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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고려호텔
평양의 고려호텔 ⓒ 박도
7월 20일 14: 30,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평양역을 지나 창광거리에 있는 고려호텔에 도착했다. 남측 대표단이 묵을 숙소로 그동안 보도를 통해 눈과 귀에 널리 익은 북한 최신의 45층 쌍탑식 우람한 특급호텔이었다.

호텔 나들문을 열고 들어서자 남녀 종업원(복무원) 30여 명이 두 줄로 죽 서서 우리 일행이 들어올 때마다 박수를 치면서 뜨겁게 맞이해 주었다.

아침에 짙은 안개로 인천공항에 북한 비행기가 늦게 도착하여 일정이 계속 늦어져서 그새 점심시간을 넘겼다. 집행부에서는 방 배정에 앞서 우선 식당으로 안내했다.

1층 구내식당에서 우리 일행의 점심 먹을거리는 불고기를 곁들인 '랭면'이었다. 시장한데다가 음식이 깨끔하게 나와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녹두지짐과 작은 접시에 갓 구워 나온 쇠고기 불고기 맛이 일품이었다.

식사 후 방 배정을 받았는데 소설가요 전 국립극장장을 역임하신 이길융 선생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초면이었지만 이 선생은 중후한 인품으로 무척 편케 대해주셨다.

우리 방은 23층 22호로 특급호텔답게 시설이 좋았다. 먼저 전기콘센트를 살폈더니 다행히 220볼트로 집에서 준비해간 국제용 플러그로 컴퓨터에 잇자 곧 화면이 뜨면서 경쾌한 신호음이 울렸다. 가장 걱정했던 점이 해결됐다. 방북기간 내내 마음 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남쪽 대표단에게 박수로 환영하는 호텔 복무원들
남쪽 대표단에게 박수로 환영하는 호텔 복무원들 ⓒ 박도
다음 일정으로 손도 닦지도 못한 채 1층 집합장소로 내려갔다. 하지만 집행부에서는 북측과 해외참가 문인들에 대한 대표성 문제로 남북간의 이견이 돌출하여 일정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면서 다시 숙소로 가서 대기하라고 하였다.

다시 승강기를 타고 방으로 올라가서 온몸을 닦았다. 이른 아침부터 땀을 흘리면서 잔뜩 긴장하였다가 몸을 닦자 금세 졸음이 왔다.

단잠을 자는데 집합하라는 연락이 왔다. 그새 30여 분 잤다. 아주 몸이 가뿐했다. 집행부는 밀고 당기느라 마음고생이 많았을 테지만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은 휴식시간이었다.

18시 30분, 인민문화궁전에 도착하였다. 건물 정면에는 '민족작가대회 참가자들을 열렬히 환영한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인민문화궁전 언저리 일대에는 무더운 여름날인데도 울긋불긋한 한복차림의 여성들이 우리 일행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더러는 손을 흔들었다.

인민문화궁전 안에 마련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 본회의장에 들어가니까 이미 북측대표와 해외 대표들은 자리를 잡고 엄숙히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민문화궁전 현판
인민문화궁전 현판 ⓒ 박도
그때까지도 남북 양측의 집행부들은 이견을 좁히지 못한 듯, 한 시간 정도는 더 기다린 끝에 마침내 본대회가 열렸다. 긴 기다림의 시간 동안 어느 한 사람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60년을 기다렸는데, 방북 신청을 하고도 일 년을 더 기다렸는데 몇 시간을 못 기다리겠느냐는 마음이 깔려 있었나 보다. 같은 겨레이지만 60년 동안 서로 다른 체제에서 총부리를 맞대고 살았던 사이의 만남이 어찌 그리 순탄만 하겠는가.

그동안 집행부 실무자들의 이 만남을 이루기 위한 그 고충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참고 기다리는 자만이 고기를 낚을 수 있다는 낚시꾼들의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리라.

평양 시민들
평양 시민들 ⓒ 박도
애국의 진한 피로 쓴 글만이

2005. 민족작가대회 표지판
2005. 민족작가대회 표지판 ⓒ 박도
19시 30분, 남북 양측 대표자들이 실무 회담을 마치고 입장하자 본 대회가 시작되었다. 대회장 정면 가운데는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가 걸렸고 그 아래에는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 2005년 7월 20일 평양'이라는 표지판이 걸렸다.

또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을 자주적으로 이룩하자!" "애국애족의 필봉을 높이 들고 6.15 공동선언 실천에 떨쳐나서자!"라는 구호가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쓴 현판이 대회장 좌우에 걸려 있었다.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김병훈 위원장의 개막 연설에 이어 세계 각국에서 온 축하전문 소개에 박수가 터져 나오자 대회장은 금세 달아올랐다. 북한 로두철 내각부총리의 축사가 이어졌다.

"북과 남 해외작가가 유서 깊은 평양에서 민족작가대회가 열리게 된 것을 축하한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선악을 가려주고 가는 길을 밝혀주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한 뒤 "잉크가 아니라 애국의 진한 피로 쓴 글만이 사람들의 심장을 애국의 박동으로 뛰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어 남쪽 대표 백낙청 상임위원장의 축하연설이 이어졌다. "남과 해외 작가들의 60년만의 만남은 참으로 감회가 깊습니다. 오늘의 만남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복원하고 치유하는 장으로 6.15 공동선언 실천과 통일의 새 시대에 이바지하는 만남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라는 말씀으로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이어 남북 해외 작가들이 번갈아가며 등단하여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6.15 민족문학협의회' 결성과 '6.15 통일문학상' 제정을 결의하고 북남해외작가대표가 함께 "오늘의 만남으로 통일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사상 신앙 출신지역을 따지지 말고 굳게 단합하자"라는 등의 공동선언문을 낭독하고 "6.15 공동선언 만세!", "민족작가대회 만세!", "조국통일만세!" 삼창으로 본 대회를 마쳤다.

"통일사업에 보탬이 되는 사람을 환영합니다"

21시 40분, 대회장 바로 옆방에서 환영만찬이 있었다.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에서는 남측대표단 모두에게 일일이 초대장을 주었는데, 내 자리는 14번 밥상이었다. 마련된 음식과 술은 모두 북한산으로 소박하면서도 정성이 깃들었다.

백두산들쭉술, 룡성맥주, 평양소주에 탄산수, 배사이다, 포도주에 낙지깨무침, 오리향구이, 창포랭채, 숭어단즙튀기, 고기다짐구이, 메추리알국 등 이름도 맛도 모두가 순 토종이라서 처음 맛보지만 입에 잘 맞고 보기에도 좋았다. 이미 연길 유경반점에서 느낀 바 있지만 북녘의 음식문화는 우리 고유 전통을 잘 지키고 있었다. 그 맛이 담박하고 고향의 맛처럼 그윽함이 있다.

만찬 환영음악회
만찬 환영음악회 ⓒ 박도

한 밥상에는 여덟 좌석으로 남북 작가와 안내원이 함께 자리를 하였는데, 나의 상대는 민화협 참사인 심기섭씨라고 했다. 몇 마디 나누자 그는 남쪽 정세에도 매우 밝을 뿐 아니라, 정치 역사 경제 사회 전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엘리트였다.

"내가 보니 당신은 크게 될 인물 같소"라고 하자, 그는 미소 지으며 "박 선생은 관상쟁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수십 년간 아이들을 가르쳐왔기에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고 했더니, 그는 싫지 않은 듯 "박 선생이 오늘 제정된 통일문학상 첫 수상자가 되라"고 화답했다. 생면부지의 초면이지만 서로 주고받은 덕담으로 두 사람 사이의 벽을 한결 낮춘 듯했다.

민화협 심기섭 안내원(왼쪽)과 필자
민화협 심기섭 안내원(왼쪽)과 필자 ⓒ 박도
"나는 고향이 남쪽으로 북에 이산가족도 연고자도 없는 사람이라, 막상 이곳에 오고 보니까 차라리 나 대신에 북녘이 고향인 사람이 왔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박 선생, 아닙니다. 우리는 통일사업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오는 것을 더 환영합니다"고 그가 단호히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 고향을 물었다. 그래서 '경상북도 구미'라고 답하자, 많이 들어본 지명이라면서 박 아무개 고향이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그 대답 대신 '허형식 장군'의 고향이라고 하자, 그가 다소 놀라면서 "우리 수령님과 함께 항일을 하다가 돌아가신 허형식 장군이냐?"고 되물었다.

내가 힘주어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겸 제3군장 허형식 장군'이라고 했더니, 그도 그분을 잘 알고 있다면서 "한 고장에서 충신도 역적도 났구만…하기는 한 부모 아래 태어난 형제도 다른 길을 가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허형식 장군의 따님과 아들이 6.25전쟁 직전에 김책 부수상 주선으로 북으로 와서 살고 있는 걸로 아는데 그 뒷이야기를 알아봐 달라고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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