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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 가장자리를 따라 빙~ 둘러 피어 있는 봉숭아꽃과 그 잎을 땄습니다. 그리고 검정 숯과 백반, 소금도 조금 넣고 돌로 콩콩 찧어 놓습니다. 저녁밥을 먹은 후 밤이 깊어져서 잠자리에 들기 전,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 약지 손가락에 비닐봉지를 잘라 대어 놓고 실로 촘촘하게 묶습니다.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이는 날이면, 제대로 몸을 돌아눕지도 못하고 잠자리를 설치기가 태반입니다. 비몽사몽간의 꿈속을 헤매다 보면, 어느새 안개가 뿌연 아침이 되어 버리고, 제대로 눈은 떠지지 않지만 봉숭아 꽃물이 빨갛게 잘 들여졌는지 손끝으로 온 신경이 쏠렸지요.
꼭 한두 개쯤은 그 실을 너무도 세게 동여 맨 탓인지, 잠결에 자신도 모르게 빼 버려서 유난히 멀건 손톱도 있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빼버린 비닐뭉치를 다시 손톱에 꽂아 보기도 하고,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서 그 날 밤 또 봉숭아 꽃물을 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물들인 봉숭아 꽃물은 부디 첫눈이 올 때까지 남아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기도 했습니다.
여름휴가 때 언니 오빠들이 고향을 찾아오면, 온 가족들이 원두막을 찾아가 그동안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던 참외와 수박을 원 없이 먹었습니다.
늦은 밤, 엄마와 언니들을 따라 냇가로 목욕을 하러 가기도 했지요. 저는 그날 낮에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미역을 감았기에 굳이 갈 필요가 없었지만, 다 큰 언니들과 엄마와 함께 그 은밀하고 조심스러운 목욕을 함께 해 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심야에 여자들만 떠나는 목욕행렬에 꼭 빠지지 않으려고 늦은 밤까지 눈꺼풀을 치켜 뜨며 쏟아지는 잠과의 전쟁을 힘겹게 치러내곤 했습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자그마한 돌들이 쫙 깔린 야트막한 냇가에서는 다슬기들이 정말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 고향에서는 대수리(대사리)라고 불렀는데, 돌멩이들을 들춰 가면서 다슬기를 잡는 재미는 또 얼마나 쏠쏠했는지요.
그렇게 잡아 온 다슬기도 하루쯤 물에 담가 놓습니다. 깨끗하게 씻어서 펄펄 끓는 물에 삶습니다. 저녁 밥상머리에 온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탱자나무 가시로 다슬기의 알맹이를 빼 먹던 기억들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저의 어렸을 적 고향에는, 무더운 여름날 오염되지 않은 냇가에서 하루, 하루를 소일하던 추억들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에게도 저희만큼 어린 시절이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요? 아직도 잊지 못하는 생생한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저희들 나름대로 만화영화와 컴퓨터 게임으로 보내는 지금의 시절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냈던 어릴 적 그 추억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듬뿍 듬뿍 나눠 주고 싶습니다.
가끔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입가에 작은 미소를 떠 올릴 수 있는, 꼭 한번은 되돌아가고 싶은 추억들을요.
덧붙이는 글 | '이 여름을 시원하게' 특집 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