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반도와 유럽대륙 사이에 낀 내해에 인접한 노르웨이 하면 빙하와 빙하에서 흘러나온 피오르드를 떠올릴 것이다. 그 열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일찍이 바이킹이라는 해적선을 만들어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들.
그러나 지금의 노르웨이에서는 그 옛날 바이킹으로 대변되는 험상궂은 이미지는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세계가 부러워하는 자연환경과 인간 그리고 문화예술이 잘 어울려 인간의 영혼을 살찌우고 있었다.
| | | 구스타프 바겔란(Vigeland, Adolf Gustav1869∼1943) | | | | 구스타프 비겔란(Vigeland, Adolf Gustav)은 노르웨이가 낳은 대표적인 조각가이다. 그는 1884년 노르웨이 남부 해안지방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의 부친은 대형가구공장을 운영하는 목수였으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시절부터 조각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조각가 B.버그슬리엔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조각수업을 받기 시작하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유학을 통해 근대 조각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댕'에게 많은 영향을 받고 노르웨이로 돌아와 어렵고 힘든 조각가의 길을 걷게 된다.
오슬로에서 활동을 하던 중 1906년부터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무려 40년 동안을 오슬로 '프로그네르' 공원에서 조각군을 제작하는데 온 힘을 쏟아 붓는다. 그는 실로 전 생애에 걸쳐 조각 하나만을 생각하고 자신을 이 외길로 내몬 타고난 예술가였다. / 한석종 | | | | |
마음 급한 사람들은 노르웨이 여행길에서 피오르드의 웅장함에 찬탄을 금치못하며 그 여운만을 간직하고 그만 돌아서는 우를 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심미안을 가진 여행객이라면 그보다 앞서 구성파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와 '구스타프 비겔란'의 조각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조용히 투영해보리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는 발트해에서 약 100㎞ 정도 스칸디나비아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협만 가까이에 위치한 아주 작은 도시다. 인구는 우리나라 중소도시급인 48만여 명에 불과해 한 나라의 수도라고 하기엔 작지만 자연환경과 문화예술이 잘 접목되어 작은 거인처럼 느껴졌다.
오늘날 오슬로가 이토록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부각된 배경에는 연간 500여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일명 '비겔란 조각공원’으로 더 잘 알려진 '프로그네르 공원'(Frognerparken )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오슬로가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거듭나는 데는 세계적인 조각가 '비겔란'은 물론 시 당국과 시민들의 사려 깊은 배려와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전이 발견되지 않았던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노르웨이는 자연환경이 매우 열악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이렇다할 부존자원이 없는 발트해 변방의 가난한 나라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슬로시는 경제부흥을 위한 공업도시가 아니라 '미래의 문화도시'라는 표어를 내걸고 세계적인 조각공원을 치밀하게 계획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영원한 안식처를 제공하고자 했다.
"미술의 기본은 정확한 공간을 설정하는데 있다"고 한 근대 조각의 아버지 '로댕'에게서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은 '비겔란'은 타고난 조각가였는지 모른다. 아니 그 자신이 말한 바와 같이 태어나기 전부터 조각가였다. 자신을 밖으로 내몰아 자신을 채찍질하며 오직 조각의 외길만을 걸어갔고 드디어 조각예술공원을 계획하게 된다.
그가 건축공간에 가구를 채워넣듯 공원을 위해 조각을 제작한 것은 아니었다. 조각은 건축물이나 공원의 한낱 장식에 불과하다는 당시의 일반적인 인식을 떠올린다면 비겔란의 '조각을 위한 공원' 계획은 가히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후 40여년간의 긴 여정 끝에 완성된 이 공원에 그와 오슬로 시민의 피와 땀 그리고 꿈과 열정이 온전히 녹아 있음은 물론이다.
비겔란 조각공원(Vigeland park)은 총 면적 32만 3700㎡에 조성되어 있으며 그의 청동, 대리석, 화강암과 석고로 된 200여 점의 조각상이 인생의 파노라마처럼 생동감있게 펼쳐져 있다.
동물을 투조한 철제 정문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작품세계에는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다양하고 세밀하게 표현돼 있으며 동양의 오랜 전통사상인 윤회사상도 곁들여져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내면의 감정상태가 잘 드러나 있는 '우는 아이'(오슬로시의 상징)를 포함하여 인간의 일생을 표현한 58개 청동상이 전시되어 있는 다리를 지나면 불끈거리는 근육질의 6명의 장정이 커다란 돌접시를 떠받치고 있는 분수광장에 이르게 된다. 그 분수대에는 인생의 미로를 상징하는 듯한 모자이크 무늬가 새겨 있다.