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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겉표지 ⓒ 해나무
인터넷 어느 행간에선가, '장동건'이란 배우를 일러 '베스트셀러 인줄은 알았지만 스테디 셀러까지는 짐작 못했던 어떤 추리소설'이라고 한 표현을 보게 되었다. 그 표현의 '적확함'에 끌려서 <우리시대 한국 배우>라는 책을 사 보게 되었다.

그런 표현을 쓴 주인공은 전직 씨네 21기자였던 백은하씨였다. 정말이지 그것은 배우 장동건에게 딱 들어맞는 표현이었다. 그냥 단순한 소설이 아니고 '추리소설'이라고 한 그 기발함, 물론 장동건이 그 원인을 제공했겠지만 백 기자의 통찰력과 표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동건에 대한 백은하 기자의 따사로운 글을 읽고 난 다음 박해일은 또, 어떻게 표현했을까 무지 궁금하여 박해일 편을 먼저 읽었는데 그 첫 문장이 '박해일은 참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였다. 어머나 세상에,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구나.

백 기자는 박해일의 목소리를 두고 '누군가를 한없이 믿어버리게 하는 목소리'라고 하면서 "'그가 사랑해요'라고 하면 세상 끝까지 지켜질 굳은 약속처럼 들린다'고 하였다. 왜 아니랴!

아무튼 외모, 내모 모두 돋보이는 두 젊은 배우들의 이야기를 먼저 읽고 난 다음 처음으로 돌아가서 순서대로 책장을 펼쳤는데 지은이의 배우들에 대한 사랑이 참으로 따뜻했다.

가끔 영화를 해석하는 영화평론가들의 글을 읽으면 영화를 어쩌면 그리도 낱낱이 해부할까 하는 감탄이 일기는 하나 그러한 글들이 감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한 분석은 영화를 통째로 씹는 맛을 앗아갔다.

그런데 백은하 기자의 글은 달랐다. 그는 바람둥이처럼 여러 배우를 동시에 사랑하면서도 배우 각자에게 주는 사랑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씨네21 기자를 오래해서 그런지 배우들의 역사를 한 큐에 좌-악 꾀고 있는가 하면 각각의 배우들의 특징 또한 톡 꼬집어냈다.

너무도 적확하게 자신에 대해 얘기해 주는 글을 읽는 배우들은 모두 자기에게만 그가 속삭인 줄 알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나, 설사 자기에게만이 아닌 다른 배우들에게도 똑같은 사랑을 속삭였다해도 전혀 질투가 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받은 사랑이 너무 크므로 굳이 질투(?)할래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배우 설경구에 대한 그의 한 줄 논평은 이렇다. '한번 보면 무섭고 두 번 보면 재밌고 세 번 보면 정드는 남자' 내 느낌으로도 설경구는 딱 그랬다. 처음 <박하사탕>에서 설경구를 봤을 때는 무서웠다. 어찌 인간이 저리 끈질기게 잔인할 수 있을까. 아무리 연기라지만 너무 무섭고 정이 안가는 인간이었다.

그 느낌은 <오아시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박머리 종두가 가족들을 조롱하며 장애여성을 당당하게 소개하는 역이었다 해도 그의 껄렁함은 상쇄되지 않았다. '저 인간은 실지로도 저러한 성향이기에 종두역을 잘 소화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보고 나서는 그에게서 이전과는 좀 다른 인상을 받았으나 그것이 정확히 무언지 몰랐었는데 백은하 기자의 설경구론을 보니 그것은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처음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볼 때는 그가 설경구인지도 몰랐는데 얼마 전 다시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봤을 때 설경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아니, 이 양반이 여기에 출현했었구나. 물론 재미있는 사람으로서였다.

마지막으로 <공공의 적 2>를 보고서 나는 완전히 설경구가 좋아졌다. 아니, <공공의 적 2>를 보고 완전히 '정이 들었다' 그래서 예전엔 눈길도 주지 않았던 <공공의 적 1>을 비디오 집에서 빌려서봤다. 물론 볼수록 정이 드는 남자였다. 그래서 앞으로는 설경구가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봐야지 하고 맹세했다.

이처럼 <우리시대 한국 배우>에는 말 그대로 우리시대 한국배우들의 생생한 모습 혹은 그 나름 나름의 아름다움들을 콕! 집어서 얘기해준다.

'눈물을 품은 화염방사기 최민식, 빙점을 향해 가는 장거리주자 송강호, 속 깊은 미궁 신하균, 복사할 수 없는 파일 배두나, 자폐 소녀 세상을 아는 여자 이나영' 등 그가 콕 집어서 얘기하면 내가 할 일은 책을 읽는 내내 '맞아, 맞아' 하며 박수치는 것이었다.

또, 나는 <우리시대 한국배우>를 읽기 전까지는 한국영화를 좋아하면서도 한국 영화배우들을 사랑할 줄 몰랐다. 다만, '아짐'의 가슴에 불을 댕기는 외모를 가졌나 안 가졌나, 혹은 영화를 위하여 얼마나 헌신했는가 등만 살폈다. 심하게는 스캔들을 좀 터트려서 가십거리 좀 만들어 주는 배우 없나 등을 상상했다.

그랬는데 백은하 기자는 달랐다. 그의 배우들에 대한 인터뷰를 읽으면 그가 배우들을 얼마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책을 읽는 내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그리고 연기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그렇게 고민 고민하며 한 장면 한 장면 찍어 가는 고난의 대장정 인줄 몰랐는데 백기자의 글을 통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때문에 독자인 나 또한 배우들의 작품에 임하는 진정성을 새로이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시대 한국배우>는 언제 읽었는지 모르게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다. 재미있게 읽히면서 다 읽고 나면 우리영화를 이끌어 가는 배우 스무 명의 지도가 머리 속에 꽉 들어찬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고 앞으로는 이 배우들이 또 어떻게 변화해 갈지 사뭇 기대된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나면 스무 명 배우의 미래뿐 아니라 백은하 기자에 대한 기대도 만만찮게 생긴다. 이 양반이 다음에는 또 어떤 책을 내 놓을지. 내기만 하면 무조건 사서 읽고픈 마음이 생긴다. 갑자기 그때가 언제 일지 무척 기다려진다.

우리시대 한국배우

백은하 글, 손홍주 사진, 해나무(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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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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