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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대부분 교황이나 황제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황제나 교황조차 한 수 접어야할 존재가 있었으니 다름아닌 성자, 은자들이다.

숲속에 은둔하며 수행을 하는 그들은 사유재산도 어떤 사회적 지위도 없었다. 그러면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 존경을 받았던 그들은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다. 여기서 '금욕'이란 독일어로 '아스케제(Askese)'인데 일반적인 욕망, 특히 성욕을 금하는 뜻과는 달리 본래의 의미는 '단련' '훈련'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은자를 단순히 욕망을 억제하고 이성을 단련시켜 신앙심을 강화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숲 즉, 대우주 속에서 대우주의 힘을 어떤 방법을 통해 몸에 지니게 된 사람으로 이해했다.

중세인의 우주관 - 대우주와 소우주

중세인은 현대인처럼 균질한 시공관념 속에서 살지 않았다. 중세 전통사회는 자신이 살아가는 마을을 넘어선 자연의 공간,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 자연재해를 대우주로 보았다. 이에 비해 마을 속에서 살아가는 질서 잡힌 시공간을 소우주로 생각했다.

다시 말해 자연계의 모든 힘(질병과 죽음, 재해와 운명)을 인간이 겨우 제어할 수 있는 범위내의 시공간이 소우주이고, 그 바깥에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죽음이나 운명 등을 지배하는 대우주가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대우주는 두려움과 존경심의 대상이었고 신은 그 속에서 살고 있었다. 저자인 서양중세사의 정통학자 아베 긴야(阿部謹也·70)가 당시 피차별민의 발생을 대우주와 소우주의 전통적 우주관으로 설명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성(姓)과 직업' 그리고 차별

유럽사람들이 왜, 어느 시기부터 특정 사람들을 차별하기 시작했느냐는 문제를 건너띄고서는 유럽문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저자는 "성(姓)이야 말로 유럽문화의 과거 모습을 드러내는 근거이자 그 사람이 소속된 계층의 문화를 나타낸다"고 강조한다.

슈미트는 대장장이의 후손이고, 베버는 직공일 가능성이 많고, 베이더는 목욕탕집 자손일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이 흥미롭게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도 쓰고 있는 '앙스트만' 이나 '행커'라는 성은 '사형집행인'의 뜻을 지닌다. 당시 사형집행인은 하나의 관직으로 1380년에 성립한 독일법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헨리포드 시의 법서에도 등장한다. 실제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에 의하면 성직자가 처형을 집행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하지만 사형집행인은 13세기 이후 중세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는 직종으로 전락했다.
그 외 경찰의 하수인이랄 수 있는 포리, 묘지기, 탑지기, 방아꾼, 이발사, 목동, 도로청소부, 심지어 예인(피리부는 남자, 약사, 무희) 등도 차별받는 신분으로 떨어졌다.

두가지 우주의 틈새에 선 사람들

그러면 왜 차별을 받았을까. 이들은 대부분 경외의 대상인 죽음과 대지, 불과물에 관련된 직업들이다. 가령 청소부는 소우주(도시, 마을)의 바깥(대우주, 자연)으로 오물을 배출해야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대우주와 소우주의 경계선상에서 움직이는 사람들과 중세 후기 이후의 차별받는 직업들은 한결같이 두 가지 우주의 틈새에 선 부류들이다.

탑지기 역시 소우주에서 대우주를 감시하는, 두가지 우주의 경계선상에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댐을 다루며 강물의 수량을 조절한 방아꾼도 당시 사람들이 보기엔 대우주를 상대로 하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전통사회가 견지하던 대우주와 소우주의 우주관을 무너뜨렸다.
저자는 그리스도교가 두개의 우주를 일원적으로 통합하고 모든 공간을 균질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모든 역사를 구원사로 통일했다고 말한다.

균질한 시공간의 탄생으로 인간은 비로소 자연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정복의 대상, 착취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두려움의 대상인 대우주에 접하는 사람들을 차별했다는 것이다.

황제·교황도 한 수 접은 '은자'의 삶

원래 '중세'라는 말은 유럽쪽에서 유래된 말이었다. 그러면 우리에게 중세시대의 유럽은 여태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흑사병, 십자군, 백년전쟁, 신성로마제국 등 일련의 사건 위주로 단순 암기하거나 문명 이전의 전설과 판타지로 가공된 무대로 여기는 중세 유럽은 아직도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다.

이 책은 어쩌면 숱한 오해와 함께 그간 '암흑의 시대'로 알려져왔던 '중세유럽 다시보기'다. 르네상스 시대의 빛에 가려진 채 천 년 세월의 제 모습을 내보인 적이 없었던 중세유럽. 인문주의 자들과 근대 학자들이 중세 시대를 규정해 버린 가혹한 비판때문에 늘 그늘속에 머물러 왔던 중세유럽을 저자는 대우주와 소우주의 관념을 바탕으로 차분하게 해설하고 있다.

여기에 이 시대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200여컷에 달하는 그림 또한 퍼즐을 맞추듯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중세사회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차라리 아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아베 긴야 지음/양억관 옮김/한길사/2만2000원


게르마니아

타키투스 지음,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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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대자(大者)는 그의 어린마음을 잃지않는 者이다' 프리랜서를 꿈꾸며 12년 동안 걸었던 언론노동자의 길. 앞으로도 변치않을 꿈, 자유로운 영혼...불혹 즈음 제2인생을 위한 방점을 찍고 제주땅에서 느릿~느릿~~. 하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세 아이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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