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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엔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자전거 출근을 포기했습니다. 저는 요즘 구례에서 악양까지 왕복 30km를 자전거로 출퇴근 하고 있답니다. 어느덧 3개월이 지났는데 요즘은 장마기간이라 자전거 출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가부를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자전거 출근을 포기하자 1시간의 여유가 저에게 돌아옵니다. 그 여유를 누리기 위해 집 앞에 보이는 화엄사까지 달려 보기로 했습니다. 보이는 직선으로 간다면 거리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지만 집에서 화엄사 가는 길은 마치 활처럼 생겼습니다.
활의 시작점에서 끝나는 지점까지 돌아가면 직선코스가 나오고 화엄사 입구까지 언덕이 계속됩니다. 지리산에 점점 가까워지자 배낭을 메고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반바지의 슬리퍼 차림에 휴가를 온 연인들도 보입니다.
화엄사에서 지리산을 오른 적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합니다. 지리산 성삼재까지 버스가 운행되고부터 지리산 등산을 노고단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의 산행 시작점도 성삼재 버스 정류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노고단에서 지리산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은 화엄사부터 걸어서 오를 것인지 아니면 버스로 오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스를 선택합니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지리산 능선을 마음속으로 그려만 보고는 발길을 돌립니다.
오를 땐 힘들었던 언덕길을 시원스럽게 달려갑니다. 등교 버스를 기다리는 여고생들의 웃음소리가 넘고 경운기가 쾅쾅 소리를 내며 지나갑니다. 다시 활처럼 생긴 길을 휘돌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착합니다. 땀은 비 오듯이 흐릅니다.
동네 우물가에서 아주머니 세분이 오순도순 빨래를 하고 있습니다. 먹어도 되는 물이냐고 물으니 당연하다는 듯이 쳐다봅니다. 물에게 잠시 미안합니다. 우물가에 빨래하는 모습도 낯설어 보입니다. 우물이 사라진 지 오래 되었고 커다란 우물대신 수도꼭지가 놓인 지 이미 오래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물의 넉넉한 넓이에는 마을 공동의 쓰임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지만 지금의 좁은 수도꼭지는 개인의 편리라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오이 하우스 길, 논둑 길, 서시천을 넘어 달립니다.
지난해 9월 도시를 떠나 지리산 곁으로 다가오면서 혼자 자연 속에서 달리는 것이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발소리를 들으며 함께 달련 본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좋아하는 지리산이지만 지리산 주변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물 좋고, 산 좋고, 공기 좋은 곳이지만 돈 벌기 어렵고, 교육환경이 열악하고,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 마트도 극장도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이 보존되어 있는 곳엔 사람이 없고 사람이 많은 곳엔 자연이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저는 지난해 9월 도시를 떠나 지리산 곁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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