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 즉 동로마제국은 우리에게뿐 아니라 오늘날의 서구인들에게도 낯선 역사 속의 존재다. 이러한 낯선 배경 속에 우리 자신을 이입시켰을 때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된다. 해리 터틀도브가 대체역사소설로서 1994년 자신의 중편들을 엮어 출판한 <비잔티움의 첩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책이다. 그렇기에 <비잔티움의 첩자>는 우선 그 배경에서 신비로움을 자극하고 있다.
우선 이 소설을 접하기 전에 주의할 점이 있다. <비잔티움의 첩자>는 어디까지나 대체역사소설, 즉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일어나지 않았다고 가정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설정 하에서 역사를 재구성해보는 소설이다.
대체역사소설은 SF(Science Fiction)의 범주에 드는데 여기서 SF를 공상과학소설이라는 협의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분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르겠다. 역사적 사실을 일정한 논거에 의거에 서술한다는 점에서 대체역사소설은 SF의 범주에 든다. <비잔티움의 첩자>의 추천사를 SF의 대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것은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하면 된다.
저자가 비잔틴사를 전공했다는 사실과 대체역사소설의 거장으로 칭송받는다는 사실은 이 책을 보증하는 증명서이고, 이로 인해 이 책의 번역 출판을 기다려온 국내독자도 있었지만 여기서는 일단 이러한 사실을 뒤로 물려 두고 살펴보기로 하자.
<비잔티움의 첩자>는 하나의 대전제에서 시작된다. 현실의 역사에서는 꺼져가는 마지막 역사의 한 페이지를 부여잡으며 간신히 맥을 이어가던 14세기 초기의 비잔틴 제국이, 새로이 구성된 역사에서는 아직도 번영을 지속하고 있다. 그 이유는 비잔틴 제국을 압박하고 끝내 무너트린 근본인 이슬람교가 발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무아메트(모하메드: 현실 역사에서는 이슬람의 창시자)는 700년 전 페르시아의 침입을 피해 비잔티움으로 망명, 크리스트교로 개종한다. 여기서 서구인들의 이슬람교에 대한 편견과 적대심을 연상한다면 오해다. 소설 속에서 이슬람에 대한 역사적 전제는 그것으로 끝날 뿐 타 문화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감을 드러내는 구석은 없다. 다만 그런 흐름에서 발전을 해왔다는 가상의 역사를 누려온 비잔틴 제국이 존재할 뿐이다.
소설은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이러한 비잔틴 제국의 역사 속에서 '만약'이라는 작은 전제를 제시해 준다. 비잔틴 제국의 수사관 격인 마지스트리아노스라는 직무를 맡고 있는 주인공 아르길로스는 제국을 위협하는 이민족의 새로운 발명품이나, 실제 역사 속에서도 비잔틴 제국의 근간을 뒤흔들었던 종교 논쟁 등의 갈등 상황을 해결해 나간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단지 흥미 본위의 사건 구성으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제2장 '기묘한 발진' 편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의 처절한 묘사가 독자의 심정을 착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역사에 대한 소양이 있는 독자라면 이 소설의 전제와 대체역사 속 상황의 몇몇 사항에 대해 다소간 불만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불만조차도 소설 속에 묘사된 비잔티움과 그 주변 세계를 그린 분위기에 빠져들어 녹여 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