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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이해영씨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이해영씨 ⓒ 이동환
- 우선 신상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
“98년도에 남한으로 왔다. 올해로 마흔 두 살이다. 남한 여성과 결혼해서 아들과 딸, 그렇게 둘을 두었다. 현재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 탈북자동지회가 하는 일을 소개해 달라.
“크게는 ‘통일 앞당기기’다. 실제로 통일이 되면 누가 남과 북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겠는가? 남과 북, 양쪽을 모두 알고 있으며 양쪽에 가족관계와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탈북자들이 주춧돌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미래를 대비해 준비하고 있다. 또 한 가지, 현실적으로는 탈북자들의 취업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사실 그게 제일 어렵고 급한 일이다.”

- 탈북자들의 취업을 돕는 일이 왜 어려운가?
“탈북자라면 일단 외면부터 한다. 여성의 경우 식당 같은데 취직할 때 조선족 동포라고 한다. 오죽하면 그러겠나? 탈북자라고 밝히면 써주지도 않는다. 슬프다. 오직 자유가 그리워, 살기 위해 이남으로 왔는데 같은 동포끼리 이런 대접을 받으면 참 서럽다.”

- 일부 탈북자들이 문제를 일으킨 경우도 있고, 언론에서 부각되다 보니 그런 것 아닌가?
“억장이 무너진다. 현재 이남에 정착한 탈북자 수가 7000여 명이다. 몇 사람 그랬다고 모두 색안경 끼고 보는 건 너무 하지 않은가? 대다수 탈북자들은 대한민국에 뿌리내리기 위해 목숨 걸다시피 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통일이 될 때를 대비해 한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산다. 이북에 있는 가족에게 떳떳하고, 이남에서 도와주신 분들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고 싶다.”

- 당국에서 탈북자들 취업을 알선하고 있지 않나?
“너무 형식적이다. 이남에 처음 오면 한 삼 개월은 ‘하나원’이라는 곳에서 교육을 한다. 그리고 거처할 곳과 직장을 연결해주는데 당국에서 처음 알선한 직장에서 버티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생각해보라. 남한 사회가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기도 전에 대충 직장을 정해주니 적응하겠나?”

- 탈북자들이 생각하는 좋은 방안이라도 있나?
“탈북자 초기교육이 좀더 현실적이고 충실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 물론 직접 겪지 않고 교육만으로 모든 것을 배울 수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남한을 알게끔 가르쳐야 한다. 스스로 어떻게 직장을 구하는지, 그런 방법까지도 교육한 다음 사회에 내보내야 한다. 한 삼 년, 스스로 적응하도록 한 다음에 그때까지도 온전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에 한해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된 직장을 딱 한 번, 알선해줬으면 한다.”

- 화제를 바꿔 본론으로 들어가자. 기자도 실향민 가족으로서 늘 통일을 염원한다. 항상 그 시기가 궁금한데 언제쯤 통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언제쯤 통일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은 너무 막연하다. 그걸 누가 알 수 있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한 통일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지금 노무현 정부까지 북한 정권에 대해 무조건적인 포용정책을 펴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 그렇다고 예전처럼 무조건 적대시하는 정책은 문제가 더 크지 않나?
“핵 문제를 얘기하는 것 같은데 나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생화학무기가 더 걱정이다. 그것 때문에 지금 김정일 정권에 울며 겨자 먹기로 투자하는가? 제발 전쟁은 일으키지 말아 달라고? 한 가지 묻자. 김정일이 마음먹기만 하면 대한민국이 불바다가 되는가? 그 정도로 대한민국 국가 방어능력이 영 엉망인가? 지금 북한을 돕자고 이것저것 막 가져다 주는데 죽어가는 사람(북정권)에게 수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 그렇다면 북한을 아예 돕지 말자는 얘긴가?
“아니다. 굶어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돕자는데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나? 더구나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고통 받고 있는 가족이 있다. 문제는 어떤 방법도 북한 동포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로채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김정일 정권의 수명만 연장시켜 줄 뿐이다. 국제단체에서 사람들을 파견해 투명하게 배분하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100% 투명하게 하라면 김정일이 아마 거부할 것이다.”

- 북한 정권이 무너진다면 어떤 식으로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보나?
“북한 정권이 무너지더라도 휴전선은 일정 기간 유지되어야 한다. 북한 사람들은 절대 한국에 못 내려오게 하고 한국의 투자가나 탈북자를 포함해 북한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제한 없이 방문하게 하면서 천천히 통일 충격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후유증이 없다. 십 년이 걸릴지 얼마가 더 걸릴지 모르지만 그렇게 북한 수준을 남한의 80% 정도까지 끌어올린 다음 완전개방 형식으로 통일되어야 한다.”

- 오늘 한 시간 가량, 녹음까지 하면서 인터뷰를 했는데 사실을 말하자면 모두 기사로 올리지는 못한다. 그래도 약속대로, 올린 이야기만큼은 빼지도 더하지도 않겠다.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제발 탈북자에 대한 인식을 좀 바꾸어 주셨으면 좋겠다. 차별하지 말고 조금만 더 따뜻한 시각으로 봐 달라. 취직자리 있으면 꺼리지 말고 소개해주시기를 진실로 바란다. 탈북자들은 통일을 대비한 중요자원이다. 남과 북을 한꺼번에 이을 수 있는 제대로 된 다리다. 여러분이 조금만 손을 내밀어주시면 좋겠다.”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왔습니다 - 강원철씨

북한인권시민연합 강원철씨
북한인권시민연합 강원철씨 ⓒ 강원철
- 신상에 대한 이야기부터 먼저 하자면?
“스물 네 살이다. 1998년에 중국으로 탈북 했다가 1999년 여름, 더 이상 중국에 머물 수 없다고 생각해 상해 한국 영사관을 찾아갔었다. 안받아준다고 하기에 그 길로 한인교회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들어갔다가 주위의 신고로 공안에게 잡혀 북송됐다.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긴 끝에 2001년 다시 탈북했다. 하늘이 도와 한국에 올 수 있었고 지금 한양대학교 2학년(경영학)에 재학 중이다.”

- ‘북한인권시민연합’이라는 단체에 자원봉사자로 등록되었던데?
“한국에 와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직은 학생이라 큰일은 못한다. 그러나 내가 받은 도움 그 이상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서 하는 일이다. 다른 탈북자들도 대부분 똑같은 생각이다.”

- 지방에 있다고 해서 어쩔 수없이 전화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지금 전라남도 완도군 앞 노화도라는 작은 섬에서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섬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알려주는 보름간의 ‘워크캠프봉사활동’이다.”

- 한국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또래 학생들의 생각이 때로 너무 편향되어 있어서 그들과 얘기할 때 힘들다. 북한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국정원의 압력으로 탈북자들이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증언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다. 대학생들이 냉혹한 북한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라고 북한 동포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주기 희망한다.”

- 통일문제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통일보다는 북한주민들과 통합하기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 언젠가 통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통일이 되어도 무조건 휴전선을 개방하는 것은 반대다. 탈북자들과 북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만 자유롭게 왕래하게 하고 북한 주민들은 절대로 한국에 내려올 수 없게 해야 한다. 그런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민족이 다시 하나 되는 완전한 통일을 이루려면 말이다.”

- 전화라 너무 아쉽다. 끝으로 <오마이뉴스>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외국인 노동자 보듯 우리 탈북자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부의 잘못을 전체의 잘못으로 보지 말아 달라. 탈북자들은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대한민국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저 따뜻한 이웃처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해줘도 좋다. 통일논의다 뭐다, 대북포용정책이다 뭐다, 그 전에 먼저 북한 동포들의 비참한 삶과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의 인권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생각할수록 슬프다.”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기자는 착잡한 심정이다. 광복 60주년을 맞이해 잔치 분위기도 좋지만 우리가 무관심하게 넘어가는 것들은 없는지. 꿈에서조차 통일을 염원하는 탈북자들은 물론 실향민들과 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돕는 사람들을 보면서 통일에 대한 희망, 그 끈을 놓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우리 가족과 8.15' 기사 공모글 - 나는 이럴 때, 통일의 희망을 본다

☞ 그냥 있는 그대로, 그들 생각 그대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이웃 보듯 소박하게 말입니다. 세상 어느 나라에 우리만큼 진한 핏줄이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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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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