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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정말 겁이 없었다. 1999년 여름, 막 결혼을 해서 잘 걷지도 못하는 아이들과 아내들을 팽개치고, 친구들 네 명이서 동해로 떠나 버렸다. 아침에 출근할 때까지도 아내들은 정신이 있는 거냐고, 갈 거면 들어오지도 말라고 하면서 막아섰다. 하지만 우리들은 와이셔츠 바람에 놀러갈 옷들이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출근해서는 저녁 무렵 학여울역에 모였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동해로 달려 버렸다. 그 때는 그래야만 했다.

쥐꼬리만한 월급들을 받아서인지, 마음것 놀고 싶고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었던 우리는 바닷가에서 회를 먹는 것보다 직접 고기를 잡아서 배 위에서 싱싱한 자연산 회를 먹고 싶어졌다. 때마침 합류한 후배 한 명을 속초공항에서 만나 유명하다는 막국수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배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역시 친구들끼리 모일 때는 술이 필요했다. 운전하는 친구는 빠지고, 나 역시 술을 못해 빠지면서, 한 친구가 막걸리 한병을 거의 다 비워냈다. 뭐, 사실 그 정도는 평소의 주량으로 봐서도 술먹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는 대포항에서 작은 낚시배를 한 척 빌렸다. 타고 나서 안 사실은, 우리 중에 아무도 배멀미라는 것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 10여 분을 달린 것 같았다. 선장님은 "오늘은 파도가 약간 치네요"라고 하셨지만 아무도 멀미약 생각은 못했다. 처음에는 말 타는 기분으로 처얼썩거리면서 바다 한가운데로 달려 나갔지만, 잠시 후에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입만 벌리면 바다로 점심 먹은 것들을 무단으로 방류할 것 같았다. 배가 서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면 나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도시 촌놈들의 오산이었다.

이윽고 부표에 배를 묶고 선장님이 '낚시대'라는 것을 주었다. 우리는 바다낚시는 긴 낚시대를 바다를 향해 멋지게 뿌리며, 적어도 고등어보다 큰 놈을 손맛을 느끼며 낚으려고 바다로 나간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손에는 연 날릴 때 쓰는 얼레 같은 것에 낚시 줄이 둘둘 감겨 있고 그 끝에는 추와 낚시 바늘이 달려 있는 첨 보는 낚시 도구가 들려 있었다.

"선장님! 이걸로 뭘 낚아요?"
"광어, 낙지요! 아니, 뭘 낚으려고 나왔어요?"
"........"

선장님은 잔말 말고 지렁이 끼우는 법이나 배우라는 식으로 시범을 보이시더니, 바다로 던져 바닥까지 내리라고 한다. 그 때부터 살살 당겼다 놨다를 반복하면 손으로 느껴질 거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난 지렁이 끼우는 것부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배가 서서 그나마 흔들림이 좀 덜해서 겨우 참고 있었는데,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는 순간, 또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고는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점심에 막걸리를 한 병 비운 친구가 갑자기 선장님께 당황스러운 표정을 하면서 묻는 소리가 들려 왔다.

"저~ 선장님! 바다 한가운데서 큰 게 급하면 어떡해요?"

일순간 우리 모두는 얼어 붙어 버렸다. 선장님 역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하셨다.

"글쎄요, 그냥 배밖으로 엉덩이를 내밀어서 처리해야겠네요. 뭐. 허허!"
"정말(!) 큰 일 볼 거냐?"
"응~ 급해! 배가 너무 아퍼!"

그 다음부터는 친구고 뭐고 없었다. 가능한한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그 놈이 일을 치르게 해야 했다. 손바닥만한 배에서 멀치감치 떨어져서 낚시를 하고 있던 우리들은 자기 자리에서 그 친구를 멀리 떨어뜨리려고 이리저리 보냈다. 급기야는 그 친구가 더 이상 못 참겠다고 화를 내자, 낚시를 하는 우리가 붙어 있기로 하고 이물쪽으로 몰려 앉았다. 그 친구는 고물 쪽에서 배 밖으로 자리를 잡았다.

헌데, 배가 흔들리자 친구는 배변 자세를 잡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바다에서 볼일을 보다가 잘못해서 떨어지려고 하면 붙잡아 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다. 결국, 우리 중에 가장 마음씨 좋은 친구가 그 친구 옆에 앉기로 했다. 사실 마음씨보다는 유일하게 멀미를 거의 안하는 친구였다.

잠시 후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놈 설사한다!"
"야! 너네들 쪽으로 떠내려 간다!"

일순간 우리들은 동시에 외쳤다.

"어느 쪽이야?"

떠내려 오는 배설물을 피하기 위해 허둥대기를 계속하던 순간, 나는 봐 버렸다. 우리는 이물 쪽에서 양쪽으로 나뉘어 자리잡았는데, 나는 50%의 확률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 때 우리가 보지 못한 또 다른 악재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이!"

▲ 같이 갔던 5인방. 배가 아팠던 친구는 개인 프라이버시의 문제로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 박영록
바다 한가운데서 갑자기 또 다른 배가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간 곳이 광어를 낚는 포인트였던 것이다. "배 어디다 묶어? 엥?" 내 친구의 상황은 종료되지 않은 상태였고 새롭게 나타난 배에는 아줌마들도 타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자존심 상해서 아픈 척하고 누워 있는 친구를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약속된 2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선장님을 졸라서 다시 뭍으로 나와 버렸다.

이렇게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던 친구들도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만나기 힘들다. 어쩌면, 친구는 저절로 생길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한 번 만들어진 친구는 많은 것을 희생해서라도 지켜내야 하는 나의 삶에 보물일런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친구들과 낚싯배를 타는 날을 기다려 본다.

"떠나자, 친구여!"

덧붙이는 글 |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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