하고 애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자리를 물러나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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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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