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기계가 잘못됐으면 빨리 바꿔야 할 거 아냐?! 야, 가서 사장 데려와!"
7월 23일 주말 밤, 부산 진구 부전동에 있는 한 편의점. 큰 덩치에 머리를 짧게 깎은 이가 계산대 앞에서 버럭 소리를 지른다. 술 냄새가 진동한다. 주말 야간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안남규(경성대·26), 안재언(인제대·25)씨가 잔뜩 긴장해서 "죄송합니다"는 말을 연신 내뱉지만 분위기 전환은 역부족. 함께 온 일행도 큰 손으로 진열대를 툭툭 치며 애꿎은 과자에 시비를 건다. 그리고는 드라마에서 봄직한 동네 양아치 대사를 구시렁거리는데,
"여기 뭐, 먹을 것도 없구만. 이래 가지고 장사나 제대로 하겠어?"
야간, 그것도 한여름 밤 24시 편의점은 점잖은 낮의 세상과는 사뭇 다르다. 왜? 어둠이 지배하는 밤에는 밝은 데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밤의 편의점은 '깍두기'들이 접수한다?
밤 10시. 야간 근무조인 두 안씨가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소위 '깍두기'로 보이는 이들이 편의점에 들어섰다. 그들은 냉동고를 휘휘 젓더니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고 척하니 수표를 건넨다. 수표를 받아들고 조회를 했다. 하지만 '조회 불가.' 손님에게 받을 수 없다고 하자 이유가 뭐냐며 고래고래 고함을 친다.
험악한 분위기에 물건 고르던 손님들은 도망가듯 뛰쳐나간다. 인상을 쓰던 두 깍두기님도 이제 볼 장 다 봤다고 생각했는지 "장사 똑바로 해"라는 말과 함께 아이스크림 값으로 동전 몇 개를 던지고는 문을 박차고 나간다. 그제야 재언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오늘은 좀 조용히 넘어간 편이구요. 보통 계산대 앞에서 새치기는 다반사고 줄을 서 달라고 하면 자기 먼저 안 해 준다고 쓰레기통을 발로 차며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가기도 하죠."
워낙에 별의별 사람들이 많이 찾는 편의점인지라 는 범죄위험이 따른다. 하루 매출을 몽땅 털릴 수도 있어 야간에는 꼭 '도중집금'을 한다. 10만 원 단위로 현금을 금고에 넣어두는 것인데 한 번 넣은 돈은 꺼낼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래야 강도가 와도 털릴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편의점은 담배 수익으로 먹고 살아요"
늦은 밤임에도 계산대 앞에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시내 중심가고 토요일이다 보니 더 그렇다. 요즘 하룻밤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얼추 3백여 명 정도. 매출은 2백만 원 정도 나오는데 주간 매출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만큼 여름밤에는 손님이 많다는 얘기다.
"담배를 사러 오는 손님이 가장 많죠. 요즘에는 여름이라 아이스크림 찾는 사람도 많아요."
자정. 담배 몇 종류는 벌써 동이 났다. 워낙 열대야가 심해서인지 맥주를 찾는 사람도 많다. 한참 바쁜 이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 물건을 입고하는 차량까지 들어온다. 이곳에서 5개월째 일하는 재언씨는 빠른 손놀림으로 물건들을 진열하고 남규씨는 홀로 카운터를 지킨다. 재고 관리는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맡는다.
"상품은 가장 잘 나가는 걸 먼저 맨 앞줄에 진열하구요. 그게 다 팔리고 나면 그동안 안 팔린 걸 다시 앞줄에 갖다 놓죠. 남자가 여자보다 키가 큰 걸 감안해서 남자들이 찾는 물건은 좀 더 위쪽에 배열하고 있어요."
새벽 2시, 한밤중에 냉동 인간을 추격하다
어느덧 자정을 넘긴 시간, 편의점은 여전히 불야성이다. 실내에 냉방이 빵빵하게 돌아가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문을 닫지 않아 그리 시원하지는 않다. 이럴 때는 겨울 편의점 알바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고. 겨울에는 편의점 안이 따뜻할 뿐더러 추워서 한밤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다는 것. 반대로 여름밤에는 손님도 많고 편의점 주위의 쓰레기까지 치워야 하기 때문에 정말 정신이 없단다.
이 시간에 편의점에 드나드는 사람들 중 반 정도는 취기가 돌아 얼굴빛이 붉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에 지갑에서 돈 꺼내는 손놀림도 서툴다. 남규씨 혼자 카운터를 맡다 보니 계산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져 정신이 없다. 물건 값을 묻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계산하랴 돈 받으랴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지경.
그 틈에 담배 두 갑을 주문한 손길이 반으로 접힌 천 원짜리 뭉치를 던지고 황급히 사라진다. 손님들이 돈을 던질 때마다 기분은 나쁘지만 짜증을 낼 틈이 없다. 그런데 뭉치를 펴는 순간!
"압! 재언아, 재언아! 카운터 좀 봐라. 어휴 이것들이∼"
담배 두 갑에 5천 원인데 그 뭉치는 교묘하고 두툼하게 5천 원처럼 위장한 3천 원이었다. 남규씨는 급하게 손님을 뒤쫓는다.
"손님, 돈을 덜 주셨습니다! 손님∼!"
인적이 드문 골목까지 와서 소리를 쳐도 그 사람은 들은 척도 않는다. 손님도 뛰어 도망가시는 중이니까. 남규씨는 지구 끝까지 쫒아갈 듯이 악을 쓰며 달려가 드디어 그분을 잡았다. 그런데 이 손님 반응이 황당하기 그지없다.
"원래 두 갑에 3천 원 아니었어요?"
아니 이 사람이 무슨 냉동인간으로 살다가 방금 전에 몸을 녹였나. 남규씨는 끓어오르는 화를 꾹꾹 누르고 몇 년 사이 담배 값이 많이 인상됐고 앞으로 더 인상될지도 모른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2천 원을 받아들고 편의점으로 돌아왔다.
3시가 다 되어가는 데도 사람들은 꾸역꾸역 들어온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술집들이 사람들을 품었다가 시간대 별로 돌아가며 골고루 내뱉는 꼴이다. 덕분에 남규씨와 재언씨는 쉴 틈이 없다.
"내가 여기에서 팔아준 게 얼만데, 좀 깎아주라"
새벽 4시, 한 중년 손님이 익숙한 발걸음으로 물건을 이것저것 챙겨 꽤 많은 양을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돈을 딱 맞춰 왔는지 봉투 값 20원을 얘기하자 이 손님 구렁이 담 넘어가려는 표정을 짓는다.
"나 단골이잖아. 사장이랑도 친해. 내가 여기서 팔아준 게 얼만데, 그깟 20원 안받으면 안돼?"
봉투 값 20원에 목숨 거는 이런 손님이 한두 명이었던가. 이제는 노련해진 남규씨는 봉투 값은 법으로 시행 중이라 혹 받지 않았다가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한다, 나 같은 아르바이트생이 무슨 돈이 있냐며 읍소한다. 마지막에는 환경 문제도 살짝 건드려 주고.
그러자 이 손님, 뾰로통한 얼굴로 그 많은 물건을 품에 끌어안고는 성난 몸짓으로 ‘뻥’하고 문을 힘껏 밀친다.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냐고 하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에게는 에누리가 없다.
"핸드폰 충전 한 번 하는데 천 원을 선불로 받아요. 그런데 가끔 완충은 안할 테니까 500원어치만 해 달라고 조르는 사람이 있어요. 기가 막히죠. 그 손님도 한 잔하고 왔는데 아무리 애교를 부리고 떼를 써도 안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어느덧 날은 밝아오고... 어라? 돈이 안 맞네?
아침 7시. 벌써 여름 해가 뜨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인다. 재언씨는 편의점 쓰레기통을 다시 분리수거한다. 오늘 카운터를 맡은 남규씨는 편의점 안을 쓸고 닦은 다음 '시재점검'을 한다. 기계에 입력된 현금과 실제 들어온 현금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 그런데 계산기를 두드리는 남규씨의 얼굴이 어둡다. 계산이 맞지 않는다. 돈이 모자란다. '빵꾸'다.
"아르바이트 초기에는 정말 실수 많이 했거든요. 요즘에는 꼼꼼히 하는데 오늘은 정말 정신이 없었나 봐요. 어쩌겠어요. 제가 메워야죠."
모자란 돈은 만 원 정도. 3시간 일당이 날라 갔다. 근래에는 이런 일이 없었던 터라 남규씨의 어깨가 처진다. 몇 번을 더 해 봐도 계산이 맞지 않아 남규씨는 가게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편다. 그의 얼굴이 무척 피곤해 보인다.
"힘들죠. 다른 일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익숙해지니까 차츰 나아지는 거죠. 예전엔 노가다를 많이 했는데, 이제 한 곳에 머물고 싶더라구요. 게다가 학교 다니면서 하기에는 주말 야간 편의점이 딱이었죠. 야간에는 사장도 없으니까 마치 제 가게를 운영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사람 구경도 할 수 있고 나름대로 재밌습니다(웃음)."
이제 교대해야 하는 아침 7시. 아침부터 니코틴이 땡긴 손님들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온다. 원하는 담배가 밤새 품절됐다고 하자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는 손님들. 남규씨는 새로 나온 담배를 하나 권하고 만 원짜리를 받아 바코드로 찍고 거스름돈을 건넨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