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는 선거에 이기고 정당을 후원하라고 위임장을 받은 게 아니다. 기자가 정치를 하려고 하면 스스로 패자가 된다. 저널리스트 최악의 적은 정치인과 호형호제하며 허물없이 지내는 것이다. 많은 정치인과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냈지만 저널리스트로서 그러지는 않았다. 저널리스트는 정치인과 영원한 우정을 나눌 수 없다."
세계적인 저널리스트인 <슈피겔>지의 루돌프 아우크슈타인이 정계와 언론계의 관계에 대해 남긴 이 말은 작금의 우리, 특히 국내 언론계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올 여름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고온 현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 기업의 불법 정치 자금 문제와 함께 불거진 소위 'X파일' 도청 사건으로 말미암아 정경 유착이라는 해묵은 화두를 넘어, 정(政) 경(經) 언(言)이 함께 하는 낯 뜨거운 화두로써 대한민국을 몸살로 들끓게 하고 있다.
바로 이 시점에 출간된 루돌프 아우크슈타인의 <권력과 언론>은 참다운 언론과 진정한 저널리스트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시의 적절한 작품이다.
루돌프 아우크슈타인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대포'라 불리는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창간인이자, 발행인으로서 독일 언론사를 넘어 '세계 언론 자유의 영웅'이라 불리우는 세계적인 저널리스트이다. 바로 이 <권력과 언론>은 그가 2002년 타계하기까지 <슈피겔>지에 발표해 온 시사평론, 저명인사와의 대담, 그리고 강연 등이 담겨 있다.
서독 초대 총리인 아데나워를 비롯하여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철학자 야스퍼스와 하이데거, 소설가인 솔제니친과 귄터 그라스 등 유명인사와의 대담을 비롯하여 '서독의 민주주의는 이것을 통해 시작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과 함께 세계 언론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 받는 '슈피겔 사건'(*)과 함께 대기업의 뇌물 스캔들, 불법 도청 사건, 그리고 타계 2달 전에 발표했던 미국의 이라크 정책에 관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탐사보도와 비리 폭로 기사 등 온갖 부당한 권력과 자본의 힘에 맞서 싸운 세계 언론계의 영웅 루돌프 아우크슈타인의 55년 언론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성역 없는 보도와 가차없는 비판으로 권력과 자본의 부정부패를 사실 그대로 파헤치는데 앞장섰던 루돌프 아우크슈타인과 그의 <슈피겔>은 긍정적 저널리즘을 모순으로 삼았다. 즉, 절대 특정 정파를 지지하지 않고 비판할 일이 있으면 여 야 정부을 막론하고 가차없는 비평을 서슴지 않았다. 슈피겔이 쓴 1000여 편의 시사평론 제목 중 하나였던 '있는 그대로 써라!'에서 알 수 있듯이 바로 이러한 점이 우리 언론계에게 있어서 두고두고 귀감이 될 부분이다.
물론 역자 안병익씨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독일과 우리나라의 언론환경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일제와 군사독재 시절이라는 크나 큰 탄압 속에도 꿋꿋이 저항하던 - 때론 협력하는 영욕의 역사를 가지고 있던 - 우리의 언론계에 있어서 결코 어렵거나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정 권력이나 세력에 치우치거나 규합하지 않는, 이 사회의 균형 잡힌 조정자로서의 시각으로 힘있는 정(政) 경(經) 앞에서 보여줄 불편부당은 물론이거니와 온갖 부조리를 감시하고 비판 견제하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일조하는 자세를 갖추었을 때 비로소 우리 언론이 펼쳐 보일 수 있는 가장 절대적이고 이상적인 헤게모니가 이행될 수 있지 않을까?
[자연과학] <자연의 종말> – 빌 멕키벤
무분별한 살충제의 사용으로 점점 황폐해져 가는 생태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경종을 올렸던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기억하는가? 그와 더불어 출간 당시 <침묵의 봄> 못지않게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제는 환경분야의 교양필독서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도서가 있으니 이 책이 바로 빌 맥키벤의 <자연의 종말>이다.
<자연의 종말>은 인간이 만든 지구 온난화가 불러올 자연의 종말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책으로 전문적이고 학술적이지는 않지만 관련 분야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칼럼리스트의 글답게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필치로 담담히 그려나가고 있다.
얼마 전 방한한 영국 극지연구소의 로이드 펙 교수가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지금의 지구 온난화가 계속된다면 남극의 생물들이 멸종할 수 있다"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자연의 파괴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스스로 부족함을 메운다'라는 유일한 희망마저도 저버리고 있는 우리의 이 수수방관적인 태도가 이 책을 통해 새삼 바뀔 수 있는 계가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문 / 1만3900원)
[역사] <태양의 제국, 잉카의 마지막 운명> - 마이클 우드
역사의 태동이래 발생했던 수많은 문명들은 외형적인 도시문명의 보편적인 특징 외에 문화, 종교, 정신적인 측면에서 판이했던 만큼 교류와 충돌을 반복하며 역사를 이루어 왔다.
그럼 이들 각각의 고대 문명들은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교류하고 충돌을 해 왔으며, 그렇게 해서 이뤄냈던 그들의 문명들은 얼마나 웅대하고 찬란했을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저자인 마이클 우드와 BBC 다큐멘터리 팀이 초기 고대 문명의 발상지, 알렉산드로스의 원정로, 트로이 전쟁의 경로 등을 직접 답사하면서 역사와 전설 속에 묻혀 있던 고대 문명의 흔적들에 숨결을 불러일으킨 데에 이어 BBC 고대문명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완결편인 이번 4번째 작품에서는 16세기 에스파냐 원정대의 남아메리카 대륙 정복기를 되짚어 보고 있다.
아마존에서 티티카카 호수까지, 멕시코 북부 사막지대에서 마추픽추 고원지대로 이어지는 에스파냐 모험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들과 남아메리카 문명인 아스테카와 잉카 제국과의 격돌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는 고대 문명 탐험기이다. (랜덤하우스중앙 / 2만8천원)
[경영] < iCon 스티브 잡스 >– 제프리 영, 윌리엄 사이먼
미국 경영자들이 뽑은 가장 창의적인 CEO 스티브 잡스. 그는 실리콘 밸리와 할리우드를 차례로 장악한 집념 어린 천재이자, 오직 혁신 하나만으로 세상을 뒤바꿔버린 하이테크 시대의 독보적인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출간된 그의 평전 < iCon 스티브 잡스 >는 창의적인 천재이자, 오만한 독선가로도 불리고 있는 만큼이나 성공과 추락을 거듭했던 그의 인생을 통해 오늘날의 그가 있기까지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흥미진진한 인생 드라마를 펼쳐 보이고 있다.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인 애플II와 컴퓨터 역사상 최대의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GUI, 즉 아이콘 클릭만으로 프로그램 실행을 가능케 한 매킨토시를 개발했으나 오히려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의 해고, 조지 루카스에게 사들인 픽사를 통해 제작한 컴퓨터 그래픽 영화 <토이 스토리> 등의 대성공, 그 와중에도 이룩했던 CD-ROM 장착 PC 아이맥과 최고의 MP3 아이포드의 성공 등 그의 인생은 극과 극을 달린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올해 명문 스텐포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스티브 잡스가 남긴 연설의 마지막 문장은 그의 인생관을 한마디로 축약한, 현재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충고가 없을 듯하다. (민음사 / 2만원)
[문학] <신데렐라 맨> – 제레미 샤프
전 국민이 시름에 빠져있던 IMF 시절, 미국의 메이저리그를 주름잡으며 우리에게 환호와 기쁨을 안겨줌과 동시에 이젠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갖게 해주었던 박찬호 선수.
그러한 박찬호 선수가 얼마 전 자신의 홈페이지에 러셀 크로 주연의 <신데렐라 맨>이라는 이 작품의 동명영화를 감명 깊게 보았다면서 감상문을 올려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 작품은 1930년 대 미국의 대공황시절, 잘 나가던 권투선수에서 팔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은퇴하여 막노동으로 연명하다가 다시 재기, 결국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까지 등극하여 힘들었던 미국 노동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줬던 제임스 브레독이란 선수의 감동적인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바로 우리의 '신데렐라 맨' 박찬호 선수의 미국판 이야기인 것이다.
<씨비스킷> <퍼펙트 마일>과 같은 감동적인 논픽션의 명맥을 잇는 작품으로 스포츠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그 무엇보다도 불가능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가슴 뭉클하게 담아내고 있으며, 국내 영화 개봉은 추석 시즌인 9월 16일 예정이다. (생각의나무 / 1만2천원)
[역사] <카운트다운 히로시마> – 스티븐 워커
지금은 2005년 8월 6일 토요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0년 전 오늘은 바로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어 8만여 명의 희생자를 남기고 2차 세계대전이 끝맺을 수 있었던 날이다.
이 책 <카운트다운 히로시마>는 2003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히로시마: 세계를 뒤흔든 하루>를 통해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BBC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 스티븐 워커의 작품으로 첫 폭발 실험에서 실제 원폭이 투하되기까지의 3주간 벌어졌던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원자 폭탄 제작을 책임졌던 그로브스와 오펜 하이머, 흔들리는 B29의 속에서 원자폭탄을 조립했던 폭격수, 스탈린을 따돌리고 실제 투하를 결정했던 처칠과 트루먼의 인터뷰와 히로시마 피폭 생존자들의 체험담에 이르기까지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모든 것을 치밀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북한 핵개발을 둘러싸고 6자 회담이 다시 3주 뒤로 연기된 지금, 60년 전 이날의 아픔이 남긴 교훈과 의미를 통해 부디 좋은 방향으로 결정되기 만을 바라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황금가지 / 1만8천원)
[에세이] <나의 인터넷 구걸 성공기> – 카린 보스낙
이유야 어찌했던 간에 만일 당신이 3천만원에 가까운 카드 빚을 진 상태에서 실직마저 하게 되고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자포자기 심정으로 파산신고를 할 것인가? 아님 어느 역 대합실에서 새 삶을 꾸려갈 것인가?
이 책의 주인공 카린은 정말이지 깜찍하고도 당돌한 생각을 했다. 바로 '카린 구하기'라는 자신의 홈페이지(www.savekaryn.com)를 만들어 왜 자신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부끄러운 자신의 생활을 낱낱이 고백하고 반성하면서 네티즌들에게 구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매일 자신의 일상을 소개하고 어떻게 돈을 갚아나가고 있는지 솔직 담백하게 풀어냄으로써 호기심으로 시작한 그녀의 일상 엿보기는 어느새 연민과 동정으로 바뀌었고 그녀의 홈페이지는 입소문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서서히 그들로부터 돈이 입금되기 시작했다.
빚? 물론 다 갚았다. 게다가 이 내용은 소설이 아닌, 소니사와 영화판권까지 계약한 카린의 실제 이야기이다. 아직까지 그녀의 사이트는 운영되고 있으니 직접 한번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재인 / 1만원)
덧붙이는 글 | (*)슈피겔 사건 : 1962년 10월 서독 검 경찰이 <슈피겔>의 사무실을 급습 4주간 편집국을 점거하고 각종 문건을 압수함과 동시에 루돌프 아우크슈타인을 비롯한 <슈피겔>의 기자들을 체포, 투옥하였다.
이 당시 <슈피겔>은 서독 국방부의 스캔들을 잇따라 폭로, 당시 슈트라우스 국방장관의 눈에 가시였던 존재로써 <슈피겔>이 서독군의 방어 태세를 다룬 기사를 발표하자마자, 곧바로 국가 기밀을 누설했다는 반역혐의로 아우크슈타인을 103일간 미결감에 투옥시켰다.
그러자 <슈피겔>의 독자 수천 명의 가두시위와 함께 국외에서도 서독 정부의 언론 탄압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했고, 이로 말미암아 당시 아데나워 총리와 슈트라우스 국방장관이 사임하고 아우크슈타인을 비롯한 <슈피겔>의 기자들은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이 사건으로 '서독의 민주주의는 이 슈피겔 사건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이 사건은 세계 언론사에 있어서 큰 획을 그은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