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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사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한총련 정치수배자들
민주노동당사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한총련 정치수배자들 ⓒ 박준영
온 민족의 잔치,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을 앞두고 북녘과 해외동포들을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맞이하기 위해 전국 어디를 가나 분주한 모습이다. 더운 날씨로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도 8·15대축전에서 환하게 웃을 북녘동포들만 생각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신명이 절로 난다.

이렇듯 뜨거운 8월을 통일한마당 준비로 더 뜨겁게 보내고 있는 사람들과 달리, 비장함을 품고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노동당사에서 3일째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그들은 한총련 정치수배 대학생들이다. 남녘을 방문하는 북녘동포들과 그들을 성대하게 환영하겠다며 정부와 민간이 온 힘을 집중하고 있는 마당에 국가보안법으로 몇 년씩 수배생활으로 해야 하는 젊은 대학생들은 곡기를 끊고 국가보안법과의 마지막 혈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하루가 달리 전진하는 남북관계를 보고, 평양에 가서 한총련 깃발을 흔드는 소위 '이적단체' 대표인 한총련 의장을 보고 감격과 함께 그들은 등 뒤에서 칼을 꽂는 국가보안법을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어 그나마 안전했던 '학교담장'을 허물고 민주노동당사에 자리를 잡고 무기한 단식으로 국가보안법의 잔명을 끊기로 결심한 것이다.

수년간의 수배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이지만 '자신들이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피해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단식을 결행하고 있는 6명의 한총련 정치수배자들을 만났다.

"신경쓰면 몇 시간씩 정신 잃지만 국보법과의 싸움 멈출 수 없어"

김현주(수배 3년, 00학번) 2003년 고려대학교(서창) 총학생회장

김현주씨
김현주씨 ⓒ 박준영
김현주씨는 이제 25살이다. 치장도 하고 싶고 이것저것 관심사가 많아 수다도 떨고 싶은 우리나라 여느 25살 아가씨다. 하지만 그는 불행하게도 3년째 유행하는 옷을 사러 옷집에 가본 적도 없다. 수배가 끝나면 가장 먼저 대중목욕탕에 가보고 싶을 정도로 그는 '갇힌 사람'으로 살아야 했다.

더군다나 건강마저 심각한 지경이다. 발뻗고 편한 잠을 자본 적이 없는 그에겐 학교에 있는 여학생휴게실이 숙소였으며 휴게실에 사람이 많을 때는 스트로폼 한 장 깔고 바닥에서 자거나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위가 식도 쪽으로 쏠려 먹기만 하면 심각한 구토증세로 고생한다. 더욱 위험한 것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밤을 새면 몇 시간씩 졸도를 해 정신을 잃곤 한다. 한번은 연락이 두절돼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아무데서나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김현주씨는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말을 아꼈다. 수배자라면 누구나 겪는 고통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기에 '그 정도면 열심히 했다'며 그만 하라는 친구들의 걱정섞인 말에도 그는 수배생활을 그만두지 않는다.

"처음 총학생회장 출마할 때도 수배 같은 건 염두에도 없었어요. 새학생운동을 우리 학교에서 먼저 일궈보자는 결심과 우리 학우들이 사회에 나가서 좀 더 잘 살 수 있도록 좋은 세상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그런 마음도 지금도 변함없어요."

"글쎄요. 어려움이라…. 부모님을 편히 만나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었는데요."

수배 3년간 건강악화도, 경찰들의 미행도 그를 힘들게 하지는 못했다. 그저 부모라는 이유로 경찰들의 협박과 도청을 감내해야 했던 부모님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을 뿐이다.

어렵사리 전화를 할 때도 혹시 도청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걱정에 "얘야. 아빠가 좀 있다 다른 전화로 다시 거마"라며 전화를 급히 끊으신 적도 한두번이 아니며, 새벽 일찍 차를 몰고 학교에 오셔서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동안만 얼굴을 마주해야 했던 가족이었다.

가족 이야기를 하자 어느새 눈물이 맺히는 김현주씨. 그래도 이제는 자신을 믿는다며 힘든 내색을 안 하시는 부모님을 뵈면 기운이 부쩍부쩍 난다.

그렇지만 그는 안다. 여전히 부모님이 겪고 있을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그 무게를 느낄 때마다 그의 결심은 단단해진다. 총학생회장 출마 당시 자신의 결심을 지지해주던 과 학생회장들과 먼저 수배를 겪으며 모범적 삶을 보여준 선배들 그리고 자신을 믿어주는 가족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누구보다 대차게 수배생활을 이겨가고 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한 마음을 굳게 지키고 싶어요. 그리고 수배가 끝나면 사회운동을 계속 하고 싶어요. 이제는 학교안에서가 아니라 진짜 발로 뛰어다니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겁니다."

"한총련의 정당성, 기어이 보여줄 것"

이현민씨
이현민씨 ⓒ 박준영
이현민(수배 3년, 96학번) 2003년 연세대(원주) 총학생회장

"총학생회장을 하면 수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히 했죠. 하지만 수배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학우들을 위해, 사회를 위해 내가 일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죠."

이현민씨는 총학생회장에 출마하면서부터 부딪히는 문제들을 정면돌파했다. 상대후보로 나온 비운동권측에서 '한총련 이적규정' 문제를 들고 공격해 오자 그는 학우들을 직접 만나면서 '영상처럼 한총련은 이적단체가 아니라는 것을 차근차근 설명'했고 결국 큰 표 차이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에도 그는 한총련 활동에 대해서도 정식회의에 부치고 학우들과 논의해 결정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어느 한총련 수배자에게서나 마찬가지지만 그에게서도 강한 자신감과 당당함이 느껴졌다. 자신의 사상과 의지가 누군가 재단하고 처벌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을뿐더러 한총련은 정당하다고 학우들에게 이야기했던 자신의 책임감 그리고 힘들 때 항상 곁을 지켜줬던 '동지'들이 있기에 그는 운신의 폭이 좁아지더라도 한총련 대의원으로 살기로 결심했고 지금도 그 결심으로 살고 있다.

"예전과는 다르게 남북관계가 발전하고 있고 올해 6·15축전도 성대하게 치러지는 것을 보면서 사문화된 국가보안법 때문에 아직도 피해받는 사람이 남아 있구나 하는 현실을 더욱 절실히 느꼈습니다. 죽어버린 법률에 묶여 젊은 청춘들을 가두고, 우리의 미래를 옭아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현민씨는 자신들이 늙고 망령난 국가보안법에 의해 미래를 저당잡힌 우리 시대 마지막 피해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먼저 나서서 싸워야 할 일이다. 그에게는 든든한 후원자도 있다. '너와 나는 정치적으로는 다르지만 날라리처럼 대학 다니는 것보다 너처럼 활동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아버지, '자수 권유는 내 아들한테 자살하라는 것과 똑같은데 당신같으면 그렇게 하겠느냐'며 경찰을 물리치는 아버지가 있기에 그는 백심도 든든하다.

그의 욕심은 그저 수배문제가 해결되면 수배 이후 몸이 30㎏나 불어 걱정인 건강도 챙기고 작은 도시에 가서 자신이 할 역할이 있다면 그것을 충실하고 싶은 것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박하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이루기 힘든 바람을 가진 이현민씨의 소박한 꿈이 현실에서도 소박한 꿈으로 실현되기를 바란다.

"국보법은 기본적 인간생활조차 막아"

유영빈씨
유영빈씨 ⓒ 박준영
유영빈(수배3년, 96학번) 2002년 동국대학교 경영대 학생회장(2003년 총학생회장 역임)

"하다못해 밤에 배가 고플 때도 뭐 하나 사러 나가지를 못합니다. 동기나 후배한테 부탁해야 하죠. 이렇게 국보법은 기본적인 인간생활조차 차단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공간이 한정되어야 했다. 당연히 만나고 싶은 데서 만나면 될터지만 수배자 딱지는 학교에 학생들이 있을 때만, 나를 찾아오는 사람만 만나게 허용했다. 한마디로 활동영역에 족쇄를 채운 거다.

그러나 유영빈씨는 국보법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의 머릿속을 두동강 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곧 통일이 열릴 시대라고 하면서도 아직도 북을 적으로 규정하도록 사람들 머릿속을 두 개로 나눠 사람의 머릿속 뿐 아니라 사회마저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것이 국가보안법이라는 거다.

이제는 문제의 본질을 짚어야 하며 그래야 국보법을 없앨 수 있다고 지적한 그는 자신부터 국가보안법 피해자라는 수동적 인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국가보안법과 한판 싸움을 벌이는 주인이 되겠다고 밝혔다.

"제가 먼저 수배자의 굴레를 벗기 위해 현장에 선다면 여론은 만들어 질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격려와 힘이 모인다면 국보법은 반드시 올 해 안에 폐지될 거라는 낙관이 있습니다."

그는 말한다.

"지금 발에 큰 티눈이 하나 있는데 병원을 못 가니 떼내지를 못하고 있죠. 사실 티눈 때문에 신체의 다른 곳이 고통을 받는 것은 아니죠. 그렇지만 구두를 신을 수가 없고 축구도 할 수가 없어요. 오래 걷을 수도 없죠. 생각해보니 국보법은 티눈과도 같더군요. 별로 눈에 띄지도 않고 직접 고통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일상생활을 못하게 하니까요. 그런 티눈은 당장은 발에 고통이 가더라도 제거해야죠."

요즘 들어 방북하는 한총련 후배들을 보면서 한총련이 정당하다는 신념을 지키고 있는 선배로서 뿌듯했다는 유영빈씨는 한총련이 닦고 있는 그 길이 더 빨리 열려 49명의 한총련 수배자들이 그 길을 웃으며 걷을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지금도 수배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자주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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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자전국회의에서 파트로 힘을 보태고 있는 세 아이 엄마입니다. 북한산을 옆에, 도봉산을 뒤에 두고 사니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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