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집의 열두 남매 중에서 열 번째인 막내오빠는 제 바로 위로 저와는 3살 터울입니다. 막내오빠는 다른 오빠들과는 다르게 위로는 세 명의 누나, 밑으로는 두 명의 여동생 사이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오빠들보다 아버지께 많은 설움을 당하면서 힘든 사춘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렸을 때에 한쪽 눈만 크게 쌍꺼풀이 진, 귀여운 미소년의 모습의 오빠는, 지금 중학교 1학년인 우리 승완이와 견주어도 감히 그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개구장이였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서 딱지치기, 구슬치기, 밤이면 남의 자두밭이나 포도밭에 몰래 들어가서 서리하기 등등. 또 오빠는 바로 밑의 동생인 저를 유난히 괴롭히고 약을 올리며 즐거워 하고는 했습니다.
그런 오빠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려웠던 집안 형편 때문에 서울의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바로 밑의 동생인 저에 대한 오빠의 관심과 사랑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오빠는 엄마께서 서울에 다니러 갈 때마다 제가 잘 지내고 있는지, 공부는 잘 하고 있는지, 저의 안부를 물었다고합니다.
상업고등학교 재학 시절, 오빠는 학교 성적이 좋았던 탓에 3학년 여름방학 때 다른 친구들보다 한참 앞서서 은행에 입사를 했습니다. 그때 오빠는 은행에 근무하면서 다른 오빠와 언니처럼 야간대학을 진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별도로 시간을 내어 공부를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1981년 겨울, 그때에 우리집에서는 세 사람이 대학 입학을 위해 학력고사를 치렀습니다.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육 공무원이었던 다섯째 언니와 은행에 다니고 있던 막내오빠,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저였습니다. 학력고사 점수가 발표가 있고 나서 오빠는 저의 학력고사 성적을 은근히 부러워 했습니다.
"만약 내가 너만큼 성적이 나왔으면 충분히 대학을 갈 수 있을 텐데..."
그때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정말 저의 학력고사 점수를 막내오빠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언니와 저는 야간대학에 합격을 하여 82학번이 되었지만, 오빠는 대학 입학에 실패했습니다.
저의 대학 합격이 발표된 날, 오빠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서 저에게 진심으로 합격을 축하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오빠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지금도 저는 알 것 같습니다.
그 후 오빠가 군대에 가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학교를 휴학 중이었던 제가 복학을 하기 위해서 두 번째 등록금이 필요할 때였습니다. 저의 등록금 걱정을 하시는 엄마의 말씀에, 오빠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저의 등록금 전부를 내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그때 오빠가 내 주었던 등록금을 마음의 빚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그 기회가 오면, 오빠의 딸내미가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그 등록금을 내 주는 것으로 꼭 빚을 갚아야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보다 2년 늦게 결혼을 한 막내오빠는 우리 열두 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아들이 없는 탓으로 올해 85살이신 엄마의 새벽기도 시간을 더욱 길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벌써 40중반 나이로 훌쩍 넘어 선 막내오빠. 어느새 흰머리가 희끗 희끗한 중년의 오빠지만, 저에게는 여전히 눈웃음을 살살 지으면서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놀려 줄까 머리를 굴리던, 영원한 개구장이 오빠입니다. 오빠의 부지점장으로의 승진은 끝이 아닌, 또 새로운 시작이고 도전이기에 오빠가 걸어가는 그 길이 힘차고, 옳고, 바른 길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끝으로, 1987년 시인으로 등단하신 큰오빠께서 막내오빠를 주인공으로 해 썼다는 '개구장이'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개구장이
지금의 개구장이는
지난날의 나
하루만큼씩 멀어져 가는
나의 그림자
숙제장 첫갈피에
꼬장꼬장 큰 글자로
"여기서부터 숙제다."
다음장에는
"오늘 숙제 끝이다"를
더 크게 써 놓고
행하니 뺑소니쳤다
그의 서랍을 열면
열 장씩 스무 장씩 묶어 놓은 365장의 딱지
이빠진 하모니카가 뒹굴고
장난감 말, 춤추는 소녀, 꽃유리 구슬,
권총, 찝차, 토막연필, 오뚜기,
이런 것들이 모여
언제나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냇가에선 송사리를 쫓고
하늘을 보면 구름을 쫓고
긴 잠결엔 꿈을 쫓고
골목대장 개구장이는
지난날의 나
시원스런 아주 맹물 같은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