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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용택 전 국정원장(자료사진)
천용택 전 국정원장(자료사진) ⓒ 이종호
국가정보원은 천용택 전 국정원장과 오정소 전 국가안전기획부 차장 등을 불러 이른바 국가안전기획부의 불법도청 X파일 사건과 관련, 조사를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천용택 전 국정원장의 측근 인사는 31일 "천 원장이 X파일 건으로 이미 지난주에 국정원 안가(安家)에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천 원장은 삼성 관련 X파일을 MBC 이상호 기자에게 넘긴 재미교포 박인회(58)씨가 인천공항에서 임의동행 형식으로 국정원 조사를 받은 뒤에 이건모 전 감찰실장 등에 이어 조사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박씨는 국정원에서의 조사를 거부해 인천공항 근처의 한 호텔에서 조사를 받은 뒤에 검찰에 신병이 인도되었고, 천 원장 또한 원장 출신임을 고려해 모처의 국정원 안가에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천용택 국정원장 시절에 보좌관을 지낸 이 측근은 또 "천 원장은 공운영 팀장의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X파일 보고서에 대해서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천 원장 "공 팀장 및 X파일 보고서 기억 나지 않는다"

이 측근에 따르면, 공씨는 98년 이종찬 초대 국정원장의 국정원 개혁 당시 이른바 과거 정부에서의 '정치관여자'로 분류되어 면직되었다. 그러나 미림팀 자체가 일종의 '사조직'으로 운영된 비밀조직이었기 때문에 공씨가 막연히 불법적인 업무를 수행했을 것이라는 짐작은 했지만 정확히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측근은 "면직 당시에는 공씨가 현장도청 팀장인지 몰랐는데 그 이후에 복직 로비활동을 할 때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하고 다녀서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즉 공씨는 98년 면직 뒤에 자기가 엄청 중요한 일(도청)을 했고 새정부에서 앞으로도 해야 하고 그런 중요한 일을 할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취지로 얘기하고 다녀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측근은 또 천 원장이 공운영 팀장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과 관련 "원장이 일개 팀장(서기관)을 모르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고 주장했다. 또 천 원장이 X파일 보고서에 대해서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에 대해서도 "99년 12월 국정원 퇴직 이후 지나가는 말로라도 단 한번도 X파일 내용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는 것으로 봐서 사실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천 원장 재직 당시 원장 비서실 관계자들도 X-파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X-파일 건에 대해서는 이건모 감찰실장이 그 처리결과를 직보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건모 전 실장은 "천 원장에게 3∼4회 보고했다"고 국정원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실장은 28일 언론에 공개한 '자술서'에서 99년 여름께 테이프 200여개와 녹취록 등 2박스 분량을 공씨로부터 자진 반납받아 감찰실 보안팀 사무실에서 엄격히 통제관리하며 자료 정리 및 분석에 착수해 그해 12월 천 원장에게 "본 도청자료는 결코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될, 일순 실수로 태어났다면 태어난 즉시 없어졌어야 했던, 지금이라도 저희 선에서 당장 없어져야 할 불법의 산물이며 대악재다"면서 "원장님께서는 본 자료의 구체내용에 접근을 피하시는 게 좋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 전 실장은 또 자술서에서 천 원장에게 "지금은 당장 아시는 만큼 흥미롭게 활용도가 크시겠지만 자칫 잘못되면 국가에 큰 화를 끼칠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불행해질 수 있다고 보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천 원장이 X파일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않았을 개연성이 있다.

99년 12월 4일 국정원내 소각장서 감찰실 직원 입회하 소각

이와 관련 주목을 끄는 것은 테이프 소각 시점이다. 이 전 실장은 28일 자술서에서는 "99년 12월 제 앞에서 보안과 P팀장과 직원으로 하여금 목록과 테이프를 일일이 확인토록 한 후 전량 소각을 지시했고 소각 처리후에 결과를 보고받았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이 전 실장이 같은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99년 여름 공씨에게서 도청테이프 200여개와 녹취록 등 박스 2개 분량을 반납받아 전체 내용을 정리·분석한 후 천용택 당시 국정원장에게 개요만 보고하고 그해 12월20∼23일께 국정원 소각장에서 전량 소각했다"고 밝혔다.

반면에 국정원 조사에서는 관련자들이 12월 4일께 소각장에서 소각한 것으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당시 감찰실의 '보안과 P팀장'은 "잘 모른다"고 답변을 피했으나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이 실장의 지시로 박○○ 팀장이 소각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런(보안 관련) 일이 생기면 국정원내 소각장에서 감찰실 직원이 입회하에 소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주장대로라면 당시 국정원은 이른바 옷로비 사건 및 파업유도 발언 특검 수사, 이종찬 전 원장의 '언론대책 문건 유출' 사건 등으로 경황이 없을 때였다.

따라서 앞서의 측근 얘기대로, 천 원장이 이건모 실장으로부터 불법도청 테이프 처리건에 대해 개요만 보고받고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라고 처리했다면 천 원장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천 원장은 왜 12월 15일 기자간담회에서 "김 대통령은 정치자금법이 개정되기 이전인 97년 홍 회장(당시 중앙일보 사장)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으며 97년 이후에도 홍 회장이 '삼성 돈'을 싸들고 왔으나 정치자금법에 위반된다며 거절했다"고 말했을까.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히 풀렸다. 당시 천 원장 발언 녹취록 등을 확인한 결과, 천 원장은 정치자금에 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전한 것이었을 뿐이지 X파일 보고서를 보고받고 홍 회장 정치자금 얘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X파일 사건이 터지자 MBC를 필두로 대다수 언론들은 천용택 전 원장이 99년 12월 15일 이전에 이미 X파일의 내용을 보고받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일 기자간담회에서 홍석현 회장의 정치자금을 언급한 것으로 추정해 보도했다. 그러나 99년 12월 당시 상황을 기록한 기자의 취재수첩과 언론 정보보고 및 관련 기사, 그리고 국정원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한 결과 '오보'일 가능성이 크다.(딸림기사 참조)

앞서의 천 원장 측근도 당시 천 원장은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제기한 서경원 전 의원 1만 달러 수수 의혹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은 절대로 문제가 되는 돈을 받은 적이 없다"면서 김 대통령이 말한 홍석현 회장 사례를 든 것일 뿐 X파일 보고서를 보고 한 얘기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 측근은 이런 점을 포함한 모든 의혹을 천 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힐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지금은 국민들이 어떤 말을 해도 잘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언론 접촉을 피하는 것일 뿐이지 일부 보도대로 잠적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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