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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년 묵은 토장을 끓이고 들깨가를 넣고 곤드레밥에 비벼서 먹는다. 다소 짤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고려엉겅퀴는 정선과 평창에 주로 있다.
2, 3년 묵은 토장을 끓이고 들깨가를 넣고 곤드레밥에 비벼서 먹는다. 다소 짤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고려엉겅퀴는 정선과 평창에 주로 있다. ⓒ 김규환
4일간 2000km를 달렸다. 고향의 맛과 시원한 곳을 찾아 나선 여행이다. 자동차도 더위와 주인을 잘못 만나 생고생을 했다. 브레이크가 유난히 삑삑거린다.

실로 새벽 5시에 텐트를 빌리러 갔다가 서둘러 3번 국도를 따라 단양까지 갔다. 고수동굴 바깥 기온은 30도가 넘는데 안쪽은 15도에서 17도 밖에 나가지 않는,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순식간에 체험했다.

순전히 딸 해강이가 아빠에게 여름에 시원한 곳이 어디냐고 묻는 터에 이뤄진 예정에 없는 여행이다. 10여 년쯤 전에 갔던 '다리안계곡'에 다시 들렀는데 차가워서 30분이 지나지 않아도 나오고 싶었다. 시원한 골짜기에 몸을 담그니 정신이 또 맑아졌다.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10여 일, 내게 들으라고 서해안 소식을 시시각각 중계방송을 한다. 저녁 7시 꽁치찌개로 밥을 해먹고 8시에 출발하여 중앙고속도로-제천-장호원-안성-평택을 거쳐 38번 국도를 이 잡듯이 훑어 만리포해수욕장 인근 연포에 도착한 건 밤 12시 30분이었다.

털을 뽑아 짚불에 잔털을 태우면 옛날 맛이 난다.
털을 뽑아 짚불에 잔털을 태우면 옛날 맛이 난다. ⓒ 김규환
다음날 <산채원 카페>(cafe.daum.net/sanchaewon) 식구들과 약속이 있었던 지라 잠을 못 이루고 차에서 잠시 눈을 붙여 일어나보니 해가 둥둥 떠 있는 게 아닌가. 애초 난 해수욕장 체질이 아니다. 밀려오는 파도와 갯바람은 시원했다. 새벽 3시에 몽롱한 상태에서 30분을 넘기지 않고 차로 돌아왔다. 아이들과 아내를 남겨두고 서둘러 출발하여 서울 집에 도착하니 아침 9시다.

누룽지를 끓여 배를 채우고 사람들을 기다렸다. 한 분은 오시고 다른 한 분은 우리끼리 했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같이 가보자고 꼬드겼더니 늦게 도착한다는 분이 고맙다. 차가 명절 때처럼 밀려 짜증이 난다.

결국 두 대가 거의 같은 시간에 가평 유명산에 도착하였다. 밭에서 가지, 고추, 오이, 들깻잎, 상추, 씀바귀, 부추, 파, 토마토와 방울토마토, 옥수수를 따서 텐트 칠 장소를 물색하였다. 그곳에 도착하게 전에 구름이 한 꺼풀 벗겨지는 걸로 보아 비가 흠뻑 내려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벌써 어둑어둑해진다. 봄에 새싹 날 때부터 풀어서 기른 닭 한 마리를 1만2천원에 샀다.

가슴살 도려내고 닭발과 날개살은 난도질하여 기름소금에 찍어 먹었다. 실로 오랜만에 다시 본 맛인데 무등산 인근에 가면 쉽게 맛 볼 수 있다.
가슴살 도려내고 닭발과 날개살은 난도질하여 기름소금에 찍어 먹었다. 실로 오랜만에 다시 본 맛인데 무등산 인근에 가면 쉽게 맛 볼 수 있다. ⓒ 김규환
이 때부터가 본론이다.

촌놈 셋이 모인 조촐한 자리라 싣고 간 짚 다발을 바닥에 깔아놓고 닭 모가지를 비틀어 죽지 않은 상태에서 털을 뽑았다. 10여 분 뽑고 지푸라기로 겉을 꼬실라주니 말끔하다.

닭 껍질은 쫄깃쫄깃 해졌다. 개고기 껍데기처럼 한 점 떼어 먹고 싶은 강한 욕망이 꿈틀거렸지만 조금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닭 육회를 먹기로 하지 않았던가. 닭발도 열을 가하여 쭉 훑어주니 매꼼히 벗겨진다.

배를 갈라 내장까지 씻고 모래주머니까지 챙겼다. 창자를 어두운데서 굳이 하겠다고 한 건 삶았을 때 가장 쫄깃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끙끙거리며 텐트를 치고 있는 '맛있는 인생'!

닭이 의외로 커서 솥단지를 민가에서 빌렸다.

한방백숙에 갖가지 직접 채취한 약을 넣고 끓였더니 닭냄새가 나지 않았다. 아침엔 죽으로 먹으니 속이 잠잠해지고 확 풀렸다.
한방백숙에 갖가지 직접 채취한 약을 넣고 끓였더니 닭냄새가 나지 않았다. 아침엔 죽으로 먹으니 속이 잠잠해지고 확 풀렸다. ⓒ 김규환
황기, 엄나무, 오가피, 헛개나무, 뽕나무껍질에 마늘과 생강을 넣고 끓으라고 가만 내버려뒀다. 그 사이 '풀사랑'님은 큼지막한 도마에 칼로 닭발과 닭날개, 가슴살을 도려내고 난도질을 한다. 모래주머니도 잘게 썰었다.

소금에 들기름 섞어 한 잔씩 돌렸다. 벌써 알큰하게 올라온다.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는다. 어릴 적 아버지 옆에서 한 점 얻어 먹어본 그 맛은 아니지만 예전 맛은 여전하다. 짚불 효과 때문이다.

한방 백숙 1시간여 만에 완성! 서로 닭다리를 먹지 않겠다고 하는 통에 한 개씩 뜯어 맡겼다. 앞으로 이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닭에선 짚으로 그을려서인지 약간 훈제 한 듯했지만 적당하였다. 향이 실로 오랜만에 맡아본 내음이다.

배불리 먹다가 하루 이틀 살았던 피로에 손을 들고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잠시 태풍이 몰고 온 비가 시원하게 쭉쭉 내려 산 아래는 뭉게뭉게 김이 솟았다. 다음날 아침 한분은 떠나고 단둘이서 배추를 심고 평창으로 향했다.

김장배추를 심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돌솥에 호박잎과 아주까리를 데쳐서 싸먹고 가지를 무쳐 먹고 보리밥 누룽지를 먹으니 배가 터질 지경이다. 곧 평창으로 떠났다.
김장배추를 심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돌솥에 호박잎과 아주까리를 데쳐서 싸먹고 가지를 무쳐 먹고 보리밥 누룽지를 먹으니 배가 터질 지경이다. 곧 평창으로 떠났다. ⓒ 김규환
구 영동고속도로 구간인 횡성과 평창을 넘는 태기산 고개엔 폭우가 쏟아져 운전하기가 겁이 났지만 거북이걸음으로 2시간만에 도착했으나 졸음을 달아나게 하는 효험도 있었다.

우리가 거기에 간 건 ‘HAPPY700’을 느끼고자 한 게 아니다. 동행자 친구가 운영하고 있는 식당에서 전라도식 보신탕을 판다고 하니 한번 먹어주지 않으면 서로 미안할 것 같은 생각 때문에 벼르고 벼른 결정이었다.

봉평은 고위평탄면이기도 하고 폭우가 내려 더 싸늘하다. 먼저 <강원도산채시험장>에서 여러 산나물을 학습했다. 이윽고 봉평장(2일, 7일에 들어 섬)에 들러 요모조모 눈요깃거리를 했다.

메밀전병이나 메밀묵, 묵사발보다 더 눈을 끄는 건 메밀 씨앗이었다. 메밀이나 모밀싹을 살짝 데쳐 된장에 둘둘 비비면 가을철 꽤 괜찮은 나물이었지 않았던가.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한 홉만 얻어 볼 심산이었으나 장사꾼에게 그걸 요구하는 내가 잘못이었다. 소두(소승) 한 되에 3000원을 주고 샀다.

이어 막걸리 잔이 없어 국수사발에 한잔씩 놓고 부꾸미와 비슷한 전병, 잘못 나온 묵사발을 떠먹고는 개고기 수육을 먹었다. 먹는 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명이나물-산마늘을 구해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오랜 운전 탓에 몸은 지쳐갔지만 2차를 마치고 여관까지 가는 데는 무사했다. 그렇게 집 나와 사흘째 밤을 맞이했다.

오랜만에 늦도록 잤다. 한결 가뿐했다.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생가 쪽으로 갔다. 오늘은 곤드레밥이다. 고려엉겅퀴 순을 따서 밥을 짓는 건데 예전 배고팠을 때 헛배라도 부르게 하였던 나물이다. 요즘 전국에 걸쳐 소위 뜨고 있는 음식이다. 소화까지 잘 된다고 하니 너도 나도 찾는 음식 곤드레밥을 제대로 알고 싶었다.

곤드레밥은 밑에 먼저 고려엉겅퀴(곤드레)를 삶아서 물기를 꼭 짜서 바닥에 깔고 들기름에 득득 문지르고 나서 밥을 한다. 며칠 있다가 질경이랑 섞어서 산채원에서 해먹어볼 생각이다.
곤드레밥은 밑에 먼저 고려엉겅퀴(곤드레)를 삶아서 물기를 꼭 짜서 바닥에 깔고 들기름에 득득 문지르고 나서 밥을 한다. 며칠 있다가 질경이랑 섞어서 산채원에서 해먹어볼 생각이다. ⓒ 김규환
아침 아홉시 넘어서 도착을 했으니 이른 시각이다. 아저씨 설득하고 나서 아주머니 만나니 흔쾌히 응하신다. 사실 취재 왔다고 하니 응한 것보다는 평소 친절이 몸에 밴 탓이다. 2인분은 밥을 하기 어렵다면서도 삶아둔 나물을 넉넉히 넣고 들기름 두르고 빡빡 문지른다. 불려둔 쌀에 소금을 약간 치고 보통 밥할 때보다 약간 물을 줄여 밥을 한다.

냉장고마다 내년 봄까지 쓸 삶아서 넣어둔 곤드레로 가득하다. 많게는 메밀 축제가 열리면 하루 200그릇도 나간다고 하는데 여기 비결은 다른 데 있었다. 2년 3년 묵은 짜지 않은 된장에 갖은 양념과 풋고추를 넣고 달달 졸여주면 비벼 먹는 양념 이제까지 먹었던 것 중 최고였다. 멸치나 다시마를 넣지 않아도 짜지 않고 간이 맞으니 넣고 넣고 또 넣어 비벼도 물리지 않고 자꾸 손이 갔다.

또 한 가지 비법이 있었다. 여느 반찬과 달리 배추 숙주와 콩나물, 고사리가 한 접시에 옆옆이 나오는데 들깨가루를 넣고 무쳐서 향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어 별미로 가는 여행을 거들어줬다.

맛있는 향기가 우리가 앉아 막걸리 한잔 나누고 있는 곳까지 가득하다. 고소하고 풋풋한 공기가 가득하니 혀에 메밀묵이 더 감칠나게 휘감긴다. 벌써 곤드레만드레 취한 건가.

들깨를 넣고 무치니까 향큼했다.
들깨를 넣고 무치니까 향큼했다. ⓒ 김규환
밥 반, 나물 반이다. 쌀값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밥이다. 쌀은 잘 퍼져 살아 있고 나물은 보들보들하게 널찍하게 퍼졌지만 둘 사이 어울림은 푸짐하다. 너그럽게 뒤섞여 있다. 생각하고 더 넣어준 건지 간은 맞으매 그냥 퍼 먹어도 좋겠다.

바로 세 나물을 넣고 검지로 찍어도 짜지 않아 자꾸 당기는 토장 양념을 끼얹어 슬슬 비볐다. 오감이 들썩인다고나 할까. 눈은 반짝거렸다. 코는 벌름거린다. 향기 요법도 가동 중이다. 옆에서 입맛 다시는 소리가 들렸다. 소스라치게 짜릿함은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옆 사람 반응에 들어있다. 사진을 찍느라 사감(四感)에 만족해야 했던 둘은 밥을 앞에 두고도 못 먹는 고통이 어서 끝나길 기다렸다.

식기 전에 맨밥을 먹어보고는 "아주머니, 질경이도 그만이던데 드셔 보셨어요?" 했더니 "질경이만큼은 진하지 않아도 은근히 풍기지 않아요?" 한다. 질지 않아 질기지도 않으면서 혀와 입안에 사르르 녹는다.

양념 맛이 비빔밥 맛을 좌우한다
양념 맛이 비빔밥 맛을 좌우한다 ⓒ 김규환
순간 혀가 멈췄다. 며칠 여름을 이겨내느라 까칠까칠하던 입맛이 되살아난 모양이다. 찰떡 맛 이상이다. 수리취떡을 콩고물에 묻힌 거나 진배없다. 몇 번 씹을 일도 없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이 맛난 음식에 둘은 빠져 들었다.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 느낌이다. 첫 키스는 달달하며 침이 무척 많고 밀고 당기는 힘이 있다. 설왕설래, 좌충우돌, 찰떡방아 찧듯 고소했다.

말도 없이 쉬지 않고 먹다보니 어느새 바닥만 보인다. 풀 하나의 위력이라니! 평창에서 정선을 넘는 아라리가 슬픈 줄만 알았는데 이리 혼을 쏙 빼놓고 말건 뭔가. 그 때야 한숨 돌리고 곁가지 반찬에 손이 갔다. 곤드레밥에선 몽글게 빻은 들깨가루가 혀를 간질여주었고 코를 뚫어줬다. 배가 부른 뒤 욕심이 생겼다.

"아주머니, 혹시 명이나물은 먹어볼 수 없어요? 딱 두장만 먹어보면 좋겠구만…."
"그건 여기 없구요. 건너편 식당에 가면 있는데 줄지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가보지요."

양념을 많이 끼얹었다.
양념을 많이 끼얹었다. ⓒ 김규환
명(命)을 이어줬다는 명이나물! 산마늘을 그렇게 부른다. 씨앗은 어찌어찌 구했지만 한번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쑥과 함께 먹고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미쳤다.

점심 때 메밀 싹을 콩나물처럼 길러 내놓은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둘둘 비볐다. 아침에 먹은 곤드레밥을 얼마나 배불리 잘 먹었던지 대단한 맛은 아니었지만 산마늘 장아찌 먹어보는 행운에 마냥 즐거웠다.

폭포를 가지 않았지만 시원한 빗줄기가 내렸다. 단양 동굴에서 15도를 체험하고 산자락 텐트에서 이불을 덮었다. 해발 700m가 넘는 봉평에서 밤새 메밀을 먹으며 선선한 밤을 보냈다. 덤으로 직접 잡은 토종닭 한방백숙으로 이열치열을 체험하며 묵은 때를 뺐다. 이번 여행 중 백미였던 곤드레밥에 곤드레만드레 취했으니 이만큼 남은 여행이 따로 있을까.

2박3일 긴 여정은 몸은 힘들었지만 참으로 배울 것도 많고 배도 불렀다. 며칠 떠돌고 보니 어느새 서울은 몰라보게 서늘해져 있었다. 같이 간 이가 입맛이 같아 눈치 볼 일도 없어서 맘까지 편했다.

산마늘 장아찌 향은 좋았지만 조리법이 조금 아쉬웠다. 순창에서 다시 배워볼 생각이다.
산마늘 장아찌 향은 좋았지만 조리법이 조금 아쉬웠다. 순창에서 다시 배워볼 생각이다.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함께 긴 여행을 떠난 맛있는 인생을 즐기며 사진까지 찍어준 김용철씨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집 일품요리>에 응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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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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