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간 큰 밀잠자리>를 읽고 우리 아들과 나눈 대화다. 아들이 이 책을 읽고 잠자리에 대한 흥미를 느꼈는지 곤충도감을 꺼내놓고 여러 가지 잠자리 사진을 요리조리 뜯어본다. 나도 덩달아 호기심이 발동하여 흔하게 보아온 잠자리의 이름들을 하나 둘씩 챙긴다.
우리는 주말에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갔다. 샘에서 도랑에서 개울에서 저수지에서 보에서 시냇물에서 여러 가지 잠자리를 보았다. 책 속에서 본 모습을 실제로 확인하고 느끼고 감동하는 시간이었다. 거미가 고추잠자리 암컷을 잡아놓고 거미줄로 칭칭 동여매는 현장도 보았고, 짝짓기 하는 밀잠자리와 왕잠자리도 보았다. 개울을 따라 가면서 물봉선도 보고, 쥐오줌풀도 보고 고마리 꽃과 사위질빵 꽃도 보았다. <바다로 간 큰 밀잠자리>가 준 보람있는 자연학습이자 생태공부였다.
이 책은 시인이자 초등학교 교사인 김용택이 들려주는 시골이야기 중 두 번째 이야기다. 논에 대한 이야기 <나는 둥그배미야>에 이어 나온 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시골 이야기는 김용택 시인이 농촌 생활에서 경험한 자연과학과 자연생태를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어른에게나 어린이에게나 대단히 유익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연생태계와 동화 그리고 환경을 어우르는 ‘환경생태동화’라고 이름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 물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우리와 가장 친숙한 큰 밀잠자리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시골이야기나 농촌생활이 덤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큰 밀잠자리는 우리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잠자리다. 잠자리하면 고추잠자리를 많이 생각하지만, 초여름부터 시작해서 초가을까지 지속적으로 볼 수 있는 잠자리는 밀잠자리다. 고추잠자리는 늦여름에 한꺼번에 우르르 나타나서 하늘을 수놓다가 찬바람이 살짝만 고개를 내밀어도 금세 사라지는 잠자리다. 그러나 밀잠자리는 지붕 위에서도 나팔꽃 핀 울타리에서도 옥수수 수염 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마당 한가운데 피어있는 노란 민들레 꽃 위에서도 방죽 근처 연분홍 고마리꽃 위에서도 밀잠자리는 볼 수 있다.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지만 연신 고개를 빙빙 돌리는 밀잠자리는 귀엽다. 왕잠자리와 노란 측범잠자리도 저수지 근처나 숲 속에서 자주 눈에 띄지만 너무 예민하고 경계심이 많아 가까이에서 관찰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이런 밀잠자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을 보면 역시 김용택 시인은 ‘섬진강 시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원적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임실의 한 시골학교에서 코흘리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용택의 생활을 이 책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잠자리를 주인공으로 하면서 물에 대한 이야기를 강을 따라가면서 들려주는 ‘강 이야기(road movies에 빗대어)’이라고 할 수 있다. 샘과 도랑, 실개천, 개울, 강, 바다로 이어지는 물의 여행을 밀잠자리라는 길손의 알과 애벌레, 성충(잠자리)의 생명의 여정을 투영하는 방식을 통해 이야기의 전개하고 있다. 여기에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덧붙여 동화로서의 구성을 더 복잡하고 긴장감 있게 만드는 장치로 활용하면서 학습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자연 속 잠자리의 일생을 다큐멘터리처럼 즐겁게 이해할 수 있고 다양한 생태계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강과 시골 풍경과 삶의 풍경을 부담없이 엿볼 수도 있다. 사실적이면서도 동화적으로 표현된 삽화는 자연과의 친숙성을 더욱 높여준다.
잠자리와 함께 강을 따라가면서 물과 잠자리와 생태계를 이해할 수 있다. 김용택의 사물에 대한 예리한 통찰(시인의 직관)과 자연과학에 대한 편안한 접근(교사의 친절한 설명)과 더불어 시골풍경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시인의 어린시절의 추억)이 곁들어져 읽기에 편한 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의인화된 잠자리가 보는 자연은 시인의 시선만큼이나 따뜻하고 아름답다. “빗방울이 물 위에 방울방울 떨어지며 동그란 물결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지”라는 표현은 자연에 대한 깊은 사색이 없으면 나올 수 없다. 그리고 ‘보’를 설명할 때 “흐르는 물을 살짝 막아 필요한 만큼만 물을 쓰고 나머지는 흘려보내는 거야”라고 한 것도, 시골 생활을 현미경 같은 시선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표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식물도감과 곤충도감을 옆에 펴놓고 읽으면 자연과 생태에 대한 많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 물달팽이와 송사리, 각다귀, 물자라, 소금쟁이 게아제비, 물방개 등이나 개구리밥, 붕어마름, 검정말, 물봉선, 쥐오줌풀 등과 같은 곤충이나 식물을 알게 되면 더 흥미가 있게 된다.
물론 김용택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물’이다. 큰 밀잠자리와 함께 물길을 따라 가면서 보여주는 것은 바로 물의 중요성이다. 결국 물길은 우리의 목숨이고 ‘생명의 핏줄’이고 ‘생명의 젖줄’이라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물이 우리에게 생명이 되고, 삶이 되고, 터전이 되어 준 일들을 물 속에서 태어나 세상 밖으로 나온 큰밀잠자리가 물길을 따라 날아가며 들려주는 것이다. 물에서 태어나 물 속에서 죽어가는 큰밀잠자리처럼 우리도 물에서 태어나 물 속에서 죽어야 하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바다로 간 큰 밀잠자리』의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