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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사진을 찍으시는 자리에 유일한 손자를 대동하신 할아버지, 할머니. 당신 젯상에 물 떠놓을 손주가 그렇게 예쁘셨던가?
영정사진을 찍으시는 자리에 유일한 손자를 대동하신 할아버지, 할머니. 당신 젯상에 물 떠놓을 손주가 그렇게 예쁘셨던가? ⓒ 조명자

"에헤이여~~~ 양덕맹산~ 흐르는 물~은~"

우리 할아버지가 제일 즐겨 부르셨던 '양산도' 지금도 이 가락을 들으면 까닭 없이 눈물이 핑 돈다. 부지런한 농사꾼이셨던 우리 할아버지는 평생을 논밭전지와 함께 사셨기에 애초부터 잡기와는 거리가 먼 분이셨다.

165cm나 되셨을까? 자그마한 체구에 다부진 표정, 농사는 물론 집안팎을 챙기시는데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꼼꼼하고 깔끔한 성격이라 큰댁, 작은댁 통틀어 제일 무서운 할아버지로 통하기도 했던 분이다.

술주정 끝을 알리던 경기민요 가락

그런 할아버지에게도 천적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피땀 흘려 마련해 놓은 논밭 슬금슬금 잡혀 먹은 뒤 돈 떨어질 때까지 집에는 얼씬도 않았던 우리 아버지. 애물단지 장남 앞에서는 대책이 없으셨던 할아버지는 그 울화를 술로 푸셨다.

약주를 잡수시면 온 동네를 발칵 뒤집을 정도로 주정이 심하셨던 우리 할아버지. 술 취한 할아버지가 무서워 할머니만 내버려 두고 온 식구가 너구리 굴 속에 숨듯 집안 여기저기 숨 죽이며 틀어박혔던 추억이 흑백사진의 한 장면처럼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할아버지의 주정이 끝난다는 청신호, 그것은 바로 경기민요의 가락이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지친 할아버지가 누워서 부르시던 경기민요. "에헤이여~~" 처음 곡은 여지없이 양산도였다. 그리고는 '태평가'로 넘어갔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부려서 무엇하나. 인생 일장 춘몽인데 아니나 노지는 못허리라. 니나노~~~닐니리야 닐니리야 니나노. 얼~싸 좋아 얼씨구나 좋다…."

할아버지 무서워 바들바들 떨고 있던 어린 우리들에게 할아버지의 경기민요는 복음성가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약주를 많이 드셔도 우리 할아버지의 목청은 쉬거나 꺾이는 법이 없었다. 청아하면서도 구슬픈 목소리, 할아버지는 고음 부분도 부드럽게 슬쩍 넘기시는 탁월한 목청을 가진 분이셨다.

조카며느리들까지 주눅 들게 하셨던 무서운 할아버지셨는데도 유달리 맏손녀인 내게는 한없이 관대하셨다. 할아버지 앞에서 애교 한번 떨어본 적이 없는 무뚝뚝한 손녀였는데도 맏손녀에 대한 믿음은 변함이 없었다. 조씨, 유씨들이 모여 사는 씨족마을이었던 우리 동네는 좁은 만큼 말도 많은 동네였다.

맏손녀 시집가는 거 보고 돌아가신다더니...

누구네 자식이 어쨌다더라 하면 삽시간에 수군수군 난리가 아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좁은 시골 구석에 과년한 손녀딸이 시집도 안 가고 말썽만 피웠는데도 우리 할아버지는 한마디 야단도 안 치셨다.

집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공장에서 노조를 한다고 난리를 치고, 경찰서 형사들이 쫓아다니는 굿판을 벌려도 할아버지는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오히려 공장에서 장기농성을 벌이는 손녀딸이 걱정스러워 담요 하나 옆구리에 끼고 수위실 앞에서 나를 찾으셨다.

"이놈아, 차거운 공구리 바닥에서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누. 단단히 덮고 자거라."

콘크리트를 꼭 '공구리'라 부르셨던 우리 할아버지가 슬그머니 건네주고 가시던 담요. 그 담요를 건네주고 돌아서시는 할아버지 뒷모습이 내게는 눈물이었다.

"맏손녀 시집가는 거 보고 죽는 게 원이다"고 하시던 우리 할아버지 소원을 끝내 들어드리지 못했다. 3년 동안 소화제만 잡숫다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으신 할아버지. 칠남매 자식 놔두고 할아버지 병원 나들이 보호자는 내 몫이었다.

"길어야 6개월"이라는 주치의의 판정에 망연자실해 있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아무 것도 눈치 못 채신 듯 "괜히 죽지도 않으면서 돈만 축낸다"고 미안해 하셨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내 손을 잡으시며 한탄처럼 한 말씀하셨다.

"이놈아, 네가 사내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그러면 집구석이 이 지경이 안 되었을 텐데…."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어린 시절, 할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줄기차게 들었던 경기민요의 묘미를 그때는 그렇게 좋은 것인 줄 미처 몰랐었다. 그냥 할아버지가 약주 취하시면 으레 부르는 그런 가락 정도로만 이해했다. 할아버지 목청이 얼마나 좋았는가도 그때는 몰랐었다. 아니 그 노래의 제목을 안 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경기민요를 듣다 보니 우리 할아버지가 얼마나 명창이셨던가에 새삼 놀라게 된다. 구슬프게 꺾어지는 '에헤이여~'의 경기민요 가락이 청아하면서도 얼마나 부드러운 소린가를 느끼게 된 것도 요즘에서다. 쌓이고 쌓인 한을 마음껏 풀어내다 체념한 뒤끝에 지르는 소리. 경기민요는 그래서 끈적끈적한 찌꺼기가 없는 소리다.

할아버지의 좋은 목청은 왜 물려받지 못했을까?

할아버지의 자손 칠남매, 그 아래 스물 하나의 손주새끼들까지 우리 할아버지의 그 좋은 목청을 이어받은 후손이 별로 없다. 경기민요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들어도 따라 부르기는 쉽지 않으니 할아버지가 그토록 아끼시던 맏손녀였는데도 그 좋은 유전자는 물려주지 않으신 것 같다.

오늘도 할아버지가 그리워 경기민요 한 자락을 흥얼거리고 있다. 추근추근 빗소리에 오가는 인적 없으니 목청과 상관없이 마음껏 소리 질러도 뭐라 할 사람이 없겠다 그리 좋을 수 없다.

"아니~~ 아니 노지는 못허리라. 기다리다 못하여서 잠이 잠깐 들었더니
새벽별 찬바람에 풍지가 펄렁 날 속였네. 행여나 임이 왔나 창문 열고 내다보니
임은 정녕 간곳 없고 만월조차 왜 밝았나~"


가락과 꺾임이 엉망인 손녀딸이 내지르는 소리를 듣고 할아버지가 뭐라실까?

"허허, 그 놈 참" 빙긋 웃으시는 우리 할아버지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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