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에 이어 '인사동'에서 연장전
지난 5월 21일부터 7월 17일까지 '예술의 전당' 전시에 이어 '찰나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연장전'이 인사동 선화랑-선아트 센터 모란 갤러리에서, 8월 21일까지 다시 열린다. 그만큼 그의 사진이 대중적 인기가 높고 일단 한번 빠지게 되면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 된다.
많은 예술가들은 짧은 순간에서 한 줌의 영원을 담아내려 한다. 미국의 선(禪) 시인이라고 불리는 개리 스나이더는 '현재의 순간'이라는 아주 짧은 시에 이런 예술가들의 염원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이 현재의 순간 / 오래 살아 / 먼 옛날 // 된다.
'세기의 찰나'를 포착
한 세기의 찰나를 잡을 수 있으려면 결정적 순간을 잡아야 하고 결정적 순간을 잡으려면 일상의 하찮은 아름다움을 포착해야 한다. 가장 많이 인내하고 기다리는 자만이 결정적 순간 즉 세기의 찰나를 포착할 수 있다. 이를 드물게 실천한 사람이 바로 앙리 카르티에-브레송(1908-2004)인 것 같다.
이런 작업에 대한 어려움을 작가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냥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바라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배우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시간도 무한정 든다. 더욱 중요한 건 바라보는 작업을 진지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현대사진이 어렵다는 선입감을 떨쳐버리기 힘든데 이번 사진전을 보면 그런 염려와 불안은 말끔히 사라진다. 그리고 '직접 봐야 감동을 느낄 수 있다'라는 것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사실 여기에 소개한 몇 장의 사진으로 전시장에서 받은 감동과 전율을 전하기는 힘들 것 같다.
'사진의 톨스토이'라고 비유
미국의 사진작가 리처드 아베돈(R. Avedon)은 이 위대한 20세기 사진미학의 거장을 '사진의 톨스토이'로 비유했다. 그의 깊은 인간애에서 받은 감동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그의 사진은 어떠한 조건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그 속에 숨은 아름다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나폴리'라는 사진을 보면 인간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어떠한 시공간에서도 사랑하지 않고 살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2번에 걸친 세계 전쟁의 처참함과 뼈아픈 체험을 통해 인간애의 소중함을 터득한 것 같다.
위의 사진 '베를린 장벽 설치 이후(1962)'를 보면 아무리 어른들이 냉전 논리로 베를린 장벽을 쌓아도 아이들은 순식간에 그곳을 평화스러운 놀이터 바꾸어내며 천연덕스럽게 놀고 있다. 이런 사진은 보통 관객도 그 기록성을 뛰어넘어 메시지가 담긴 예술성 높은 사진의 단계로 끌어올리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작년에 그가 죽었을 때,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20세기의 증인'이라고 찬사를 보냈는데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인간애를 발현하는 이 작가를 오래전부터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고 1955년에는 루브르박물관에서 사진전이 열리기도 했다.
얼굴만 한 예술품이 있을까?
그의 사진 중 가장 감동적인 것은 역시 인물사진이다. 이 세상에서 인간의 얼굴만큼 많은 것을 담는 예술품이 있을까! 그는 세기의 거물을 거의 다 담고 있다. 예술계, 문학계, 정치계, 종교계만 아니라 건축가와 혁명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렌즈를 통해서 당대 거물들과 교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기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세기의 연인인 윈저 공과 심슨 부인뿐만 아니라 피카소, 마티스, 샤갈, 뒤샹, 자코메티, 수잔 손탁, 카뮈, 아서 밀러, 사무엘 베케트, 브르통, 콜레트, 칸 등 예술계 인물과 로버트 케네디, 킹 목사, 달라이라마, 체 게바라, 코코샤넬, 마릴린 먼로 등 역사적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사진은 얼핏 보면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 그 사진 이면에는 많은 고통과 좌절, 슬픔의 흔적이 담겨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형식미는 대조되는 은유와 풍자로 넘쳐나고, 흑인과 백악관에서 보듯 색채 대조 효과라든가 놀이하는 인간과 노동하는 인간의 교차하는 희로애락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사진의 바다에 빠지면
그는 분명 사진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재주가 있다. 그가 먼저 절정의 순간을 포착하면서 찰나의 쾌감을 음미했으리라. 그 기쁨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의 사진은 그것이 인물이든 건물이든 풍물이든 그 어떤 작가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영감과 사고가 넘치는 공간을 펼친다. 그것은 담백한 즐거움이기도 하다. 마치 인사동 한복판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입장료가 비싸다거나 시간이 아깝다 하는 생각을 다 사라지고 망아지경에 빠지게 한다.
그의 사진 곳곳에서 인간의 냄새가 풍긴다. 그런 느낌은 갖는데 특별히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 없다. 작가 자신 역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흔히 부대끼는 고뇌와 절망과 슬픔을 맛보았으리라. 그만큼의 행복과 기쁨과 감격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의 독서 이력을 보면 엥겔스, 프로이트, 랭보, 생시몽, 쇼펜하우어 등 좌파적 경향이 강하다. 그는 실제로 1930년대 파시즘과 나치즘 팽창하자 이에 맞서기 위해 1937년 공산 일간지 '스 수아르(Ce Soir)'에서 사진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동료들과 부조리와 인간애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의 좌파적 시각은 미국에서 찍은 사진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드러나는데 예를 들면 야구장 사진에서 관중을 포커스를 맞추면서도 그만큼의 많은 자동차를 대조시켜 사진 이면에 숨겨진 메시지, 즉 물질의 풍요 속에 정신적 허탈이 담겨 있음을 암시한다.
그는 사진에서 삶의 밝은 이면에 가려진 어두운 면을 동시에 보여줌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돌이켜보게 하고 삶의 본질에 접근하게 하여 성찰의 요소를 제공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사진의 선승(zen-master)이라고 하는지 모른다.
'리투아니아 발레리나, S. 바리오조바'의 사진에선 창백하고 차가운 표정 속에 담긴 따뜻하고 섬세한 심성을 포착하는가 하면 '멕시코 창녀'에서는 비참한 리얼리티를 고발하지만 삶에 대한 열망은 더 높아 보인다. 그의 사진언어는 시비를 가리기보다는 인간애의 영역으로 묶어두고 있는 듯하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는 '20세기의 증인'답게 간디의 죽음이나 인도네시아의 독립운동, 중국 혁명의 과정과 성공 후 청조말 마지막 환관의 쓸쓸한 표정이나 스탈린의 죽음, 68년 프랑스 학생 혁명, 베를린 장벽과 와해 등 20세기 엄청난 사건과 맞부딪치면서 그 역사현장에서 사진의 오르가슴 같은 절정의 찰나를 잡아나간다.
태곳적 마음으로 돌아가 수없이 사진을 찍는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놓치지 않고 작가의 마음에 담긴 색다른 프리즘으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과정을 치러낸다. 카메라의 눈이 작가의 마음의 닿으면서 경이로운 사진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작가는 사진에 호흡을 불어넣고
그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머리와 눈과 마음을 모두 담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면에 많은 풍경과 데생, 착상을 남겨놓았다가 한꺼번에 쏟아내며 사진을 완성하는가 보다. 그의 사진은 차라리 때로 눈을 감고 음미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그의 사진에서 뭔가 떠오르는 것이 많다.
60년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찍은 '교토시 용안사(龍顔寺)' 사진. 그의 시선이 이 정원을 빗겨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가장 일본적 정원이라는 이 물기 없는 정원이 분명 특이하다. 절제되고 정갈한 동양의 선적 세계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런 문화충격을 달래며 예상 밖 각도에서 사진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그가 엄청난 여행광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을 빼놓은 것은 역시 아쉽다. 그만큼 한국의 이미지가 세계인에게 심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만약 그가 한국에 왔다면 무엇을 찍었을까 궁금해진다. 창덕궁 후원의 부용정이나 긴 수염 난 전형적 시골 할아버지를 찍지 않았을까 상상만 해본다.
'프로방스, 그림자 자화상(1999)' 이 사진은 비교적 말년에 찍은 사진인데 뭐라고 할 수 없는 자연과 인간의 일체감을 보여준다. 나무처럼 보이는 것과 작가의 그림자가 죽마고우처럼 나란히 걷고 있는 것 같다. 사진에서 어떤 짧지만 감동적인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하다.
사진이라는 것이 기계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인간의 정서와 감정과 감동을 불어놓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사진의 기적이다. 이것은 마치 시인이 무생물인 언어에 호흡을 넣어 생명의 말을 만들듯이 사진작가는 무생물인 카메라에 호흡을 불어넣어 생명을 잉태하는 원리와 같을 것 같다.
| |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주요 연혁 | | | | 1908년. 프랑스 센-에-마른의 샹틀루(Chanteloup)에서 커다란 섬유회사의 아들로 태어남. 콩도르세 고등학교에서 수학.
1927-28년 20세. 앙드레 로트에게서 그림을 배움.
1932년 24세. 마르세유에서 35㎜ 라이카 사진기 한 대를 구입, 이 낡고 작은 사진기를 그의 '공책'이자 '눈의 연장'이라고 생각. 2년 동안 스페인 지중해 연안, 멕시코, 미국 각지를 돌아다님. 뉴욕의 줄리앙 레비 화랑에서 최초의 개인전시회 개최.
1936-1939년 28세.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의 조감독 활동. 그 후 4편의 기록영화 제작.
1940년 32세. 2차 대전 중 프랑스 육군에 입대, 영화, 사진 선전대의 병사로 일하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됨. 두 차례의 시도 끝에 세 번째로 탈출에 성공.
1946년 38세.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서 초대 개인전.
1947년 39세. 36년 당시 신문사 사진부 입사 시험에서 떨어져 알게 된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시모어, 조지 로저 등 4명의 프리랜서 사진작가들과 함께 전 세계 사진 공급 업체인 '매그넘(Magnum Photos)'사 설립. 이번에 전시되는 사진들도 이 업체에서 빌려 온 것임.
1948년-50년 40세. 인도, 버마, 파키스탄, 중국, 인도네시아 등 동양을 돌아다니며 사진 찍음.
1952년 44세. 호화 사진집 '재빠르게 잡은 이미지(Images à la Sauvette)'를 출판. 영문판인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으로 오늘날 널리 알려짐.
1954-55년 46세. 스탈린 죽음 후 공식적으로 소련 방문 허락받은 사진 작가. '발리 섬의 춤', '하나의 중국에서 또 하나의 중국으로', '모스크바 사람들', '유럽 사람들' 등 작품집 출판.
1965년 57세. 일본 아사히신문사의 초청으로 일본 방문.
1968-72년 62세. '세계의 인간과 기계', '프랑스', '아시아의 얼굴' 작품집 출간.
1981년 73세 프랑스 문화부장관 사진 분야의 국가 대훈장.
2003 94세.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재단 설립. 대규모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회고전 그는 누구인가' 프랑스 국립도서관 8만 2000명 관람.
2004년 95세. 사망 자크 시라크 대통령 추모성명. | | | | |
덧붙이는 글 | 인사동 선화랑-선아트센터 모란 갤러리, 8월21일까지 전시문의 02)379-1268-9 02)734-0458
참고 홈페이지 http://www.hcbphoto.com 관람시간 오전10시-오후6시
전시기간 2005년 7월23일-2005년 8월21일 관람요금 성인 8000원 단체 7000원, 대학생 7000원 단체 6000원, 중고생 5000원 단체 4000원, 초등생 4000원 단체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