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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봉에서 본 섬마을
비양봉에서 본 섬마을 ⓒ 김강임
삶 자체가 피서인 비양도 사람들

마을 앞 포구인 ‘압개’가 훤히 내다보이는 고목나무는 섬사람은 물론 외지인의 아지트였다. 배를 타고 비양도를 들어오는 사람들은 이 고목나무 앞을 지나야 한다. 그러니 고목나무 밑에 앉아 있으면 누가 이 섬에 들어왔는지 다 알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비양도 사람들은 한낮 무더위가 쏟아져 내릴 때 부채 하나 들고 고목나무 아래 앉아 있으면 어느새 바닷바람이 땀을 훔쳐가니 에어컨이 필요 있을까? 그런데 그 고목나무는 다이어트를 했는지 몇 십 년도 안 된 나무 같았다.

마을 앞 고목나무는 다이어트 중. 뒤로 포구와 선착장이 보인다.
마을 앞 고목나무는 다이어트 중. 뒤로 포구와 선착장이 보인다. ⓒ 김강임
“쉬엉 갑써 게!”
“ 뭐 볼 꺼 있다고 섬에 들어 왔수꽈? ”
“ 어디서 옵디까?”
대답할 여유도 주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비양도 아낙의 얼굴에는 호기심보다 적적함이 묻어났다.
“제주시에서 왔수다!”
제주사투리를 감칠 맛 나게 잘하는 친구는 벌써 이곳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버렸다.
“이 찐 계란 좀 먹엉 봅 써!. 여기 김밥도 있쑤다! 수박도 잘 익었지예!”
배낭 속에 든 점심 메뉴를 하나 둘 꺼내지는 순간, 고목나무 아래에는 천년을 지켜 온 듯한 고령의 할머니들이 피서를 오기 시작했다. 앞니가 다 빠진 할머니는 찐 계란을 오물오물 씹어서 삼키신다. 그리고는 “ 제주시에도 많이 더웠지예?” 라며 인사로 가름한다.

바다는 비양도 사람들의 텃밭.
바다는 비양도 사람들의 텃밭. ⓒ 김강임
바다가 텃밭이니 이보다 부자가 어디 있으랴!

포구를 끼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비양도 주민은 60여 세대, 150여명이 모여 살고 있으니 비양도의 총 면적 약 0.43㎢에 비하면 얼마나 한적 하고 평화로운 곳인가? 집에서 창문을 열면 한라산과 한림항, 그리고 제주시가 훤히 내다보인다. 그러니 이들은 삶 자체가 휴식이고 피서다. 더욱이 비양도의 20%는 밭이고 임야는 53%를 차지 하지만, 망망대해 바다는 섬사람들의 바다 밭이니 이 세상에 이들보다 부자가 어디 있으랴?

그물 길 해안도로
그물 길 해안도로 ⓒ 김강임
그러나 그것은 오산일 수도 있다. 도시 사람들이 복잡한 도심을 피해 한적한 섬으로 달아 나 듯이, 섬사람들은 한적함에 질려 멀리 육지로 달아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행여, 자동차를 피해서, 사람을 피해서 그리고 온갖 복잡한 일상을 피해서 달려온 사람들이 섬사람들에게 고무풍선을 달아준 것은 아닐는지.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드디어 마을 고목나무 아래에서는 벌써 점심 잔치가 시작됐다. 삶은 계란과. 김밥, 그리고 수박, 섬마을 사람들과 함께 먹는 점심은 꿀맛이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은 바다를 통째로 마시는 기분이다.

자동차 없는 섬이라서  리어카는 필수
자동차 없는 섬이라서 리어카는 필수 ⓒ 김강임
자동차 없으니 리어카와 자전거는 유일한 이동수단

평소에는 하루 2편 밖에 없는 배편이지만 여름 휴가철에는 수시로 도선을 운항한다. 이제 막 비양호에서 내린 손님들이 선착장을 빠져 나오는 모습들이 분주하다.n 비양도는 자동차가 없는 섬이다. 그래서 이곳은 집집마다 리어카가 있다. 리어카는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를 때, 그리고 노약자를 태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이동수단이 또 있을까? 마침 리어카에 짐을 가득 실은 가족이 선착장을 빠져 나온다.

'섬마을 여행' 자전거 투어도 할 수 있어...
'섬마을 여행' 자전거 투어도 할 수 있어... ⓒ 김강임
그리고 비양도의 또 하나 교통수단은 자전거, 작은 섬 안에서 멀리 갈 일은 없지만 자전거는 유일한 또 하나의 교통수단이다. 특히 비양도 자전거 투어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섬마을 여행’ 자전거를 대여 할 수도 있다.

남편은 리어카를 끌고 아내는 짐을 밀어주는 광경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리어카에 실려 있는 짐이라야 멍석과 한림이나 제주시에서 구입했을 여러 가지 공산품이다. 마을 리장님 댁에서 운영하는 슈퍼마켓이 있으나 마을 사람들은 웬만한 공산품은 배를 타고 나가야 사 올 수 있다.

그물손질에 허리를 펴고 있는 비양도 아낙
그물손질에 허리를 펴고 있는 비양도 아낙 ⓒ 김강임
그물을 손질하는 어머니도 구부러진 허리를 펴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듯하다. 바다를 텃밭으로 일구며 살아가는 삶이 어디 편안 할 수가 있을까?
멸치 때가 풍어를 이루면 멸치잡이를, 한치 때가 풍어를 이루면 한치 잡이를 나가야 되니, 섬사람들의 4계절은 항상 비상사태다. 그리고 물때가 되면 바닷물 속에 들어가서 해삼이며 멍게, 전복을 잡아야하니 바다는 이곳 사람들의 기름진 텃밭이다.

텃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주민들. 뒤로 보이는 오름이 비양봉
텃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주민들. 뒤로 보이는 오름이 비양봉 ⓒ 김강임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바다를 향할 뿐

비양봉 기슭에는 여름 농작물들이 모두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콩, 고구마, 옥수수, 호박. 모두 바다로 고개를 향하고 있다. 그리고 비양도는 대문이 없는 것이 특색이었으며, 올래 긴 돌담 집 한 켠에는 저마다의 우영 밭을 가꾸고 있다. 돌덤너머로 본 우영 밭에는 아직 여물이 들지 않은 고구마 덩굴이 여름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을 기다리는 폐가
주인을 기다리는 폐가 ⓒ 김강임
그리고 섬을 등지고 떠난 주인을 기다리는 폐가도 몇 채가 있다. 돌을 쌓아 지은 돌담 집은 주인을 잃은 듯 창문이 열려져 있고, 호박 덩굴이 돌담을 타고 바다 쪽으로 얼굴을 내민다.

비양도를 지키는 돌공원
비양도를 지키는 돌공원 ⓒ 김강임
지금 비양도는 휴가 중

모두가 휴가를 떠난 도심의 거리처럼 한적하고 조용한 섬 비양도. 이 비양도를 지키는 것은 바다에서 놀러온 게, 해안도로를 지키는 돌 공원, 비양봉에 외롭게 서 있는 하얀 등대, 해안도로에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그물, 그리고 망부석, 해파에 부서진 용암굴뚝, 펄렁호에 놀러온 철새와 야생화다. 지금 비양도는 휴가 중이다. 너무나 심심해서 눈물이 나는‘천년의 섬’ 비양도에서 바다를 통째로 마셔보면 어떠리.

덧붙이는 글 | 이어서 3편은 분화구가 2개인‘비양봉 오름’탐사에 대한 이야기가 엮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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