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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수채화에 흰 먹물을 한 점 찍으면 맘껏 퍼집니다. 여기엔 무엇이 살고 있을까요?
수채화에 흰 먹물을 한 점 찍으면 맘껏 퍼집니다. 여기엔 무엇이 살고 있을까요? ⓒ 김규환
마음 같아선 며칠 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콱 막힌 서울, 숨 막힐 것 같은 더운 공기가 가까이 있는 사람마저 싫게 했다. 염소는 무사할까. 이놈 성질머리가 여름철엔 찰싹 달라붙고 추운 겨울엔 따로 떨어져서 제 새끼도 얼어 죽게 한단다.

솜사탕 같은 가벼운 구름이고 싶다
솜사탕 같은 가벼운 구름이고 싶다 ⓒ 김규환
먹구름이 아니라면 하얀 구름이라도 그늘을 내려주면 무더위는 좀 가실 성 싶었는데 생각대로 되는 건 없었다.

심란한 마음처럼 둥둥 떠서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난운(亂雲)은 솜사탕 마냥 포근해서 다행이다. 흰색 물감을 물에 아무렇게나 풀어놓아야 이런 가벼운 느낌으로 수채화를 그려나 보지.

물기를 가득 머금은 넓은 팔당호. 양수리 용담대교에서.
물기를 가득 머금은 넓은 팔당호. 양수리 용담대교에서. ⓒ 김규환
내 땀방울 하나에 지친 열기 한통, 풀잎과 작은 곤충이 내뱉은 한숨 덩어리, 냇가에서 도로 아스팔트, 큰 강가와 호수 한가운데 고여서 쉬고 있던 흐느적거림이 하늘을 타고 올랐다. 때론 미끄러지다가 힘내서 다시 올라 제들끼리 똘똘 뭉쳤다.

미지의 세계로 떠났던 내 살갗껍질 같은 존재는 영영 잊혀질 운명이련만 알알이 오롯이 얽히고설켜 수정(水晶)으로 태어났다. 덧칠을 하여 회색그림자를 들씌우니 선명하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아무나 그릴 수 없는 한 폭의 수묵담채화.
아무나 그릴 수 없는 한 폭의 수묵담채화. ⓒ 김규환
뭔가를 그리겠다는 화가는 더위에 지친나머지 붓을 놓을 심산으로 마구 휘젓는다. 항차 먹이 머금었던 수분에 빨려 들어가 흐느적거리며 습자지를 먹는다. 사람 수와 호흡하는 동물 개체, 들꽃 들풀이 풀벌레와 노니는 만큼 각양각색 여러 빛깔이 뒤섞였으니 무채색이다. 수묵화처럼 까맣다.

차차 온통 검정색으로 바뀌니 켜켜이 엉켜 먹구름이 쌓였다. 다빈치와 겸재, 혜원, 단원, 오원이 번갈아가며 허공에 내지르니 이게 적운(積雲)이 되었다가 적란운(積亂雲)으로 요동치며 무색무취 물줄기를 뽑아내는 중하(中夏) 절정의 시원한 빗줄기다.

하늘과 산과 물을 연결한 구름. 산길을 거닐면 구름 속 세상을 만질 수 있다.
하늘과 산과 물을 연결한 구름. 산길을 거닐면 구름 속 세상을 만질 수 있다. ⓒ 김규환
어미 품 같은 땅을 적시고 실개천을 불리고 둠벙으로 무당개구리 소금쟁이 물방개 모은다. 봇물을 지나 강, 대하에 쌓고 호수에 넉넉히도 잡동사니 포함하여 휩쓸고 뒤섞어 출생지를 모를 지경이지만 그들은 단지 비였다. 물이 되었지만 그 전에도 물이었다. 돌고 돌아 제 자리로 돌아와 더 맑고 순수한 노래를 부른다.

꿈을 버리지 못함인가. 아직 떠나지 못하고 기웃기웃 저 골짜기에 머문 건 미완성 작품의 열정 때문이려나. 잠룡이거나 이무기가 승천하지 못하고 무릉도원에 꼬리를 담그고 있는 게지.

평온한 마을 강나루엔 사람도 살고 있었네.
평온한 마을 강나루엔 사람도 살고 있었네. ⓒ 김규환
아직 떠나지 못하는 하늘과 땅 사이에 머문 구름 선경(仙境) 안에는 필시 무엔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수작(酬酌)이 펼쳐지고 있을 게야. 비틀거리지 않은 아이들의 맑은 정신으로 춤추고 노래하고 휴식이 가득하며 느긋함이 배어있겠지. 시공을 초월하여 무상무념 절대평온 그 경지에 취한 평화로운 세상 말일세.

양수리 철길을 달리는 기분도 좋습니다. 옛 좁은 도로로 천천히 가는 즐거움도 있답니다. 이 길을 지나 좌회전하면 황순원의 <소나기> 배경이었던 서종면입니다.
양수리 철길을 달리는 기분도 좋습니다. 옛 좁은 도로로 천천히 가는 즐거움도 있답니다. 이 길을 지나 좌회전하면 황순원의 <소나기> 배경이었던 서종면입니다. ⓒ 김규환
나는 보았네. 두물머리(兩水里) 언저리에서 신선(神仙)이 된 인간이 그린 그림과 일렁이는 물결 속에 숨어 있는 셀 수 없는 작은 용들의 꿈틀거림, 풍덩 화폭에 빠져들고 싶은 젊은이를….
구름 속으로 빨려들어간 연(鳶). 연줄이 무척 길었습니다.
구름 속으로 빨려들어간 연(鳶). 연줄이 무척 길었습니다.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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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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