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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밥'이란 것은 계란 껍질이나 대나무 안에다 쌀을 넣고 만든 밥을 말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귀한 손님들이 오시면 계란찜을 해서 대접을 했습니다. 계란 프라이를 하면 쉽겠지만 계란 자체가 귀하니 계란 하나를 물에 풀고 양파나 당근을 함께 넣어 양을 늘린 다음 밥솥에 여러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계란찜을 했습니다.
계란껍질과 대나무로 만드는 '꼼밥'
이 때 사용한 계란껍질을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 꼼밥을 해 먹었습니다. 주로 부모님께서 계시지 않는 시간에 쌀독에서 몰래 쌀을 한 주먹 퍼낸 다음 물에 불린 후 조심스럽게 계란껍질 안에다 불린 쌀을 집어넣고 불에 구우면 고소한 꼼밥이 되는 것입니다.
부엌 아궁이 불에 묻은 다음 정신없이 놀다 태워 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건 정말 맛있습니다. 꼼밥이 맛이 있는 이유는 쌀밥을 먹기 힘든 시절에 쌀로 밥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계란 껍질의 고소한 향내가 배어 있는 때문입니다.
계란 껍질을 구하기가 힘이 들면 대나무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물론 이 방법은 나이가 들어서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었을 때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대나무 밭에 가서 굵은 대나무를 잘라 여기에다 불린 쌀을 넣고 아궁이에 가지런히 세운 다음 불을 때서 열을 가합니다. 이렇게 해서 만든 꼼밥은 계란으로 만든 것과는 향이 조금 다른데, 요즘 유행하는 대나무 삼계탕처럼 담백한 맛이 납니다.
여행 중에 우연히 발견한 옛 추억
이렇게 심심하면 만들어 먹던 꼼밥을 고등학생이 된 이후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최근 꼼밥을 만들어 먹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기 때문에 거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꼼밥을 기억 속에서 찾아낸 것은 얼마 전 말레이시아의 겐팅하일랜드로 여행을 가면서 꼼밥과 비슷한 광경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겐팅 하일랜드는 말 그대로 말레이시아의 유명한 고원 휴양지입니다. 해발 1300m의 산꼭대기에 어떻게 이런 휴양지를 건설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테마파크와 카지노, 호텔, 골프장 등이 조성되어 있는 곳입니다.
차를 타고 그 곳으로 올라가는 중간 중간에 대나무를 불에 굽는 모습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천연암염(岩鹽)으로 죽염을 만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짜 죽염 때문에 요즘 별로 인기가 없지만 만드는 걸 직접 봤으니 가짜일 염려는 없을 것 같아 하나를 샀더니 칼로 반으로 쪼개 주었는데 속에는 소금이 아니라 밥이 들어 있었습니다. 차가 지나다니는 위태한 도로 옆에서 대나무 밥을 먹으면서 정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향내를 기억해내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집에서 가끔 만들어 먹게 되었습니다. 꼼밥을 만드는 것은 재미가 있지만 그리 힘든 일도 아닙니다. 우선 물에 불린 쌀을 계란 껍질에 넣고 약한 불로 서서히 가열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기 때문에 애들도 무척 재미있어 합니다.
이 때의 주의 사항은 쌀을 계란에 꽉 넣으면 쌀이 부풀면서 계란 껍질이 깨지기 때문에 쌀을 꽉 차지 않게 넣은 다음 풀잎이나 물에 적신 두꺼운 종이로 뚜껑을 해야 합니다. 또 불을 가열할 때도 갑자기 강한 불을 가하지 말고 약한 불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강한 불을 가해야 합니다.
대대로 전해질 대나무 꼼밥 만들기
대나무 꼼밥도 마찬가지로 만들지만 시골에 사시는 분이 아니면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 근처에는 대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대나무는 위를 잘라 버리면 죽어 버리는데 윗둥을 자르고 남은 대나무를 잘라다 대나무 꼼밥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부엌 아궁이가 없으니 가스렌지를 이용하여 구웠지만 가끔은 공터에 불을 지펴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만든 대나무 꼼밥도 계란과는 또 다른 향내를 가지고 있었지만 기억 속의 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걸 먹고 있으면 주요 무형문화재나 된 듯한 우쭐함도 생깁니다. 이제부터는 만드는 방법을 잘 기록하고 또 개선하여 우리 집에서 대대로 전달되는 무형의 가보로 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