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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기원
교장 선생님의 간단한 개식 선언과 함께 드디어 출발했습니다. 엄마 또는 아빠의 손을 잡고 가는 가족도 있는 반면 아빠는 아빠 대로 아이는 아이 대로 따로따로 가는 가족도 있습니다. 뒤늦게 달려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새털처럼 가볍게 느껴집니다.

빈 가방처럼 가벼운 가방을 멘 녀석도 있지만 제 몸무게의 절반도 넘어 보이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힘겹게 걷는 아이도 있습니다. 맨몸으로 뛰어가는 아이도 있지만 아빠 팔에 매달려 올라가며 힘들다고 칭얼대는 아이도 있습니다. 엄마와 두 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라가기도 합니다.

ⓒ 이기원

ⓒ 이기원
광수 녀석은 단짝 친구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아빠 보폭에 맞추어 따라오더니 잠시 뒤엔 먼저 간다는 말을 남기고 앞장서 걸었습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더니 아예 달음박질을 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등산로 주변 꽃에도 시선을 옮길 여유가 생겼습니다. 까치수영 꽃이 새하얀 꽃잎 다닥다닥 피워 까치 머리를 만들고 긴 줄기 잎 좌우로 벌려 까치의 날개짓을 형상화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까치가 저런 모양으로 물 위에서 수영을 할까 궁금했습니다. 까치수영이란 이름 때문에 비롯된 궁금함입니다.

ⓒ 이기원
봉화산 정상에 도달하기 전 경사가 제법 급해 오르는 아이들의 숨결이 거칠어졌습니다. 아이들보다 먼저 지친 어른들은 아이에게 힘든 내색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걸었습니다. 내딛는 발 한걸음의 무게가 무쇠처럼 무겁다는 걸 실감합니다. 아이들의 목덜미와 등줄기는 땀으로 흥건히 젖었습니다.

ⓒ 이기원
정상을 지나 내리막길이 시작되었습니다. 등산화 차려 신고 온 아이도 있지만 샌들 신고 온 아이도 있습니다. 오르막길에선 샌들이라도 큰 어려움은 없지만 사람들 발길로 다져진 미끄러운 내리막길에선 어려움이 많습니다. 운동화 신고 온 아빠가 샌들 신은 아들의 손을 잡고 내려갑니다.

"아빠, 미끄러워."
"그러게 운동화 신고 오라고 했잖아."
"앉아서 미끄럼타고 내려갈까?"
"옷 버리면 엄마가 가만히 있을까?"
"그럼, 어떡해."
"보폭을 작게 하고, 내 손 잡고 내려와."

아이는 아빠의 손을 잡고 조심조심 내려왔습니다. 엉덩방아 직전까지 가기도 했지만 아빠 팔에 매달려 가까스로 모면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지체되는 두 부자 곁으로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아이를 팔에 매달고 내려가는 아빠의 이마에선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다가 급기야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내리막길 굽어진 부근에서 아이를 팔에 매달고 내려가던 아빠가 중심을 잃고 넘어졌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곁에 있던 나뭇가지를 잡아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운동화 신었는데도 넘어졌잖아."

넘어진 아빠는 얼른 일어서서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었습니다. 그리고 아이 손을 다시 잡으며 말했습니다.

"이 녀석아. 아빠도 넘어질 때가 있는 거야."

ⓒ 이기원
그 광경을 지켜보다 문득 광수 녀석이 어디쯤 가고 있나 찾아보니 녀석은 아예 내 시선을 벗어나 있었습니다. 단짝 친구와 함께 가며 우리 아빠는 왜 이렇게 늦게 오느냐고 투덜댈까 걱정되어 빨리 내려갔습니다. 내 이마에도 땀이 비처럼 흘러내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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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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