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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헬름 라이히 <오르가즘의 기능> 앞표지
ⓒ 그린비
제목만 보고 무슨 쾌감 참고서쯤으로 생각하고 인터넷 주문했다가는 "아뿔싸"하고 후회할 책이 나왔다. 빌헬름 라이히(1897~1957)의 <오르가즘의 기능>(Die Entdeckung des Orgons, Erster Teil:Die Funktion des Orgasmus)이다.

'오르가즘'(orgasme)은 물론 '성교(性交)할 때에 느끼는 쾌감의 절정'을 말한다. 그러나 옮긴이 윤수종 교수(전남대 사회학과)의 말을 빌리면, <오르가즘의 기능>은 "만족스런 성행위를 위한 지침서를 훨씬 뛰어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빌헬름 라이히는 1927년에 이 책 이전의 <오르가즘의 기능>을 펴내어 프로이트에게 헌정했다가 씁쓸한 반응을 받았다고 한다. 그 뒤 망명객으로서 여러 나라를 돌다가 미국에 정착한 라이히는, 자신의 연구를 총괄하여 1942년에 전기 형식의 책으로 다시 펴냈다. 윤 교수는 옮긴이 서문에 이런 말을 썼다.

"45살에 자전적인 책을 냈으니 상당히 젊은 시절에 자서전을 냈다고 할 수 있겠다. (중략) 라이히의 자서전인 이 책은 투쟁에 대한 기록이라는 느낌을 준다.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을 결합하고자 했던 사람이 공산당과 국제정신분석협회 양쪽 모두에게서 추방당하고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다가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에 정착했지만 결국 그 나라에서도 저서까지 소각당하고 감옥에서 죽는다. 그는 시대가 감당하지 못한 사람이었을까?" - <오르가즘의 기능> 10쪽에서

개관으로 글을 연 이 책은 '프로이트 이전의 생물학과 성과학', '페르귄트', '심리학과 성이론의 차이', '오르가즘 이론의 발전', '성격분석 기법의 발전', '실패한 생물학 혁명', '생물학 영역으로의 돌파', '오르가즘 반사와 성격분석적 생장요법', '정신분석에서 생체발생으로' 등 모두 10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어느 날 젊고 예쁜 노동자가 남자 아이 둘과 갓난애 하나를 데리고 외래진료소에 왔다. 그녀는 말을 할 수 없는 '히스테리성 무언증'을 가지고 있었다. (중략) 수년 동안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려는 강박충동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중략) 그녀는 고아였으며 낯선 사람들에게 맡겨져 식모 생활을 했다. 한 방에서 여섯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과 살았는데, 어린 소녀였던 그녀는 성인남자들로부터의 성폭행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 <오르가즘의 기능> 104~105쪽에서"

"또 다른 환자는 이른바 색정증(色情症)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녀는 한 번도 만족을 경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만나는 모든 남자와 잤다. 또한 그녀는 칼자루, 심지어는 칼날로 질에서 피가 날 때까지 자위를 했다. (중략) 이 환자도 자녀가 많고, 가난하고, 근심걱정으로 억눌린 노동자 가정의 파괴적인 작용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중략) 이런 어머니는 자녀가 자위하는 것을 보면, 아이를 향해 그냥 칼을 집어던진다." - <오르가즘의 기능> 107쪽에서

이런 심각하고 애절한 사례들은 이 책을 결코 딱딱하게만 만들어놓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빌헬름 라이히는 자신의 치료 경험을 통하여 도덕적 엄숙주의에 대한 오르가즘적 처방을 내놓고 있다.

빌헬름 라이히는 <파시즘의 대중심리>(1933년 출간)의 저자이기도 하다.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라이히는 다양한 인종, 국적, 종교적 신념을 지닌 여러 계층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의학적 경험을 통해 "파시즘은 평균적인 사람의 성격이 정치적으로 조직되어 표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르가즘의 기능>은 바로 이 <파시즘의 대중심리>와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라이히가 연구한 심리적 전염병의 대표적 사례는 바로 파시즘. 오르가즘 능력의 상실은 사회적, 정치적 문제이며, 종류도 허다한 금지 사회에 갇혀 신경증적 성격이 탄생하고 이것은 곧 심리적 전염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성기의 오르가즘에서 모든 신경증의 처방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론을 펼쳐 프로이트와 대립하였던 빌헬름 라이히. 그는 자신의 이론에 근거하여 1928년 빈에 성위생상담소를 개설하고 노동자들에게 피임, 낙태, 출산 등에 대한 급진적 성교육을 펼치면서 파시즘과 공산주의에게서 배척당했다.

빌헬름 라이히가 <오르가즘의 기능>에 발문으로 담은 격언 한 마디가 뜻깊다.

“사랑, 노동, 지식은 우리 생활의 원천이며, 이것들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오르가즘의 기능> 빌헬름 라이히 쓰고 윤수종 옮김/ 2005년 7월 18일 그린비 펴냄/ 231×161mm 하드커버/ 464쪽/ 책값 2만3000원

●김선영 기자는 대하소설 <애니깽>과 <소설 역도산>, 평전 <배호 평전>, 생명에세이집 <사람과 개가 있는 풍경> 등을 쓴 중견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이며,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시인과의 사색', '내가 만난 소설가'를 이어쓰기하거나 서평을 쓰고 있다. "독서는 국력!"이라고 외치면서 참신한 독서운동을 펼칠 방법을 다각도로 궁리하고 있는 한편, 현대사를 다룬 6부작 대하소설 <군화(軍靴)>를 2005년 12월 출간 목표로 집필하고 있다.


오르가즘의 기능

빌헬름 라이히 지음, 윤수종 옮김, 그린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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