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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즈케이크 제조법입니다. 순서대로 차근차근 하면 멋진 케이크가 만들어집니다.
ⓒ 정상혁
8월 1일은 제가 여자친구와 만난 지 100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 기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여자친구는 오래 전부터 보고 싶어하던 '오페라의 유령' 티켓을 준비했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뭔가 해주고 싶었습니다.

100송이 장미는 진부하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칼질하며 와인 한 잔하기에는 마음이 담기지 않은 것 같아 부족한 듯하고, 친구들이나 이벤트 회사를 동원해서 동네 운동장에 하트모양 촛불이라도 밝혀볼까 생각했지만 요란을 떠는 것 같아 마음이 차지 않았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누군가에게 주는 선물은 마음을 담은 소박한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더하여 여자친구 입을 귀에 걸리게 만들 뭔가가 필요했습니다.

한 주가 후다닥 지나고 토요일이 되어서야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내가 준비한 특별한 선물은 내가 직접 만든 케이크입니다. 무슨 기념일이면 약방의 감초처럼 준비하는 게 케이크인데 달콤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로맨틱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음식이야 웬만큼 만들어봤으니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빵이나 케이크는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오븐이며 재료를 모두 준비하려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얼마 전 후배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저 같은 사람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소문한 곳이 논현역 근처 '바닐라'라는 곳입니다.

▲ 오른쪽은 이곳 사장님입니다. 손이 보이지 않도록 저었습니다.
ⓒ 김정선
모 유명제과점에서 10여 년간 제과제빵 관련 일을 했던 분이 얼마 전에 시작한 곳이라고 합니다. 이 곳을 찾아가 제가 만들고 싶은 케이크를 말하고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손 씻고 앞치마까지 두르고 근사한 주방장 모자까지 쓰고 나니 저도 잠시나마 파티쉐가 된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요리라면 나름대로 해 본 경험이 많지만 케이크는 처음이라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 사장님의 10년 경력과 넉넉한 웃음 그리고 여유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하고 케이크 만들기를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케이크는 정확한 제조법대로 만들면 항상 비슷한 맛이 나게 된다고 합니다. 역시나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정성 그리고 힘입니다.

오늘 만들 케이크는 치즈케이크입니다. 새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기념일과 딱 맞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 듯해서입니다.

치즈케이크다 보니 주재료는 크림치즈입니다. 나머지 재료는 밀가루, 계란, 버터, 설탕 등등입니다. 재료들을 순서에 따라 정확히 계량하여 섞으면서 저어줘야 합니다.

정확한 계량은 검증되고 일정한 맛을 보장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 믿고 만들 수는 없습니다. 저한테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케이크가 될테니까요. 크림치즈, 설탕을 순서대로 넣고 열심히 왼손, 오른손 번갈아가며 멍울이 생기지 않게 풀어줘야 합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뻑뻑해서 젓기가 힘들었는데 팔근육에 피로가 쌓이면 쌓일수록 반죽은 부드러워지기 시작합니다.

▲ 손을 바꿔가며 한참을 저어야 이만큼 부드러워 집니다.
ⓒ 김정선
첫째 재료들이 모두 준비가 되면 생크림과 설탕 등으로 머랭이라는 것을 만들게 되는데 머랭은 케이크를 만들었을 때 푹신한 느낌을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라고 합니다.

머랭은 많이 저어야 하고 또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기계의 도움을 아주 조금(사실은 아주 많이) 받았습니다.

머랭이 완성되면 처음 만든 반죽과 섞은 후 무게를 달아 케이크 틀에 옮기고 오븐에서 굽습니다.

▲ 다른 요리와는 달리 제과제빵은 정확한 계량이 생명입니다. 완성된 반죽을 틀에 붓고 있습니다.
ⓒ 김정선
물 중탕으로 약 1시간 정도 굽게 되는데 과연 저 케이크가 제대로 될 것인가 아닌가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오븐에 집어넣었습니다.

▲ 오븐에 들어가기 전 모습입니다.
ⓒ 김정선

▲ 요리와 제빵, 관심사가 비슷해서 제빵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김정선
케이크를 기다리는 동안 케이크 장식으로 사용할 쿠키를 만들었습니다.

▲ 쿠키 모양 찍어내기
ⓒ 김정선
미리 만들어 놓은 반죽에 알파벳 틀을 이용하여 이니셜 모양의 쿠키를 만들어 굽습니다. 쿠키가 완성되면 이제 데코레이션을 해야 합니다. 기념일 케이크답게 이니셜과 하트 모양 그리고 100일 기념이니 '100'이라는 숫자도 넣어봤습니다.

▲ 굽기위해 가지런히 맞춰놓은 쿠기
ⓒ 김정선
케이크도 이제 완성이 되어 분당(가루설탕)과 생크림으로 장식을 했습니다. 시중에서 파는 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독창성 있는 데코레이션이었습니다.

▲ 이제 거의 완성단계입니다. 완성된 케이크에 장식하기
ⓒ 김정선
자,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준비해둔 쿠키를 올리고 나니 케이크 완성입니다.

▲ 짜잔~ 완성입니다. 맛은 달콤새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영락없이 사랑스런 맛이었습니다.
ⓒ 정상혁
자, 이제 케이크를 들고 근사한 곳에서 꽃다발 한 아름과 함께 여자친구 마음을 사로잡을 일만 남았습니다.

서툰 실력으로 세 시간에 걸쳐서 땀 흘려 만든 케이크인데 여자친구가 기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1주일 지나서 준비한 100일 기념 이벤트였지만 기대했던 것처럼 여자친구가 몹시 좋아했습니다. 

평소에 무뚝뚝하거나 음식만들기에 전혀 관심없던 사람이 직접 만든 케잌을 들고 나타났다면 감동이 더할 거 같습니다. 

바닐라 홈페이지
http://www.vanila.co.kr/
02-6080-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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