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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놀이단 1
상상놀이단 1 ⓒ 인권위 김윤섭
내 학창 시절은 조사와 검사의 연속이었다. 숙제, 수업료 납부, 재산 상태, 신체검사와 기생충 검사, 손톱 검사, 도시락(혼식) 검사…. 그러나 무엇보다 엄격하게 규제당한 것은 복장과 두발이었다. 그리고 그 점에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때나 지금이나 학교 상황이 비슷한 듯하다.

지난 1월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의 기러기 아빠 현상을 보도하면서 "한국은 인터넷과 초고층 상가 면에선 선진 국가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아직 왕조시대의 교육체제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나라"라고 묘사한 바 있다. 지금 공교육 현장에서 학생은 몸의 온전한 주체가 되기 어렵다.

몸은 인격의 구체적인 상징이다. 예를 들어 보자. 지하철에서 가끔 갑자기 내 몸을 손으로 밀치고 길을 트면서 비집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 '죄송합니다. 좀 들어갈 수 있을까요' 하는 한마디면 비켜 줄 텐데, 아무 말 없이 내 몸에 손을 대는 것이다. 내게 물리적인 해를 입힌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몹시 나쁘다.

내 인격을 무시하고 내 몸을 하나의 사물로밖에 인식하지 않는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여성이 당하는 성추행은 얼마나 굴욕스럽겠는가. 더 나아가 폭력은 인간을 조종의 대상으로 객체화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한 경험에 길들면 자존감은 점점 사라지고 권력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인성으로 변하게 마련이다.

상상놀이단2
상상놀이단2 ⓒ 인권위 김윤섭

초등학교나 대학에서는 복장이나 두발 검사가 없다. 그래도 별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중·고등학교에서 그것이 끈질기게 지속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머리가 조금 길고 짧고는 중요하지 않다. 색깔이 요란한 스카프를 두르고 운동화를 신고 등교한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핵심은 규제 그 자체에 있다. 어떤 원칙과 기준을 세워 놓고, 그것을 모두 준수하도록 하는 데에서 권력이 생산되고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다. 중·고등학교에서 그러한 규율이 필요한 것은 정서적으로 혼란을 겪는 십대들을 집단적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외형적으로 일정한 질서가 유지되는 것으로 학생이 정말로 통제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들의 마음이 학교나 교사의 권위에 대해 냉소적으로 흐른다면, 그것은 크나큰 역효과다. 근거가 모호한 규칙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지금처럼 대중매체에서 온갖 욕망을 자극하는 환경에서는 오히려 일탈적인 충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모든 것을 아이들의 자유에 맡겨 둘 것인가? 적어도 당장 그렇게 바꾸는 것은 무리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종종 주장되어 온 바이지만, 교칙을 학생과 교사의 토론을 통해서 새롭게 제정해야 한다. 지금 학생은 교칙에 대해 발의는커녕 그 내용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단속의 대상이 되는 몇 가지 사항만 알고 있을 뿐이다. 교칙은 위에서 부과되는 제재가 아니라 공동체의 약속이 되어야 한다.

상상놀이단3
상상놀이단3 ⓒ 인권위 김윤섭

학교생활의 질서는 교권의 자의적인 행사가 아니라, 합의를 토대로 합리적 원칙에 근거를 두고 달성되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그러한 자율의 여백을 허용한다면 방종으로 흐를까? 일단 그들의 상식을 믿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지금의 학교 풍토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다. 그러나 그 과정에 따르는 혼란과 갈등은 민주주의와 자치를 배워가는 수업료라고 인식해야 한다.

그와 함께 '몸'의 문화를 활성화해야 한다. 학생의 몸은 감시와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력이 표출되는 통로다. 자신의 몸을 정당하게 사랑함으로써 다양한 개성이 살아 움직일 수 있고 부질없는 외모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학교 밖의 이곳저곳에서 펼쳐지는 춤판의 역동과 기운은 학교의 축제나 의례로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

그를 위해서는 교사부터 몸의 언어에 눈을 떠야 한다. 최근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는 하자센터 '재활용 상상놀이단'의 '몸타 프로젝트'는 그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www.haja.net 참조. 그 워크숍에 참가한 교사와 부모들은 몸짓과 두드림을 통해 그토록 놀라운 소통이 이뤄지는 것에 스스로 놀라게 된다. 어른과 아이의 관계가 그러한 기쁨의 에너지로 충만할 때 우리의 몸은 아름다운 교감(交感)의 주체로 거듭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 7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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