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그는 조선의 정치 개혁가였는가 아니면 어리석은 정치가였는가. 지금 이 시대에 와서도 몇 백 년 전에 죽은 조광조를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는 그를 진정한 개혁가로 칭하고, 어떤 이는 변화조차 시키지 못했으면서 성질만 급했던 어리석은 정치가라고 칭한다.
사실, 그를 어떻게 조명하느냐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분명 작가 최인호도 그랬을 것이다. 과연 조광조가 주창했던 '공자의 정명주의로 왕도국가를 세우자'가 올바른 길이었는지 조차도 알 수 없기에 그가 어떠한 사람이라고 단정짖기는 어렵다.
이 <유림1권>의 저자인 최인호씨가 밝혔듯이 최인호씨는 이 주제를 15년 동안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섣불리 탈고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최인호씨는 소설 '상도' 이후로 또 한번의 놀라운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듯하다.
유림1권 앞부분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시대의 정치가들은 새로운 정치, 개혁하여 다시 태어나는 정치만을 외친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 그리고 이전의 정치를 바꾸려면 먼저 자기 자신이 윤리 도덕적으로 올바른 정치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조광조라는 인물을 통해서 올바른 정치가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를 그 예로 들고 있는 것이다.
'그 효(孝)와 그 충(忠), 그 예(禮), 그 경(敬)으로 가득 찼던 유림의 숲으로 가자'
이 소설을 시작하고 있는 문장이다. 지금 이 시대는 유교라는 것을 그저 낡은 것, 오래된 것쯤으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생활, 인생 곳곳에 스며 있는 유교는 못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작가 최인호씨는 조광조라는 조선시대의 정치가를 통해서 우리 시대의 정치가들이 깨달아야 할 것들을 짚어주고 있다. 유림의 숲에 존재하는 효, 충, 예, 경의 덕목들을 우리 시대의 정치가들은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정치가들뿐만 아니라 우리 일반 사람들도 그러한 것들을 너무 잊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쯤에서 사회를 통합하고 우리네가 살고 있는 사회가 더욱더 몇 백 년, 몇 천 년 더 보존이 되려면 우리가 유념하고 지켜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봐야 할 때는 아닌가?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길은 이것이다. 그 모든 덕목들이 가득 차 있던 유림의 숲으로 가라' 하고 길이나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지 않다. 깨닫고 길을 걷고 가고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작가가 말하려는 의도를 해석하고 이해하고 느끼는 독자들의 몫이다.
조광조라는 인물을 통해서 이상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 <유림1>은 '조광조'라는 인물의 확정적인 해석 없이 시작되고 있으나,
그가 죽기 전에 써내려갔다던 '절명시'는 그가 왜 모범이 될 수 있고, 예가 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노라
하늘이 이 땅을 굽어보시니
내 일편단심 충심을 밝게 밝게 비추리.
사람과 하늘은 그 중간도 없이 가깝다고 한 조광조. 그는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다 결국 자신이 충성을 다했던 중종으로부터 사약을 하사받고 쓸쓸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이 시대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개인 권력에 눈이 멀어 '개혁', '나라에 대한 충성'만을 울부짖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연 진심으로 나라를 위한 마음이 가득 찼던 조광조. 그가 남기고 간 이 흔적들을 작가가 모아 현시대의 정치가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 최인호씨는 모 방송국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기가 진보라고 생각하면 조광조를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보수주의자라 생각하면 조광조를 아마추어 정치가라고 생각하죠."
그만큼 '조광조'라는 인물을 1권에서 다룰 만큼 애착이 간다는 것이고, 많이 생각해봤다는 것이다. 우리시대의 최고의 작가 최인호가 던져주는 최고의 화두. 조선시대 최고의 정치가와 그가 만났다.
<유림1>권은 조광조라는 인물을 통해서 이 시대의 사람들과 정치가는 무엇을 생각해봐야 하는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유교 이야기하는 책이냐. 딱딱하다'라는 편견보다는 일단 작가 최인호를 한번 믿어보고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